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시편 124:1-8 우리 편에 계시니

心貧者 2017. 6. 13. 11:01


우리 편에 계시니

시편 124:1-82017/06/11(삼위일체주일)

124: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124: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124: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124: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124: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124: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124: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124: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교회는 오래 전부터 성령강림절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주일로 성별해서 지켜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의 실체인 삼위일체.

그 신비의 역사와 거룩함의 역사를 깊이 있게 묵상하고 공경하라는 뜻입니다.

 

첫째, 묵상입니다.

왜 하나님은 삼위이자 일체이신 분으로 자기 자신을 계시했을까?

이것을 곱씹어 보는 것입니다.

 

둘째 공경인데,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요?

숨 쉬는 순간순간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련해서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우리로는 감독 직분에 해당하는 천주교회의 어느 주교가 배를 타고 가다가 한 섬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뜻 밖에 아주 놀라운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소개하는 원주민 세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주 의외였지요.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교회가 세워진 것도 아닌데 자신을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원주민을 보면서 잠시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놀라움도 잠시 곧 실망하게 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교의 기초 교리는커녕 주기도문조차 알지 못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되겠다. 이들의 무지함을 깨우쳐야하겠다.’

이런 생각이 든 주교는 무지한 원주민 그리스도인들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평소에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도 셋, 우리도 셋, 그러니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이러다가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든 주교가 아주 친절하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주교는 배를 타고 다시 그 섬을 지나가다가 아주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원주민 세 사람이 자신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하여 오는데,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처럼 바다 위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경외감에 사로잡힌 주교는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오셨습니까? 제게 원하시는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그러자 원주민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합니다.

주교님, 정말 죄송한데요...

주교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그만 까먹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여기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 다음 기도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 기도가 어떻게 되는지 좀 가르쳐 주시지요.’

 

여러분,

물 위를 걸을 만큼 이미 거룩함의 능력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무슨 가르침이 필요하겠습니까?

자신의 초라함을 느낀 주교는 이렇게 대답하지요.

착하신 친구들,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우리도 셋, 당신도 셋,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라고 기도하십시오.”

이 이야기가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전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그 하나님의 신비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은 얼마나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공경하면서 그리고 그 능력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공경능력입니다.

 

찬송가를 펴시는데 63장부터 79장까지 17곡을 가사 중심으로 눈으로 쭉 보시기 바랍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중에서 어느 분을 찬양하는 노래입니까?

성부 하나님입니다.

 

그 다음 80장부터 181장까지 102곡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중에서 어느 분을 찬양하는 노래입니까?

성자 하나님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 그 분의 생애 중심으로 구성된 찬양이 80-181장입니다.

 

그 다음입니다.

182장부터 197장까지 모두 몇 곡입니까?

16곡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 어느 분을 찬양하는 노래입니까?

성령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찬양 중에 찬양이 1장부터 7장까지 나오는 일곱 곡의 송영입니다.

‘doxology(독솔로지)’ ‘영광송입니다.

찬양 중에 찬양이자 가장 오래된 찬양이지요.

그러니 꼭 우리 입술 속에 그리고 우리 몸속에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간직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중에서 가장 오래된 찬양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7장만 한 번 불러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역시 가장 오래된 찬양 중에 한 곡입니다.

시편 124편인데, 찬양의 제목을 이렇게 달아 놓았습니다.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반면 새 번역 성경은 이렇게 제목을 달아 놓았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어느 것을 사용해도 다 좋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시편120편부터 134편까지 모두 동일한 제목을 가지고 노래한 찬양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제목입니까?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전의 올라가는 순례자

나름대로 성전을 올라가는 이유가 다 있었겠지만 모든 순례자(필그림)에게는 두 가지의 공통점이자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일상의 일들, 즉 일상의 짐들을 다 내려놓고 순례의 길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자기 부인이지요.

 

또 하나는 순례자의 발걸음이 오로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뚜벅뚜벅 한 걸음씩 걸어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 십자가를 보면 이런 순례자의 삶이 잘 녹아져 있습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전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과 교제하는 진정한 예배자의 태도를 엿보게 됩니다.

 

첫째, 염려하지 않는 예배자입니다.

일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별명처럼 염려하지 않는 예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 자신에게 궁금증 하나가 생겼습니다.

나는 지금

일상의 일들, 그리고 일상의 짐들에 매이지 않는 신실한 예배 자로 서 있는가?’

오로지 주님께 나의 삶 전부를 의탁하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는가?’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등 이 모든 것들을 정말 우리 주님께 의탁하고 있는가?’

혹 염려라는 세상 무게에 눌려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러분도 자기 자신에게 한 번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지고 견디다 못해 쓰려지고 있는지 아니면 전적으로 이 모든 것들을 우리 주님께 의탁하고 있는 지, 한 번 깊이 있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입니다.

둘째는 윤동주의 시구처럼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 곧 성전에 올라갈 수 있는 예배의 성공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시인 윤동주의 말을 빌린다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나에게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갈 때입니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방향 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성전으로 향하는 그 방향감만 잃지 않는다면 성령께서 우리의 보혜사가 되어 주셔서 진정한 예배자로 이끌어 가시리라고 저는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나에게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 즉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와 먼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너무 강하고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기록한 시인의 명제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명제입니까?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다 입니다.

 

세상, 강합니다.

불의, 역시 강합니다.

원수, 또한 강합니다.

하지만 성전을 오르는 이에게 시인은 본질적인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124: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성전을 오르는 순례자에게 늘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환란이고 또 하나는 유혹입니다.

환란과 유혹

어느 것 하나 길 떠난 순례자에게 만만 것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갈등하고 의심하고 주저앉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 편 맞는가?’

우리 하나님이 정말 맞는가?’

그 때 오늘 본문을 기록한 순례자가 이렇게 되묻습니다.

1절을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대답해 보아라. 주님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우리가 어떠하였겠느냐?’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집트 바로 밑에서 여전히 유린당하고 짓밟힌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힘 앞에, 불의의 힘 앞에 그리고 원수의 힘 앞에 조롱당하는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 있게 말합니다.

위기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참된 예배 자를 세우기 위해 홍해를 건너게 하셨던 출애굽 사건을 기억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2-5절의 말씀입니다.

124: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124: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124: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124: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도 말고 의심치도 말고 성전에 오르는 순례의 길을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요?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서 나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과 함께 떠오르는 신약의 말씀 두 곳을 소개할까합니다.

하나는 우리 주님이 복음서에서 남긴 말씀이고 또 하는 그의 사도가 되었던 바울이 그이 편지에서 남긴 말씀인데 우선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부터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028절입니다.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제가 늘 소망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차고 옹골진 믿음입니다.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세상의 힘 불의의 힘 그리고 어둠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차고 옹골진 믿음입니다.

약하지만 연약하지만 비록 가진 것 없고 내 세울 것 없지만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셔서 구원하신다는 당차고 옹골진 믿음입니다.

 

또 하나는 바울 사도이 자신의 편지에서 남긴 말씀인데 로마서 831절입니다.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8:31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저는 이 말씀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인생 말씀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말씀을 인생 말씀으로 삼은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어둠의 시대 일본 제국주의 압제와 싸웠던 백범 김구 선생님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라는 손 글씨를 남겼다고 하는데 복사본이라도 꼭 소장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나의 편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두 가지 인데 첫째,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6절입니다.

124: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새 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124:6 우리를 원수의 이에 찢길 먹이가 되지 않게 하신 주님을 찬송하여라.


이 뿐 만이 아닙니다.

7절입니다.

124: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원수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그러니 주저하지도 말고 머뭇거리지도 말고 얼른 하나님이 거하는 집 성전으로 함께 올라가자는 것입니다.

왜냐?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124: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