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이사야11:6-9 하나님 나라

心貧者 2016. 5. 24. 10:51


하나님 나라

이사야 11:6-92016/5/20()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11: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제가 마흔이 넘고 체증이 불면서 주의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건강에 대한 염려입니다.

지금부터 건강을 관리해야 성인병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다는 충고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름대로 기울이는 노력이 있습니다.

 

첫째,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실천하신 방법으로 월,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 오후 3시까지 금식하는 것인데 이 일이 현재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 2시간이상 묵상 하며 걷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3번 이상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잘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셋째, 소량의 아스피린을 매일 한 알씩 챙겨 먹는 일입니다.

이것만 지금 꼭 지키고 있습니다.

혈전이라고 하지요.

피가 뭉치는 것을 예방하고 피가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이 있다고 해서 매일 적힌 요일에 따라 한 알씩 복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3가지 방법입니다.

방법으로는 3가지이지만 목적은 딱 한 가지입니다.

흐름입니다.

음식을 먹고 배설하는 흐름이구요.

숨을 들이마시고 내 뱉는 흐름입니다.

그리고 피의 흐름입니다.

이처럼 제가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것은 흐름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흐름은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연도 흐름이 좋아야 합니다.

물도 잘 흘러야 하고, 공기도 잘 흘러야 하고, 빛도 잘 흘러야 합니다.

흐르지 않고 멈추면 자연은 죽습니다.

아무리 자연히 거대하고 무궁무진하다 할지라도 흐름이 막히면 자연은 죽습니다.

 

이는 경제활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피가 잘 흐르고 물이 잘 흘러야 하는 것처럼 돈(물질)도 잘 흘러야합니다.

돈이 흐르지 못하고 막히면 경제가 망하고 그 막힘 때문에 백성들이 힘이 들게 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목숨마저 위협받게 됩니다.

이처럼 흐름은 아주 중요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 흐름에는 하나님이 정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리고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그리고 부한 곳에서 가난한 곳으로 흐르는 흐름의 원칙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카오스 혼돈의 반대말인 코스모스 질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질서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바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그리고 부한 곳에서 가난한 곳으로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긍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의 세계처럼 상하 위계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에서도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그 흐름의 끝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 코스모스가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상태를 성경은 샬롬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이들이 부족함 없이 만족하는 상태가 바로 평안, 샬롬입니다.

그리고 이 원칙이 지켜지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보지요.

어떻습니까? 흐름이 원활합니까?

아닙니다.

여기저기가 다 막혀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고그리고 세상이 싫은불행한 삶 곧 샬롬이 깨진 상태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자연도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엘리뇨 현상, 아기예수)

 

이처럼 흐름(코스모스)을 막는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원칙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 흐름을 제 마음대로 바꾸는 반칙을 서슴없이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약한 곳에서 강한 곳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가난한 곳에서 부한 곳으로

그래서 강한 자는 더 강해지고, 높은 자는 그 끝을 간음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지고 부한 자는 쌓을 수 없을 만큼 더 부해지는 것입니다.

 

몇 년 전입니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들을 데리고 천안에 있는 워터피아에 갔었습니다.

그날 애들은 신났지만 저는 아주 혼났습니다.

물을 정화하기 위해 뿌려놓은 왁스 냄새 때문에 아주 혼났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아이들 지켜보는 일, 간식 사주고 물 먹이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보다 더 비싼 돈 주도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구나.’

그리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늘만큼, 아니 하늘 보다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낮아짐

incarnation(성육신)이 이런 것이 아닐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아이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것과 같이,

강한 자가 약한 자가 되어 약한 자들과 함께 놀아준다면,

부자가 가난한자가 되어 가난한자의 마음을 알아주며 저들과 함께 놀아 줄 수 있다면, 높은 사람이 낮은 자가 되어 낮은 자의 마음을 헤아려 저들과 함께 놀아줄 수 있다면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하지 않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바로 그런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1:9 절의 말씀처럼 물이 바다를 덮는 것처럼 여호와를 아는 지식 곧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인지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 충만하면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이런 세상입니다.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11: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것이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된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교회도 경쟁하는 시대에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물론 우리의 지혜와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 충만해 지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질서를 잡아가시는 분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그 때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리가 어린 양의 친구가 되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친구가 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연약한 사람과 친구가 되고, 어른이 아이들의 친구가 되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친구가 되고, 강한 자가 약한 사람의 친구가 되고, 높은 자가 낮은 자의 친구가 되어 바람막이가 된다면 그곳이 곧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듣는 말이 있습니다.

너보다 못한 아이들하고 놀지 말아라.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놀아라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 보다 강하고 높고 부한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본능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결과 나 보다 더 약하고 더 가난하고 더 낮은 자들을 은연중에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은 그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벗이 되지 않는다고 세상은 세상을 질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몸인 교회는 어떻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매일 같이 기도하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가난한자와 그리고 낮은 자와 경계선을 긋는 순간 세상의 질타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가난한 자에게 내민 손.

그 손은 그냥 손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에게 있어서 그 손은 구원의 손 곧 하나님의 손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도 가난하지만 우리 보다 더 가난한 자를 위해 내민 그 손이 구원의 손 곧 하나님의 손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그런 체험이 있는 이번 바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