잠꼬대 아닌 잠꼬대
에스겔 37:16-23절 2017/06/25 성령강림 후 3주
37:16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37:17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37:18 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37:19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37:20 너는 그 글 쓴 막대기들을 무리의 눈 앞에서 손에 잡고
37:21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잡혀 간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며 그 사방에서 모아서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37:22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37:23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 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분단된 조국의 현실 앞에서 평화의 도구가 되고자 원하는 이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7년이 지나 맞이하게 되는 주일입니다.
‘6.25 한국전쟁’
67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우리의 아픔이자,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우리 민족의 해묵은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남과 북의 분단,
그 역사는 72년 전으로 올라갑니다.
전쟁의 역사는 67년 이지만 분단의 역사는 그 보다 5년 앞선 72년입니다.
해방 직후 일본군 철수를 위해 38선 북쪽은 소련군이 그리고 38선 남쪽은 미군이 치리하면서 생긴 분단이 올해로 72년째입니다.
72년 전에 금이 가기 시작해서 67년 전에 완전히 두 개로 부러진 하나의 막대기는 언제 다시 하나로 합쳐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반 토막이 된 두 개의 막대기들은 서로를 향한 흉기로 변해버렸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분단의 시간은 서로를 향한 증오가 되어 가고 있고 본디 ‘하나’였다는 기억마저 점점 옅어져 가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통하여 하나가 되자는 것이 ‘통일’인데,
이제는 이것을 소원삼아 노래하는 이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점점 잊혀져가는 노래 ‘우리의 소원 통일’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이 노래를 마땅히 부르게 해야 할 우리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이 노래를 우리 후손들에게 가르치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형제를 주적으로 각인시키려 하고 그리고 이념의 편 가름을 통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반드시 우리 민족이 이루어야할 남과 북의 통일은 역사의 필수가 아닌 역사의 선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울대학교 통일연구원이 우리나라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통일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10년 전이니까 2007년도입니다.
그 때 통일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53.3%였습니다.
그런데 2015년에는 30.7%로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이보다 수치가 더 줄었을 것입니다.
일선에 계신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해마다 ‘통일’을 주제로 중고등하고 학생들에게 글짓기를 실시하는데 ‘통일을 하지 말자’는 주장의 글들이 점점 많아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통일이 되면 당장 남한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그 부담이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이지요.
정말 그럴까?
그래서 준비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우리 민족처럼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민족이 이스라엘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때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분단은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브라임의 후손인 사마리아 사람들과 그리고 유다의 후손인 유대 사람들이 지금도 분리된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분단의 역사,
그 역사의 배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로 올라갑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게 됩니다.
특히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최고의 황금기를 이루어 냅니다.
열왕기상 4장입니다.
거기에 보면 솔로몬 시대의 영화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4:21 솔로몬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
조공을 바치던 민족에서 조공을 받는 민족으로 바뀐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 필요한 말을 수입해서 되파는 중간 무역을 통하여 어마어마한 왕실의 재정을 확보하게 됩니다.
솔로몬이 잘 한 것이 하나 있다면 아버지 다윗의 유업을 받들어 7년에 걸친 대 공사를 거쳐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성전 건축 즉 건물만 짓지 아버지 다윗의 신앙을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을 위한 왕궁을 건설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건축 7년 보다 두 배가 많은 13년을 걸쳐 짓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역을 통하여 안정적인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웃 나라 공주와 결혼하는 정략결혼이 필수였는데 문제는 그 이방인 아내들이 가져온 신들의 신전까지 솔로몬이 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방 신전을 짓는 데 동원된 이스라엘 사람이 18만 명이었다고 합니다.(삼하24:9 다윗의 인구조사 130만, 대상21:5 157만)
레바논에서 나무 베는 작업에 3만 명
그 나무를 운반하는 노동자가 7만 명
그리고 이방신전을 위한 채석작업에 동원된 백성이 8만 명
이렇게 18만 명이 동원되어서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이방 신전을 짓는데 동원되었으니 그 비참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지나치게 많은 세금은 백성들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짐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 지나친 토목사업으로 솔로몬은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얻게 되었고 훗날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분열하는 원인 제공자가 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분단,
그 분단의 역사는 르호보암 시대에 시작됩니다.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그의 아들 르호보암을 새로운 왕으로 세웁니다.
하지만 벅찬 노역과 지나친 세금에 참다 못 한 북쪽의 10지파들이 여로보암을 대표로 뽑아 새로운 왕 르호보암 앞에 보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간청하지요.
열왕기상 12장 4절입니다.
12:4 왕의 아버지가(솔로몬) 우리의 멍에(노역과 세금)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그런데 3일 후에 어떤 답변이 돌아온 줄 아십니까?
열왕기상 12장 13-14절입니다.
12: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2: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내 아버지가 당신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웠소.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당신들에게 메우겠소. 내 아버지는 당신들을 가죽 채찍으로 매질하였지만, 나는 당신들을 쇠 채찍으로 치겠소."
이렇게 해서 할아버지 다윗 왕이 이룬 통일 왕국은 그의 손자 르호보암 시대에 와서 남 유다(유다 베냐민)와 북 이스라엘(10지파)이 완전히 분열하게 됩니다.
그 때가 대략 예수님 오시기 922년경입니다.
북이스라엘 보통 ‘에브라임’이라고 부릅니다.
북 에브라임과 남 유다로 나뉜 이스라엘은 서로 전쟁도 하고 때로는 연합하며 약 200년을 분단된 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먼저 망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어디입니까?
사마리아 성을 수도로 삼은 북 이스라엘이 앗 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예수님 오시기전 722년경에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등장한 혼혈인들을 예수님시대 사라미아 사람이라고 낮잡아 부르게 된 것입니다.
반면 남 유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 시리아의 침공으로부터 구원은 받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신흥제국 바벨론에 의해 남 유다는 예수님 오시기전 586년에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이처럼 분열의 고착화, 분열의 끝은 결국 멸망이자 공멸입니다.
그런데 분열의 현장 속에서 그리고 멸망으로 치닫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이 잠꼬대 같은 예언의 말씀을 남기게 되었는데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37장 1-14절에 나오는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입니다.
3-6절까지 새 번역 성경을 읽어드립니다.
37:3 그가 내게 물으셨다. "사람아, 이 뼈들(11절, 이스라엘)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내가 대답하였다.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37:4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뼈들에게 대언하여라. 너는 그것들에게 전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들어라.
37:5 나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37:6 내가 너희에게 힘줄이 뻗치게 하고, 또 너희에게 살을 입히고, 또 너희를 살갗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마른 뼈 같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생기를 불어 넣어 다시 이스라엘을 민족 중에 민족으로 회복시키겠다는 예언입니다.
또 하나는 오늘 본문의 예언입니다.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37:16 "너 사람아,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 및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써라. 막대기를 또 하나 가져다가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 및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써라.
37:17 그리고 두 막대기가 하나가 되게, 그 막대기를 서로 연결시켜라. 그것들이 네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
37:18 네 민족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일러주지 않겠느냐?' 하면,
37:19 너는 그들에게 말해 주어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에브라임의 손 안에 있는 요셉과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지파의 막대기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유다의 막대기를 연결시켜서, 그 둘을 한 막대기로 만들겠다. 그들이 내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 하셨다고 하여라.
37:20 또 너는, 글 쓴 두 막대기를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 손에 들고,
37:21 그들에게 말해 주어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 살고 있는 그 여러 민족 속에서 내가 그들을 데리고 나오며, 사방에서 그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37:22 그들의 땅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내가 그들을 ①한 백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며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두 나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37:23 ②그들이 다시는 우상과 역겨운 것과 온갖 범죄로 자기들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범죄한 그 모든 곳에서, 내가 그들을 구해 내어 깨끗이 씻어 주면,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어떻습니까?
잠꼬대와 같은 예언이지요.
하지만 제사장 출신의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말합니다.
첫째, 골짜기를 가득 메운 죽은 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다시 되살아난다.
뿐만 아니라 둘째, 에브라임이라고 쓴 막대기 그리고 유다라고 쓴 막대기, 서로 다른 두 막대기가 하나의 막대기가 되는 것처럼 유다와 사마리아의 갈등과 반목이 사라지고 하나가 될 통일의 날이 곧 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에스겔에게 임한 예언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 민족 가운데 한 분이 떠올랐습니다.
늦봄 문익환 목사님입니다.
그는 자신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예언자 에스겔처럼 이렇게 선포합니다.
문익환 목사님의 아들, 영화배우 문성근씨의 목소리로 듣겠습니다.
잠꼬대 아닌 잠꼬대
문익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 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 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 마음이었거든
한 마음
그래 그 한 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 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 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사십 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을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사는 거지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통일이 돈으로 접근하는 비즈니스가 되었나요?
언제부터 통일이 대박이라는 경제가 되었나요?
언제부터 통일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눈치나 보는 외교가 되었나요?
‘통일’
‘갈라진 것이 하나가 되는 통일’
‘하나님 손 안에서의 하나 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성경이 말하는 통일은 그런 것들로는 그런 세상의 지혜, 그런 세상의 방법으로는 절대로 접근할 수도 해결 할 수도 없다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레마’입니다.
그러니 통일을 비즈니스로 경제로 외교로 접근하려는 모든 시도와 기대를 버리십시오.
그러면 어디에서 우리가 통일에 대한 소망을 두어야할 까요?
오늘 말씀의 결론 22절입니다.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두 나라로 갈라지지 않게 하시는 생기, 곧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리고 23절입니다.
범죄 한 그 모든 곳에서 구해 내시고 깨끗이 씻어 주신 생기, 곧 하나님의 영입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힐 때 성서한국이 될 때 통일은 이루어지고 역사의 아픔은 치유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잠꼬대’ 같나요?
좋습니다.
세상은 분명하게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잠꼬대’ 같은 예언으로 그 시대에 반기를 들었던 분이 바로 에스겔 선지자이고 문익환 목사님이었습니다.
다시 22-23절은 새 번역 성경을 읽어드리겠습니다.
37:22 그들의 땅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내가 그들을 ①한 백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며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두 나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37:23 ②그들이 다시는 우상과 역겨운 것과 온갖 범죄로 자기들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범죄한 그 모든 곳에서, 내가 그들을 구해 내어 깨끗이 씻어 주면,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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