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인정
고린도후서 10:17-18절 2015/10/23(금)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바울은 에베소에 2년여 머물면서 두란노 서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이 차츰 깊어진 것을 보자 그는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서 목회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일단 찾아가기로 약속한 고린도 교회를 거쳐 예루살렘 교회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형편이 허락된다면 고린도 교회에 머물면서 겨울을 날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고린도 교회로부터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지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가 분열되어 아주 심한 어려움과 아픔을 겪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접한 바울은 모든 사역을 접고 즉시 고린도로 향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선으로 택한 방법이 바로 편지였습니다.
그는 즉시 고린도 교인들의 미성숙한 믿음을 꾸짖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즐겨 읽는 고린도전서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왜 거짓 교사들의 선동에 휘말리는가?
왜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의 본질을 찾지 못하는가? 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거짓 교사로 인한 교인들 간의 편 가르기, 교인 간의 소송, 음행, 은사를 자랑하는 일에 대해 아주 엄하게 꾸짖습니다.
그리고 은사 중의 가장 큰 은사인 사랑으로 분열된 고린도교회 공동체를 회복하라고 권면합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그 꾸짖음을 양약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회초리를 물러 덤비는 개처럼 그들은 오히려 바울을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울이 가지고 있는 사도직에 대한 시비입니다.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라는 사도직의 라이센스(자격증)가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고린도방문 일정을 변경한 것을 보고 그는 도무지 일관성이 없어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말도 돌았습니다.
졸지에 몹쓸 사기꾼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비방에도 살이 붙는 법입니다.
언변도 시원치 않다든지, 용모가 보잘 것 없다든지, 돈만 밝힌다든지,
바울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바울이 사도로서 정말 문제가 많은 사람처럼 들릴 정도로 그 비방의 강도가 아주 심했습니다.
근거가 없는, 그리고 정도를 넘은 비방을 사도 바울에게 행한 것입니다.
저는 같은 동역자로서 고린도 교인들의 비방을 들은 바울의 심정을 잠시 헤아려보았습니다.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그 누구보다도 도탑다고 여겼던 관계가 속절없이 무너졌을 때 받은 바울의 충격은 사도의 직분을 벗어버리고 싶을 만큼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정말 힘들게 했던 것은 다른 것에 있습니다.
자신이 전심으로 목양했던 성도 중에서 연약한 믿음으로 인해 그리고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유혹을 받아 실족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비방도 견디기 힘든 일이지만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복음의 못자리에 심겨진 이들이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입니다.
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11:28 그 밖의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11:29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요.
고린도 교인들은 이러한 사도의 마음, 진정성을 몰랐습니다.
바울이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하여 비방만 할 뿐이었습니다.
바울은 당장 달려가 여러 가지 오해를 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써서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과 관련된 세 가지 진실을 밝힙니다.
첫째, 사도직에 대한 변호이고,
둘째, 약속했던 고린도 교회 방문이 취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셋째, 약할 때 주신 하나님의 은혜 곧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바울은 동역자인 디도 편에 고린도전서를 보내면서 오해가 풀리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나저제나 디도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여러 달이 흐른 후 마침내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디도가 돌아왔습니다.
디도가 가지고 온 소식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바울을 배척하도록 교인들을 선동하던 거짓된 교사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바울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일에 대해 고린도 교인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디도의 보고를 들은 바울은 깊이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또 하나의 새로운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고린도후서 1-9장의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배경이 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두 번째 편지에서 거듭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위로’와 ‘기쁨’이라는 단어입니다.
특히 고후1:3-7절 사이에 위로라는 단어가 무려 10번이나 나올 정도로 바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위로’라는 단어를 거듭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가 얼마나 마음 조렸으면 이 말을 반복했겠습니까?
그만큼 그는 연약한 고린도 교인들이 넘어질까 염려하며 마음을 졸인 진정한 사도였습니다.
자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사도로서의 자기의 직무를 다시 한 번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사도로서 자기 자신을 변호하면서 누가 진실한 하나님의 일꾼인지, 누가 진정한 주님의 사도인지 누가 이 시대의 진정한 목사인지를 평가하는 기준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본문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참된 일꾼인지 누가 하나님의 일꾼을 가장한 삯꾼인지에 대한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목회자들 가운데는 목회를 기업이나 가업처럼 여기고 접근하는 분들이 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그러지 그분들의 관심은 오직 교인수와 예산규모입니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것이 목회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복음 안에서 참된 목양에 대한, 참된 목회에 대한 기준을 우리에게 바로 세워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것이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한계, 소명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웠습니다.
이방인의 사도, 그는 그 직무에만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도가 닦아 놓은 터전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닌 늘 개척자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물론 자기의 모든 일을 주도하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둘째, 자기가 이룬 성취를 떠벌리지 않았습니다.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을 이룬 후에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이 있지요?
‘박수칠 때 떠나라’
그래야 누추해지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여러분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15:31)고 말한 이가 어찌 자기 영광을 구하겠습니까?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요3:30)고 말했던 세례자 요한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순간 목사는 영적 추락이 시작됩니다.
그러니 그러하지 않도록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셋째, 바울은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구했습니다.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해도 하나님이 고개를 저으시면 그는 실패자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눈에 뜨일 만한 일을 하지 못해도 하나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면 ‘그래. 수고했어.’ 그러시면 그는 잘 산 것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사역을 마지막 날 우리 주님으로부터 꼭 듣고 싶은 말씀 하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1절 말씀입니다.(새번역)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막1:11)
이 한 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말씀을 마칩니다.
사실 오늘 말씀은 여러분을 위한 것 보다는 저를 위한 설교입니다.
여러분 저는 목사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유능하고 유명한 목사는 아니지만 그분이 제시한 오늘 본문의 기준처럼 참된 목회자가 되고자 늘 고민하며 몸부림치는 목사입니다.
저는 오늘 제 마음을 사도 바울의 말씀을 빌려 여러분에게 공개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응답하실 차례입니다.
참된 목사,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늘 고민하며 몸부림치는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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