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탐대실(小貪大失)
마태복음4:18-22절 2016/4/15(금)
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4: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고사성어중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눈앞을 가리고 있는 콩알 하나 때문에 멀리 있는 태산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말입니다.
이는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라는 콩알 하나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태산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우리가 종종 범합니다.
구약성경 중간을 보면 전도서(코헬렛)라는 책이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지혜의 왕 솔로몬이 인생 말년에 쓴 지혜서입니다.
그 책을 시작하면서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사람은 누구나 야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특히 큰 자가 되고 싶고 대접 받고 인정받는 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이런 꿈과 야망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말합니다.
세상의 꿈 그리고 세상의 야망, 그것을 위한 인간의 모든 노력과 수고는 결국 헛되고 헛되다는 것입니다.
유익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그 역시 헛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어느 누구도 죽은 자의 이름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생을 살아갈 때 ‘소탐대실’(小貪大失) 곧 작은 것을 탐하다가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치는 인생을 살아가지 말라는 것이 솔로몬의 권면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라는 콩알하나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권세라 할지라도 10년을 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권불오년’이지요.
헌법을 개정해서 대통령 중임제를 실시해야 권불십년이 됩니다.
이처럼 세상의 권세, 세상의 권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과 늘 함께 쓰이는 말인데 무슨 뜻입니까?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입니다.
힘이나 세력 따위가 한번 성하면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요즈음 어디를 가도 사진이나 tv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연예인이 있습니다.
글쎄요.
언제까지 그 인기가 지속될까요?
싱거운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10대는 공부 잘하는 여자 아이가 인기가 제일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20대가 되면 아무리 공부 잘한 여자라 할지라도 예쁜 여자 이길 수 없다고 합니다.
30대가 되면 예쁜 여자, 일하는 여자 이길 수 없고
40대가 되면 일하는 여자, 남편 잘 만난 여자 이길 수 없고
50대가 되면 남편 잘 만나 여자, 자식 잘 둔 여자 이길 수 없고
60대 자식 잘 둔 여자, 건강한 여자 이길 수 없고
70대 건강한 여자는 남편 먼저 보낸 여자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을 보겠습니다.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바울은 자신의 자서전과 같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육체의 삶은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100년을 산다할지라도 잠간 동안 보이다가 사라지고 마는 안개와 같은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안개와 같은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꿈 세상의 야망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꿈을 상실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이 예수님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4장입니다.
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대목은 20절입니다.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다’라는 말씀입니다.
한 번 상상해 보지요.
베드로와 안드레 이 두 형제는 갈릴리에서 평생 어부로 꿈을 키워온 사람들입니다.
그물질을 잘해서 큰 어부가 되는 것이 그의 꿈입니다.
만선의 꿈을 이루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습니다.
소박한 꿈이지만 나름대로 여기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와 안드레, 이 두 형제가 어떻게 합니까?
눈앞에 펼쳐진 ‘소탐대실’(小貪大失)을 극복합니다.
만선의 꿈을 접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로 작정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 자신을 봅시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물론 우리에게도 다짐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소망을 예수님에게 두고 살아가겠다고 다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그물을 버렸는가? 입니다.
내가 목숨처럼 여기는 그 그물을 정말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처럼 ‘소탐대실’(小貪大失)을 극복하고 예수님만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입니다.
혹시, 혹시 입니다.
아직도 얽히고설킨 그물처럼 세상의 꿈과 세상의 욕망과 세상의 야욕에 붙들려 쩔쩔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어려서 돈 줍는 꿈을 자주 꾸었었습니다.
가난하여 용돈이 궁하다보니 그런 꿈을 자주 꾼 것 같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떨어진 돈을 한 없이 줍다가 깨어나는 꿈을 참 많이 꾸었습니다.
그러면 기분이 참 묘합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꿈이 있다면 돈만 줍다가 한 푼도 쓰지 못하고 깨는 꿈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돈 줍는 꿈을 꾸었는데 역시 돈만 줍다가 꿈이 깨었습니다.
하도 속상해서 꾀를 내었습니다.
‘다음에 돈 줍는 꿈을 꾸면, 절반만 줍고 가게로 냅다 뛰어가서 핫도그 하나 사먹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또 그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네, 그날도 돈만 신나게 줍다가 한 푼도 쓰지 못하고 꿈이 깼습니다.
여러분, 소탐대실에서 벗어나십시오.
세상의 꿈과 세상의 욕망으로 얽히고설킨 그물을 이제는 좀 내려놓고 그리스도인 답게 오직 예수님만을 붙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사람을 낚는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고작 그물하나 의지해서 만선의 꿈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았던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그 그물을 버리자 어떤 변화가 나타납니까?
천하보다 귀한 사람을 낚는 어부로 하나님이 변화시킵니다.
얼마나 멋있고 폼 나는 인생입니까?
어제까지 그물에 얽히고설켜서 쩔쩔매던 인간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구원하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멋있고 폼 납니까?
주님의 양을 먹이는 주님의 몸인 교회가 됩니다.
주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의 에표인 교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나를 따르라’
어떻습니까?
그 음성이 들려지십니까?
그러면 지금 우리가 목숨처럼 여기고 우리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이 거추장스러워야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있어서 손에 든 그물이 거추장스러운 것처럼 거추장스러워야합니다.
그것 붙들고 쩔쩔매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소탐대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십시오.
그래야 윤동주의 시 십자가의 한 시구처럼 ‘괴로웠던 사나이, 하지만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허락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이 말씀 앞에 무릎 꿇는 이 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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