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가득한 여호와의 영광
에스겔 43:1-5절 2016/5/29(주일오후)
43:1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43: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43:3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43: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43:5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그 옛날 2000년 전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 성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강림이 임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 속에서도 동일한 성령의 강림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인의 3대 명절인 유월절을 넘어 50일이 지난 오순절 축제 때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 때 사도행전에 따르면 제 삼시, 오전 9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무리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 이 사건은 정말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도 없는 오직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제자를 포함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인류 역사상 성령의 강림을 처음으로 체험하게 되었지만 그들 역시 자신이 경험하고 있고 그리고 행하고 있는 이 신비한 일들이 아주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첫째 하늘로부터 내려온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 채운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려앉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셋째입니다.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을 때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 사람마다 방언 곧 다른 나라의 말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이 전에 가졌던 신앙의 체험들이나 그리고 자신들이 이 전에 알고 있었던 성경적 지식들이나 그리고 유대교 전통 속에서도 이 일은 매우 낯선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하게 경험한 것은 분명했지만 그 경험한 것을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도 그리고 설명할 수도 없는 사건이 성령강림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강림 사건을 유일하게 기록한 사도행전을 우리가 주목해야합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성령의 직접적 임재 사건을 놀랍게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도록 사람의 말로 표현을 합니다.
사도행전 2장 1-3절입니다.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령에 대한 표현들입니다.
성령.
하나님처럼 보이지 않는 무감지의 존재입니다.
알 수 없지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성령의 역사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우리 몸으로 느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표현들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 즉 ‘영’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나 그리고 헬라어 ‘프뉴마’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대신 누가가 동원한 것은 두 가지의 표현입니다.
첫째 2절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라는 표현입니다.
바람이지요.
그리고 둘째 3절입니다.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불의 혀’라는 표현입니다.
역시 바람입니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누가는 성령의 강림(성령의 임재) 사건을 공통적으로 ‘바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가 주목해야합니다.
이는 장차 오실 성령을 예표 했던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 역시, 요한복음 3장에서 성령의 강림, 성령의 임재(나타남)을 바람으로 비유합니다.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그렇다면 누가나 요한이나 자신들이 설명하고자 하는 이 ‘바람’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생기 곧 ‘생명의 기운’을 뜻합니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우리 성경에는 이것을 생기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그 뜻을 풀면 이 세상의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생명의 기운, 생명의 바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고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살아가면 첫 번째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가 신바람입니다.
신바람이 나는 것입니다.
찬송가 484장 3절이 말하는 것처럼 ‘하늘의 기쁨’이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긋지긋했던 죄의 법 그리고 사망의 법에서 자유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0장을 보시면 부활의 소망을 등지고 골방에 숨어 있었던 제자들을 찾아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숨, 곧 생명의 기운(생명의 바람)을 불어넣으시면서 하신 말씀이 “후~~~ 성령을 받아라.”입니다.
요한복음 20장입니다.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처럼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입김, 하나님의 바람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그는 생령 곧 살아있는 영이 되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진정한 의의 사람 곧 거듭난 새 생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바람이 믿는 이들의 모임인 교회 속에 들어오면 교회는 갱신되고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숨이 우리의 역사 속에 들어오면 모든 이들이 해함을 받거나 상함을 받지 않는 요한계시록 21:4절 말씀이 이루어지는 하늘의 기쁨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늘의 기쁨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충만함.
이 사건과 견줄 수 있는 사건이 구약성경에서는 ‘여호와의 영광’으로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영광.
어디에 가득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성전
빛 한줌도 들어오지 않는 성전입니다.
거기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영광.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분을 결코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바벨론 포로기 곧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 활동했던 예언자 중에 한 사람이 ‘에스겔’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바벨론 그발 강가에 있었던 에스겔은 자기 집에서 놀라운 비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환상이지요.
유다 장로들과 함께 앉아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하늘과 땅 사이로 에스겔을 들어 올리더니 바벨론 그발 강가에 있던 그를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십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에스겔은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역겨운 일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을 섬겨야할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이 온갖 우상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은 나라가 누란의 위기 속에 있는 데도 제 잇속만 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것을 가만둘 리가 없지요.
그래서 배신자 이스라엘을 향해 멸망과 죽음을 선고하십니다.
그 참담한 광경 속에서 에스겔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더 놀라운 광경 하나를 더 보여주십니다.
에스겔 10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덮고 있는 시은좌 위 그룹들 사이에 좌정해 계셔야할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어디에 머물렀는가 하면 예루살렘 성 동문에 머물러 계십니다.
10: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10: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 앞의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어야할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것입니다
저는 에스겔의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처한 교회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 우리도 거기에 속한 것은 아닌가하는 아찔한 생각 때문입니다.
교회,
이 땅에 세워진 모든 교회, 부름 받은 성도는 예배를 드릴 때 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입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교회나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신0지 이단도 자신들만이 참 교회, 참 성도라고 우겨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친히 머물고 계신 교회.
여호와의 영광이 머무르는 교회는?
글쎄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 가난한 자와 함께 아픔을 나누고,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주님의 일을 수행하는 건강한 교회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교회라는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운동력 있는 교회,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처한 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너무 빨리 포기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 모든 문제의 해답은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합니다.
교회의 희망.
그 희망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희망.
그것은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에스겔 11장 16절 말씀으로부터 출발합니다.
11: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려 있어야할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가고 그리고 선민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멀리 이방 사람들 가운데로 내버림을 당하고 그리고 여러 나라와 민족 가운데 흩어져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들 속에서 하나님이 잠시 그들의 성소가 되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죄 지은 백성.
그래서 이방의 땅 바벨론에 끌려가서 죄 값을 치르는 징계.
그 징계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긍휼한 마음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쫓겨 간 그 나라에서도 잠시나마 그들의 성소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시 말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떠난 여호와의 영이 장차 메시야가 온다고 하는 동문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예루살렘이 아닌 곳에서도 이방인의 땅 동쪽 바벨론에서도 그들의 성소가 되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에스겔 11장 17절 이하입니다.
11:17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11:18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11: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첫째.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인도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 속에 일치된 마음을 주고,
그리고 셋째 새로운 영을 그들 속에 넣어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결과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라 살아갈 것이고, 출애굽의 약속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는 이 약속을 하나님이 친히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희망을 본 것입니다.
교회의 희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 때 교회의 희망은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침내 새로운 희망, 새로운 비전을 다시 한 번 하나님이 보여주십니다.
포로로 잡혀간 지 25년째 되는 해.
예루살렘 도성이 함락된 지 14년째가 되는 해 첫째 달 십일입니다.
주님의 권능이 에스겔을 사로잡아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데려갑니다.
거기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시 회복되는 성전의 모양을 일일이 지켜봅니다. 성전의 측량이 다 끝나자 이번에는 하나님이 에스겔을 메시야가 온다고 하는 동문으로 데려갑니다.
일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떠났던 여호와의 영광이 임시로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그의 음성은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와 같고 땅은 영광의 광채로 환해졌습니다.
에스겔이 얼마나 놀랬던지 그 장엄한 광경에 놀라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영광에 싸인 채 성전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떠나갔던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성전을 가득 채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43: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43:5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말씀을 마칩니다.
어떻습니까?
여호와의 영광이 교회를 떠난 것처럼 보입니까?
그래서 교회가 희망이 없어 보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 43장 4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영광이 메시야가 오신다고 하는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보셔야합니다.
그리고 43장 5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 안뜰로 들어가게 하는 체험을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성전에 가득한 여호와의 영광을 여러분들이 직접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성전에 가득한 여호와의 영광
결코 성전 밖에서는, 교회 밖에서는 이것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호와의 영광이 머무는 이 자리에 여러분의 형제 여러분의 자녀 여러분의 이웃을 데려 오십시오.
‘여호와의 영광이 머무는 00교회에 와 보라’
‘이 00교회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라’
그렇게 선포하십시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43장 5절의 말씀처럼 들어서라도 데러 다 앉히십시오.
그러면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는 그 자리에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임할 것이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할 것이고
그리고 거기에 모인 모두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게 하는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증거 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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