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무궁 한 하나님의 영광
로마서16: 17-27 2016/6/1(수)
로마서 강해를 마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어리석은 사람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리스도이신 예수.
그분 속에 담긴 하나님의 복음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고
그리고 깨달은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잘 경청해 주신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참 고맙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통하여 전하고자 했던 주제, 핵심 알맹이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①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1:4 ②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4절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둘째, 우리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다.
이것이 바울이 사도가 되어서 전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복음 핵심 알맹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모든 가르침은 이미 15장 13절에서 끝을 맺고 있습니다.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성령의 증거물들이지요)을 믿음 안(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가 그리스도다)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다른 불순물이 없는 상태, 곧 순도100%)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마라나타, 주 예수의 강림)이 넘치게(이 역시 다른 불순물이 없는 상태, 순도100%)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로마서에 담긴 공식적인 내용의 끝입니다.
그 이후에 등장하는 말씀들은 주로 사적인 안부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지금 이 편지를 들고 가는 겐그리아 교회의 여집사 뵈뵈를 잘 영접하고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불편함 없이 잘 챙겨주라는 당부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함께 천막을 지어가면서 복음을 전했던 동역자들 즉 다시 그들 삶의 터전이었던 로마로 돌아 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방의 첫 개종자인 에베네도(5절)에 대한 안부도 전합니다.
문안 명단에서 특히 눈에 띠는 것은 아시아주의 수도인 에베소 출신의 성도들이 참 많다는 점입니다.
어찌되었던 로마서 16장 16절‘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라는 인사말로 모든 편지의 끝을 맺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인사말과 어울리지 않는 거짓교사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좀 뜬금없지만 인사말 사이에 거짓교사에 대한 경고를 사도 바울이 삽입합니다.
왜 그랬을까?
그만큼 거짓교사에 대한 경고는 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핵심사역 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로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찾아가 하나님의 복음을 잘 증거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였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왜곡하는 이단의 가르침을 방어하고 그리고 그들의 유혹으로부터 사랑하는 성도들을 지켜내는 것도 아주 중요한 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사말 중간에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를 삽입한 것입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을 만큼 매우 긴박한 사항이었기 때문입니다.
거짓교사에 대한 경고, 그 메시지의 핵심은 이런 것입니다.
17절입니다.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첫째, 하나님 복음의 교훈을 거스르거나
그리고 둘째, 교회 공동체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이들을 잘 살펴 서 그들에게서 떠나가라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복음. 그 교훈을 거스르는 자들입니다.
교훈을 거스르는 자.
여기서는 우리의 주가 되는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이나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은 자들을 말합니다.
참 하나님이요 참 인간이라는 가르침을 거스르는 자들입니다.
주로 ‘그노시스’라는 영지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두 번째, 교회 공동체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이들입니다.
여기서는 율법의 증표인 할례를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해당됩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들의 모든 교훈과 주장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핵심 가치를 율법의 행함이 아닌 믿음의 행함 곧 하나님과 화목, 이웃과의 화목에 초점을 둡니다.
①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② 이웃과의 화목입니다.
3절 이하부터 나오지만 14절부터 보겠습니다.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2: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2: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주인과 종 더 이상 이런 편 가름을 하지 말고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교훈을 거스르는 자들이 양의 가면을 쓰고 교회 안에 기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점이 매우 염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고 복음 안에서 거듭나도록 돕는 일도 중요하지만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분별력이 없는 성도들이 이단이 전하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사도로서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그래서 인사말을 잠시 멈추고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를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만큼 이단에 대한 문제는 타협점이 없는 긴박한 사항이었습니다.
거짓교사의 가르침, 그들의 교훈 어떻게 대처해야할까요?
바울은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대한 행동지침을 이렇게 밝힙니다.
다시 17절입니다.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단의 대처방법은 논쟁이나 설득이 아닙니다.
그냥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상책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가 18절에 나옵니다.
(첫째)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둘째)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 이단이지요.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입니다.
‘예수님, 예수님’입니다.
아주 교활할 정도로 그리고 아첨하는 말 이상으로 ‘예수, 예수’합니다.
그러니 믿음이 연약하여 분별력이 없는 순진한 자들의 마음이 미혹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요?
오직 예수님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거짓교사의 교훈을 우리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입니다.
두 가지 기준입니다.
첫째, 그의 태도를 보면 압니다.
입술로만 떠들지 정작 우리의 주 곧 하나님으로 그리고 그리스도로 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르침과 삶의 불일치입니다.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섬김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입술만 예수님이고 삶은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 자신만이 중심에 두는 이기적인 행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두 번째, 행실입니다.
그의 행실을 보면 예수의 이름을 팔아 자기들의 배만 불리는 것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이루는 한 지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핏 값으로 산 성도, 그 한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라는 공동체, 거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배, 자기 밥그릇, 자기 자리, 자기 식구입니다.
신앙의 선배 험석헌 선생님은 ‘씨앗의 설움’ 이라는 글에서 이런 쓴 소리로 교회를 향해 충고를 했습니다.
예수는 말을 입으로 한 것이 아니요, 몸으로 했다.
그래서 자기 말 믿으란 말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 했다.
그가 피땀 흘려 한 말씀을 몇 주일 교회에 가고, 몇 해 신학교에 건들건들 다니고는 제 것이나 되는 듯 팔아먹으려는 놈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제 딴으로 조금 얻은 것을 내세워 증거하고, 그 때문에 참이 뭔지 아는 민중이 조금 거기 귀 기울이는 것을 보면 제 편에서 저건 가짜라고 큰소리치는 놈들.
대전에 가면 목원대학교가 있습니다.
학교를 이전하기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학교 입구에 입간판처럼 돌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그런데 어느 날 이 말이 이렇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내 양을 먹어라’
아마도 그 신학생 눈에는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못난 교수들과 목사들로 비추어진 모양입니다.
바울은 거짓교사에 대한 경고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16: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여기서는 거짓교사를 아예 사탄이라고 지목하면서 평강의 하나님이 반드시 그 거짓 교사들을 우리의 발아래에서 상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우리의 발 아래에서’ 입니다.
그러니 우리 발바닥에 있는 것과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사탄은, 거짓 교훈을 전하는 거짓 교사는 그 삯으로 멸망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19절이 결론인데 오직 19절처럼 행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새 번역을 잠시 빌려온다면 ‘선한 일에는 슬기롭고, 악한 일에는 순진하기를 바랍니다.’
이와 비슷한 뜻의 말이 12장과 13장에서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왜 우리가 끝까지 인내함으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는가?
왜 우리가 어둠을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하는가?
왜 우리가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하는가?
왜 우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한 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가 25절 이하에 나옵니다.
16:25 나의(내가 전하는)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16: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16: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영광만이 세세무궁하기 때문입니다.(생명의 법)
거짓 교사, 어둠, 육체의 일, 악 이런 것들의 끝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사망의 법)
이것이 하나님이 정한 생명의 법, 사망의 법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로마서 하면 빠질 수 없는 한 사람이 웨슬리입니다.
웨슬리의 고백입니다.
“나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올더스케잇 거리로 가서 한 신도 모임에 참석하였다.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45분 경,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변화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이 생겼는데,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셨으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하셨다는 확신이었다.”
요한 웨슬리는 그 길로 동생 찰스 웨슬리를 찾아가 그 동안 풀어 내지 못했던 믿음에 대한 의문의 답을 찾았다고 하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믿는다.”
요한 웨슬리, 그가 그 동안 풀어 내지 못한 신앙의 의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것이 모든 신앙인들의 숙제입니다.
그런데 그 숙제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 답이 8장에 나옵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것을 비로써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죄함이 없는 생명의 법.
정죄함이 없는 성령의 법.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만이 세세무궁 한 이 법이
지금 나를 지배라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써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웨슬리가 동생 찰스를 찾아가 외친 말이 ‘나는 믿는다.’ 입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믿음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진실하게 나타나기를 소망하면서 로마서 강해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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