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마태복음 1:18-25 의로운 사람 요셉

心貧者 2016. 12. 20. 11:03


의로운 사람 요셉

마태복음 1:18-252016/12/18(주일오후)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계보.

족보이지요.

조상들의 이름을 빼곡히 기록하는 것으로 다윗의 자손이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탄생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누구는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라는 구절이 지루하게 반복됩니다. 그러다가 마태는 족보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냅니다.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열네 대’, 눈에 들오는 단어이지요.

족보의 생명력은 정확성입니다.

족보는 그 사람의 뿌리 곧 그 근본을 제시하는 책이기 때문에 누락이 없는 정확한 기록이 족보의 생명력입니다.

그런데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족보는 그런 면에서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8절입니다.

1: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여기에 보면 요람이 웃시야를 낳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아하시아, 요아스 그리고 아마샤 이렇게 3대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분명히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 아하시아, 요아스, 아마샤 이렇게 3대가 기록되어 있지만 마태복음 1장은 이 3대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구약성경을 잘 모른 사람도 아니고, 사복음서 저자 중 구약성경을 가장 많이 인용한 사람이 마태인데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요?

그 이유는 열 네데라는 숫자 때문입니다.

완전수 7의 재수가 14이지요.

그래서 마태는 완전수 7의 재수인 열 네데라는 숫자에 맞추기 위해 족보를 의도적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무엇인가를 암시하기 위해 사용 한 독특한 문학적 양식이지요.

 

어찌되었든 마태가 이런 왜곡을 감수한 것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 곧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의 역사가 예수님에게서 정점을 이룬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기 위해서 그래서 의도적으로 완전수 7의 재수인 열 네데로 족보를 편집한 것입니다.


오늘본문 18절입니다.

17절까지 예수님의 족보를 마무리한 마태는 18절 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비교적 아주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여러 정보들이 나오는 데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18절입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예수님이 잉태되었다.

동정녀 탄생이지요.

 

둘째, 19절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다.

 

셋째, 21절 주의 사자가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는데 예수이다.

그 뜻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다.

구원할 자입니다.

구약, 곧 히브리어 이름으로는 여호수아이지요.

넷째, 23절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그 뜻을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렇게 4 가지입니다.

 

이 중에서 제가 오늘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두 번째, 마리아의 남편 요셉입니다.

 

요셉하면 예수님의 아버지 보다 먼저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입니다.

야곱 훗날 이스라엘이 되지요.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은 구약성서에서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연결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애굽에서의 종살이 곧 옛 세계와 출애굽 이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새로운 세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오시기 전과 그리고 주님이 오신 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감당합니다.

하지만 이런 요셉을 교회는 오랫동안 중요 인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도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 마리아와 달리 늘 나이 많은 늙은 노인의 모습으로 요셉이 등장합니다.

 

요셉.

과연 그런 푸대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아니지요.

그래서 오늘은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에 대해서 주어진 시간 안에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유다의 전통에 따르면 유대인의 약혼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약혼과 아주 다릅니다.

유대인의 약혼은 사실상 법적 부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19절을 보시지요.

요셉을 어떻게 호칭합니까?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이처럼 지금의 약혼과 그 개념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약혼이지만 법적 책임이 있는 관계이지요.

약혼했다고 바로 함께 사는 것은 아닙니다.

풍습에 따라 신부는 일 년 동안 친정에 머물면서 아내로서의 역할을 익히게 됩니다.

 

아내의 역할.

199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는 예수복음이라는 책에서 당시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해야 할 일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양털에 빗질을 하고, 실을 짜고, 천을 짜고, 매일 아침 가족이 먹을 빵을 굽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다른 물동이는 등에 진 채 가파른 골짜기를 올라온다. 늦은 오후에는 샛길과 주위 들판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모으고 그루터기를 베고, 다른 바구니에는 쇠똥을 담고 나사렛의 위쪽 비탈에서 많이 자라는 엉겅퀴와 가시나무도 채워 넣는다.

(주제 사라마구, <예수복음> p.29-30)

이처럼 누구가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참 고단한 일상이었습니다.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태중에 아이가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령으로 말입니다.

18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동거하기 전에

다시 말해 처녀가 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실, 설명 자체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우리가 동정녀 탄생을 이야기 할 때는 사실 관계가 아닌 믿음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당사자 요셉입니다.

동거하기 전에

다시 말해 처녀가 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 난감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요셉,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마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드러내지 아니하고그리고 가만히입니다.

이것이 요셉이 택한 방법이었습니다.

드러내지 아니하고이 말은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로 바꾸어 번역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그리고 가만히이 문제를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약혼녀 마리아를 위한 배려이자 사랑이지요.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사랑을 정의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3: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절대용서) 모든 것을 믿으며(절대신뢰), 모든 것을 바라며(절대소망), 모든 것을 견딥니다(절대인내).

 

절대용서, 절대 신뢰, 절대소망, 절대인내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한 마리아를 감싸 않을 수 있었고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21절입니다.

21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25"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는 요셉의 순종이 서로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19절에서 요셉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말씀을 마칩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

결국 그는 첫째, 육체로는 예수님 족보의 뿌리가 되는 축복을 누립니다.

둘째, 구약의 요셉처럼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여는 초석이 되는 복을 누입니다.

마지막 셋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실천하는 의로운 사람이 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바라기는 의로운 사람 요셉처럼 우리에게도 의로운 복이 동일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