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일기

찬송가 582장 '어둔밤 마음의 잠겨'

心貧者 2013. 1. 10. 10:37

오늘 말씀 나누고 싶은 것은 성경이 아니고 찬송가입니다. 베드로, 바울 같은 옛날 옛적 외국인이 아니고, 20세기 이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초점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입니다. 할머니의 옛날 이바구처럼, 그냥 주저리주저리 냇물같이 흘러갈까 합니다.

  옛날 찬송가로 261장, 지금 찬송가로 582장은 <어둔밤 마음에 잠겨> 을 펴주시기 바랍니다. “작사 김재준, 작곡 이동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두 3절까지 있지요. 1970년대에는 2절까지 밖에 없었는데, 83년인가 찬송가 재편하면서 3절이 들어갔습니다. 유심히 보면, 1~2절과 3절은 느낌과 내용이 다릅니다.

  가사를 봅시다. 1절에서 “어둔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가 언제일까요. 아마 일제하이겠지요.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물론 우리나라고요. “빛 속에 새롭다”는 것은 그야말로 광-복이 아니겠습니까. 그 감격을 잊지 말고 그 빛을 우리의 삶속에 실현하여 생명탑을 놓아가자고 하고 있습니다. 2절은 그 시대 선각자들이 늘 부르던 내용이지요. “일꾼을 부른다”는 것과 “일하러가세 일하러가 삼천리 강산 위해”(580장 남궁억 작사)와 같이 삼천리강산(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남달리 사랑했던 우리 선각자들은 스스로 “일꾼”이 되어, “일하러 가세”의 자세가 충만합니다.    

  그런데 3절은 좀 다릅니다. “새 하늘 새 땅”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새하늘 새 땅”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네요. 21장 1절부터 보니,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보아라···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아픈 것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21:1-4). 광복된 나라만으로 새하늘 새땅이 그저 오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시 새하늘 새땅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고, 죽음이 없고, 슬픔과 고통과 울부짖음”이 없는 곳을 향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여러 모로 무딘 제가 1~2절과 3절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처음부터 알았을 리 없습니다. 알게 된 내력을 말씀드리지요. 얼마전 저는 홍성우 변호사님과 <인권변론 한시대>의 제목으로, 1970~80년대에 홍변호사님이 변호한 인권변론에 대한 상세한 증언을 들었습니다. 준비작업으로 홍변호사님이 보관하고 계신 재판기록 4만5천장을 받아 전산화를 완료했습니다. 그 바탕 위에 16주, 50시간동안 홍변호사님을 서울대에 모셔 기록하면서 상세한 증언을 들었습니다. 당시의 형사재판의 모습과 피고인, 변호인의 활약과 고투를 들으면서 전율하고 감동하고 눈물이 고이곤 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1976년 명동 3.1구국선언사건이 있습니다. 아마 민청학련사건과 더불어 70년대 최대의 반유신운동이자, 가장 주목된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윤보선, 김대중, 함석헌, 정일형, 이태영 등과 함께 천주교 신부님들(함세웅, 윤반웅, 김승훈), 그리고 기독교 목사님(문익환, 문동환, 안병무, 서남동 등)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그 일을 성사시킨 중심에 문익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 개인적으로 볼 때, 종교로부터 사회현장, 그리고 감옥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홍성우 변호사님은 문익환 목사님의 담당변호사로서, 문 목사님이 옥중에 계실 때, 면회를 했습니다. 그 때 문목사님이 “내가 한 소절을 불러줄 테니까 잘 기억하라”고 하여, 홍변호사님이 그걸 암송했습니다. 당시는 변호사도 필기구 지참이 허락되지 않을 때입니다. 그것을 적어서 문목사님의 가족에게 전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찬송가의 3절입니다. 그러니 582장의 작사자는 김재준+문익환 목사님이 되는 거지요. 스승(김재준)이 1~2절을 쓴 것을 이어받아, 제자(문익환)가 옥중에서 쓴 게 3절입니다.

II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아!”하고 탄성이 나왔습니다. 3절의 앞부분은 바로 문익환 목사님이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면서 쓴 구절로 보였거든요. “맑은 샘줄기 용솟아”는 바로 그의 고향 북간도의 용정이고요. (「선구자」에서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 때”가 떠오르지 않나요) “거칠은 땅에 흘러적실 때”는 그의 고향마을 앞을 흐르던 해란강의 줄기입니다.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 트인다.”는 것은 그의 심상 속에 새겨진 고향의 풍경을 압축한 것이지요. 옥중의 고통을 겪을 때, 사람들은 꿈속에 고향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요.

  <고향> 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요. 그런데 자신의 그 이미지는 다른 사람과 절대 같을 수 없습니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하는 시인과,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는 시인의 고향은 완전히 다르지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의 고향과 “박꽃피는 내고향, 담밑에 석류익은 아름다운 내고향”도 다 다릅니다.

  문익환의 고향은 북간도 용정의 명동촌이라고 합니다. 제가 2004년 6월, 제가 그 곳을 방문했을 때 느낌은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6월이어서 들녘이 푸르고 무성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익환의 고향, 명동촌으로 가면, 우리는 한 인물을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윤!동!주! 윤동주의 집과 문익환의 집은 저녁연기를 서로 확인할 수 있을만큼 가까이 있습니다. 윤동주는 문익환과 동갑이고, 갓난 애기 때 문익환의 모친의 젖을 같이 빨고 자랐습니다. 명동소학교 같은 반이었고, 은진중학교도 같이 다녔습니다. 평양숭실학교에도 같이 다니다가, 신사참배 물결에 반대하여 자퇴하여 고향에 돌아와 다시 용정 광명학원 중학교에 편입한 것도 같았습니다. 둘 다 공부를 아주 잘 했고요. 차이도 있습니다. 윤동주는 소년시절부터 시인이었습니다만, 문익환은 윤동주에게 눌려 시는 쓰지 못하고 있다가, 70대의 만년에 이르러 일련의 시를 쏟아냅니다. 역사의 격랑 속에 뛰어들면서 체험을 시로 남긴 것이지요. 문익환의 호가 늦봄이니, 역사현실에 직접참여도 시적 작업도 늦바람처럼 찾아온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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