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로마서강해 15장 14-33절 이방인을 위하여

心貧者 2016. 5. 10. 11:31


이방인을 위하여

로마서 1514-33                                                     2016/5/4()

 

사도 바울이 구원 받은 후 늘 한 시도 놓지 않고 기도한 제목이 있습니다.

동족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입니다.

그 옛날 율법 아래서 자기 자신이 잘못을 범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는 자기 민족 유대인들을 볼 때 마다 복음전도에 대한 피가 끌어오를 정도로 민족 복음화의 열정이 대단했던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9장입니다.

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9:2 (1절에 포함)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나의 형제 골육의 친척 곧 내 민족 이스라엘이 구원 받을 수만 있다면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받아도 좋고,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나는 그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굴복하고 돌아온 것처럼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에게 굴복하고 돌아오는 것.

이것이 사도 바울의 마지막 꿈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진정한 꿈은 자기 민족 유대인의 구원입니다.

이것이 곧 구약의 성취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런 사도 바울의 꿈의 방향을 바꾸십니다.

오히려 바울의 생각과 전혀 다른 길로 하나님이 이끌어 가십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인 바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

바로 이방인의 사도로 하나님이 이끌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성령의 역사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계획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끌어 가시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 곧 성령의 역사입니다.

바울의 계획은 동족 이스라엘 이였지만 하나님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바울다운 것은 자신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 곧 성령의 이끄심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방인의 사도로 헌신하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15: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이 복음전도여행을 할 때 마다 어디를 가든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회당이었습니다.

거기에 가면 가기 민족 유대인들을 만나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회당만큼 복음전도가 용이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유대인들이 모여 있는 회당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민족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엉뚱하게 이방인들 즉 무할례자인 헬라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 답답하고 당혹스럽지요.

그래도 굴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제일 먼저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지만 결과는 늘 이방인을 먼저 거두는 것입니다.

씨는 유대인에게 뿌리고 열매는 이방인에게서 거두는 것입니다.

 

이 일이 반복되자 사도 바울이 뒤 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하나님이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구나.’

할례자인 유대인을 위한 사도가 아니라 무할례자인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다시 15-16절입니다.

15: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꾼이 된 자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서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일

이것이 사도 바울의 최종 목표가 됩니다.

 

로마서를 쓴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로마서 11-7절입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처럼 하나님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이방인 땅 로마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세상의 중심 로마로 향하였고 그리고 그곳에서 사도 바울 자신이 스스로 제물이 되어 순교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읽습니다.

15: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5: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참 대단하지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진정한 개척정신이지요.

복음의 개척정신.

이것을 사도바울의 선교 정신이고 우리 교회가 회복할 과제입니다.

 

선교사들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선교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감리교 장로교할 것 없이 모든 교파가 서울로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니 좁은 땅덩어리에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지요.

선교사들끼리 선교지를 놓고 잡음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시행한 정책이 선교지 분할정책입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지역과 평양은 감리교 장로교등 모든 교파의 공동구역으로 하고 강원도 충청도는 감리교, 전라도 경상도는 장로교 이런 식으로 남의 교단이 세운 터 위에는 복음전도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선교지 분할정책을 하게 됩니다.

왜 이런 기준을 정했을까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겠다는 복음의 개척정신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22절 이하는 바울의 전도 여행계획이 나옵니다.

주목할 것은 28절입니다.

15: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의 최종목적지는 로마가 아니라 서바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서바나는 지금의 스페인을 말하는데 당시 스페인은 지구 서쪽 끝 곧 죽음의 땅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거기를 바울이 최종 목적지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그는 복음의 개척자였습니다.

 

우리가 초심을 잃지 않고 기도해야할 것은 사도 바울처럼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한다는 복음의 개척정신을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18절과 19절의 말씀처럼 표적과 기사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