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마태복음 7장 15-20절 웨슬리의 산상설교 12

心貧者 2017. 6. 17. 11:31


웨슬리의 산상설교 12

마태복음 715-202017/06/14()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7: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장은 하늘가는 길의 장애물세 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71-12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비판입니다.

남으로부터 비판이나 헤아림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

, 형제를 향한 비난과 비판이 천국 가는 길의 장애물이 될까?

예수님이 밝힌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인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를 향하는 이들의 성품과는 거리가 너무 먼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제 멋대로 깎아내려 판단하는 비판을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형제를 향한 비난과 비판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해법인데 마태복음 712절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이것을 우리가 황금률이라고 부르는데, 율법 중에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무조건 형제의 비난을 금지한 것은 아닙니다.

형제의 티를 지적하거나 형제의 죄를 충고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반드시 두 가지의 전제 조건이 따르게 됩니다.

 

첫째,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처럼 백성과 나라를 긍휼이 여기는 마음입니다.

저러다가 질투하시는 하나님 곧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한 대 맞을 텐데하는 염려 속에서 말하는 권면입니다.

 

둘째, ‘죄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감각한 형제를 일깨울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교회 공동체에 피해를 준다는 사실도 모르고 죄를 범하는 무지하고 무감각한 이들을 권면할 때입니다.

 

죄에 빠진 형제들,

어떻게 권면해야 할까요?

교회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다시 복습합니다.

 

첫째 개인적인 충고또는 권면입니다.

마태복음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일깨워 주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두 번째 단계는 16절로 증인이 참석한 충고또는 권면입니다.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그래도 듣지 않으면 마지막 세 번째 단계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권위로 충고또는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형제를 죄에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충고의 목적은 상대방을 제 멋대로 깎아내려 판단하는 비판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가 죄에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충고보다는 권위가 있는 신앙공동체의 충고를 예수님이 권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천국 가는 길의 장애물은 마태복음 713-14절에 나오는 크고 넓은 길세상의 풍조, 세상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길이자 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위 대세라고 하는 크고 넓은 길세상의 풍조, 세상의 욕망합리화’ ‘정당화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3-14본문은 짧지만 이것이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치명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돌이킴회개의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이렇게 전제하고 들어갑니다.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왜냐하면) ‘멸망으로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멸망으로

돌이킬 기회가 전혀 없다는 아주 무서운 종말론적인 삼판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14생명영생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협착한 길이란 어떤 것인가?

웨슬리 목사님은 이미 그 문과 그 길을 팔복에서 예수님께서 알려 주셨다고 합니다.

 

첫째,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길입니다.

둘째, 애통 곧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길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성품인 온유의 길입니다.

넷째, 의에 대한 갈증, 목마름이 있는 길입니다.

다섯째 긍휼, 자비의 길입니다.

여섯째, 거짓 없는 하나님처럼 마음이 청결한 길입니다.

일곱째, 모든 이들에게 선을 행하는 화평의 길입니다.

여덟 번째, 의를 위하여 모든 비난과 모든 모욕과 모든 박해를 달갑게 받는 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렵지요.

그래서 그 문은 좁고 그 길은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장애물은

오늘 본문이 다루고 있는 거짓 선지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이들을 우리가 선지자’ ‘선견자또는 예언자’ ‘대언자라고 부르는데 그들을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양처럼 그럴듯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양의 탈을 쓴 굶주린 이리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입니다.

 

슬픈 이야기 하나드리지요.

목원대학교 옛날 캠퍼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학교 입구에 자리 잡은 입석 글씨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먹어라

 

그래서 천국 가는 길의 마지막 장애물로 예수님이 거짓 선지자를 언급하신 것입니다.

 

첫째, 어떤 이들이 거짓 선지자일까요?

둘째, 거짓 선지자은 어떤 모습을 하고 다가올까?

셋째,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첫째, 거짓 선지자란 어떤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사실 그들을 분별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는 외양상 그럴듯하여 속임을 당하기 아주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결한 양인지 아니면 양의 탈을 쓴 탐욕스러운 이리인지 잘 살펴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거짓 선지자일까?

하늘가는 길을 바르게 가르쳐 주지 않는 자가 거짓 선지자라고 정의합니다.

하늘 가늘 길

단계적으로 8 가지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시 복습합니다.

 

첫째, 가난한 마음의 길입니다.

둘째, 애통 곧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길입니다.

셋째, 온유의 길입니다.

넷째, 의에 대한 갈증, 목마름이 있는 길입니다.

다섯째 긍휼, 자비의 길입니다.

여섯째, 마음이 청결한 길입니다.

일곱째, 모든 이들에게 선을 행하는 화평의 길입니다.

여덟 번째, 의를 위하여 모든 비난과 모든 모욕과 모든 박해를 달갑게 받는 길입니다.

 

이 길 외의 길을 가르쳐 주는 자가 거짓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거짓 선지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입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이지요.

 

첫째, 양의 탈, 양의 옷을 입고 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장 부드럽고 친숙한 이미지와 태도로 온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 자신이 아주 유익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 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남들과 다른 아주 특별한 존재로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마치 자기만이 진리의 수호자인 것처럼 독실한 종교의 탈을 쓰고 온다는 것입니다.

 

넷째, 넘치는 사랑의 모습으로 다가 온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아주 매력적이지요.

그래서 거짓 선지자인지 참 선지자인자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을까요?

아주 간단하면서도 평범한 기준이 있다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16-18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맺는 삶의 열매를 보고 거짓 선지자인지 참 선지자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7: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가르치는 선지자의 열매곧 그들이 행하는 삶의 태도나 자세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여덟 가지 입니다.

 

첫째, 자신이 가르치는 도리대로 살려고 애쓰는지

둘째,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애통하는 지

셋째, 그리스도의 마음인 온유함으로 가득한지

넷째, 하나님 나라와 그 의에 대한 목마름으로 가득한지

다섯째, 긍휼과 자비의 길을 걷고 있는지

여섯째,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 거짓 없는 마음 즉 마음이 청결한 지

일곱째, 모든 이들에게 선을 행하는 화평의 길을 걷고 있는지

마지막 여덟 번째, 의를 위하여 모든 비난과 모든 모욕과 모든 박해를 달갑게 받고 있는지를 살피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가르치는 도리를 듣든 사람들, 즉 설교를 듣는 회중이지요.

그들이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수의 회중들이 바로 위에 있는 여덟 가지의 결과들을 삶 속에서 동일하게 나타내고 있는지를 살펴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기준입니다.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분별할 때 주의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여덟 가지 삶의 열매들이 한 번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리고 자연적으로 맺어지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순간적이고 인의적인열매를 맺는 일에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양의 탈을 쓴 거짓 선지자를 잘 살펴서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와 함께 멸망의 길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역시, 돌이킴, 회개의 기회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를 조심해야 하는 궁극적이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거짓 선지자와 관련해서 아주 어려운 문제 하나를 언급하겠습니다.

아주 조심스러운 문제인데, 이런 주제입니다.

 

만일입니다.

만일, 거짓 선지자가 이렇게 위험하다면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가? 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단호한 입장을 보입니다.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은커녕 말도 듣지 말라

 

하지만 웨슬리 목사님은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지 않고 마태복음 2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합니다.

23: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여기에 보면 겉과 속이 다른 거짓 선지자에 대한 두 가지의 행동 지침이 나옵니다.

 

첫째, 아무리 그들이 겉과 속이 다른 거짓 선지자라 할지라도 그들이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은 아멘으로 듣고 아멘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베푸는 성례전, 즉 세례나 성찬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 그 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가르침을 거부하거나, 성찬을 거부하거나, 교회 공동체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거짓 선지자가 전하는 진리의 말씀은 받아들이되 그들이 행하는 불의하고 거짓된 행동은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않는 거짓 된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천국 가는 길을 인도하는 선지자가 거짓인지 참 인지 잘 살펴 분별하고 그리고 따를 것은 따르고 거부할 것은 거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무리 중에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