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산상설교 3
마태복음 5:8-12절 2016/12/21(수)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오늘은 산상설교 세 번째 시간으로 1739년 8월 영국 브리스톨에서 웨슬리가 한 설교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을 압축하면 두 개의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의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을 내 자신(몸)과 같이 사랑한다.’
사실 어려운 일이지요
그런데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랑이 없어도 스스로 사랑 받는 분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모든 천사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여호와’입니다.
‘스스로 계시는 분’
쉽게 말해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영이신 하나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실 큰 고민이지요.
하지만 모세가 전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언약 곧 율법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작은 범주로는 10계명이고 큰 범주로는 613개의 계명이지요.
문제는 그 중에서도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사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이런 말씀들 보다는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사 중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발전하게 됩니다.
한쪽으로 치우쳐도 너무 치우친 것이지요.
그래서 나온 말씀들이 이런 말씀들입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잠 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 21:3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 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준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오병이어 기적 이후 하신 말씀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생명의 떡’으로 오신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고 그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이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늘 관심 대상이자 사역의 대상이었던 가난하고 애통하는 이들 그리고 방황하고 유리하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웃 사랑이지요.
왜냐하면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 사랑의 완성이자 계명의 완성이요 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사역의 모든 가치는 향한 가난하고 애통한 이웃으로 향한 것입니다.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의 근본, 그 사랑의 뿌리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항상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이자 주권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사랑의 도구이지요.
사랑을 실천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공덕이나 상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항상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웃 사랑을 실천 할 때 항상 세 가지를 살펴야합니다.
첫째,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항상 하나님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예수님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 사랑의 힘을 빌려 이웃을 사랑하는가?
셋째, 그 일을 행하는 우리의 마음이 깨끗한가?
다시 말해 그 일을 하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순수한가?
의도의 순수성입니다.
이 중에서 오늘 본문 8절과 연결되는 말씀이 ‘셋째, 그 일을 행하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깨끗한가?’ 입니다.
하나님의 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깨끗하고 얼마나 청결하며 얼마나 순수한가? 입니다.
마음의 청결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만큼 마음이 청결한 자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하고 청결한 것같이 하나님의 의해 그 사람의 마음도 깨끗해지고 순수해지고 청결해 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거룩하지 못했던 우리의 성정이나 육체나 영혼이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완전히 깨끗하게 씻어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의 상태라고 표현했습니다.
로마서 2장입니다
2: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2:28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갗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2:29 오히려 속 사람으로 유대 사람인 이가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을 따라서 받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르치고 말하는 자라면 겉모양으로만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으로도 실제로 간음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설명입니다.
로마서 2장입니다.
2: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2: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2: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①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2 ②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③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따라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됩니다.
첫째, 교만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늘 가난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교만을 씻기 때문입니다.
둘째 분노와 난폭함이라는 옛 성정에서 벗어나 늘 온유하고 부드러운 마음과 행동을 보입니다.
하나님을 부터 받은 사랑이 그 안에 가득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마음의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떠한 욕망도 없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욕망이 자리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외적인 행동의 부인이나 내적인 마음의 부인이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빌린다면 몸의 할례를 받은 겉 사람의 모습이나 마음의 할례를 받은 속 사람의 모습이나 동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이 청결한 자의 특징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 어떤 복을 받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은 모세처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말씀과 늘 함께하는 복입니다.
어마 어마 한 복이지요.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두 번째, 9절입니다.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 다른 말로 ‘평강’이라고도 하고 ‘평화’라고도 합니다.
우리 인사말로는 ‘안녕’이지요
편안할 ‘안’ 편안할 ‘녕’입니다.
어느 말을 사용해도 다 좋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샬롬’이고 그리스어로는 ‘에이레네’라고 합니다.
‘에이레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는 말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영원한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화평’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음이 청결한 자 곧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모세처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을 누리게 될 뿐만 아니라 화평의 왕이신 예수님처럼 화평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화평을 누리는 자의 사명입니다.
화평을 누리는 자의 사명, 무엇입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화평을 누리는 자답게 하늘로부터 오는 화평을 위해 일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평화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평화를 일구는 일꾼입니다.
이것이 바로 5:9이 말하는 화평하게 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늘로부터 오는 화평을 위해 일 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늘 충만해서 착한 행실이 늘 드러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 프란체스코 ‘평화의 기도’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이런 분들은 어떤 복을 받습니까?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천국 시민권을 얻게 됩니다.
구원의 증표이지요.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여기서 먼저 생각할 것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누구인가?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이란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된 자를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는 성령으로 난 자이지요.
앞의 7단계를 모두 거치고 오직 성령으로 만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이 땅에서 박해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왜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된 자들이 박해를 받을까요?
왜 육신의 속한 사람들은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된 사람들을 싫어하고 미워하며 배척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육신의 속한 사람과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욕심에 따라 살아갑니다.
‘의와 화평과 희락’이지요.
이것을 확대하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재(갈5:22-23)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이고 하나님의 의가 먼저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사람은요?
늘 그 반대입니다.
자신의 정욕, 자기 목숨에 따라 살아갑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러니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지요.
갈라디아서 4장 29절입니다.
4: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런 중보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7:14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7:15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3)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또는 '악에서'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17:17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거짓(불의)과 싸우는 자, 그래서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어떤 복을 누리게 되까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라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박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할까요?
첫째, 무엇보다도 박해를 스스로 자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마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자기 육체의 연약함을 알고, 피할 수 있으면 박해를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거나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박해에 있어서 우리가 꼭 주의해야할 것은 박해 받는 것 자체가 ‘의를 위하는 사람’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를 위하는 사람에게 박해는 필연적이지만 박해 받는 모든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거나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박해를 피할 수 없으면 잠잠히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그리고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사53:7) 담담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 프란체스코처럼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세 번째입니다.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나오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지막 네 번째입니다.
믿음
곧 의에 이르는 믿음으로 박해를 이기라는 것입니다.
박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오직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 5장 4절입니다.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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