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유다복음과 영지주의

心貧者 2006. 4. 15. 20:55
 

유다 복음」과 영지주의



이수민(한님성서연구소)


4월 7일 한국의 모든 신문은 일제히 「유다 복음」을 기사로 다루었다. 5년간 천여 개의 단편들을 맞추어 원문을 설정한 이 필사본은, 파손된 부분과 읽을 수 없는 부분들이 허다하며 해독이 어려운 많은 낱말들을 추측에 의존하여 채우고 있다. 이 작업은 매우 저명한 콥트어 학자인 연로한 루돌프 카세르(불어계 스위스 인)를 앞세우고 있어 설정된 원문이 신빙성이 높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파손된 부분들 때문에 언론에서 학자들이 진술하는 놀라운 주장들이 원문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1945년 12월 이집트 나그 함마디에서 높이 1미터짜리 항아리 속에 담긴 52편의 콥트어 문헌(논고)이 발견된 이래, 1970년대에 UNESCO의 지원을 받아 수십 명의 연구원들이 참가하여 보수 작업과 원문 설정, 번역이 시작되었다. 영어권에서는 이미 2000년에 완성을 보게 되었으나, 소심한 프랑스어권에서는 아직도 원문 설정과 번역을 끝내지 못한 형편이다. 1970년까지 아직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필사본들과 고물상에 방치되어 있던 필사본들을 전부 모아 지금은 카이로의 콥트 박물관에 소장해 놓기는 했으나, 여전히 많은 문헌들이 분실되었다는 사실을 통감한 학자들은 여러 차례 진상 규명차 여행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나그 함마디 문헌 속에는 복음들(「필립보 복음」, 「이집트인들의 복음」, 「토마 복음」)과 묵시록들이 있으며,  「유다 복음」도 분명히 그 항아리 속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는 「유다 복음」의 많은 문학적 요소들이 나그 함마디 문헌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180년경에 이레네우스(「반이단서」I,31,1)는「유다 복음」이 발렌티누스파의 한 작은 분파에 속한다고 했지만, 220-340년에는「유다 복음」이 특별히 셋(Seth)파 영지주의에 속했던 것이 분명하다. 셋파 영지주의자들은 스스로 ‘위대한 세대’, ‘불변하고 부패하지 않는 세대’로 자청했는데 이런 표현들이 「유다 복음」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발렌티누스파들도 자신들을 ‘셋의 영적 씨앗’으로 생각하였으니, 이는 구약성서 창세기 4장 25절에서 살해된 아벨을 대신하여 탄생한 셋을 ‘다른 씨앗’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유다 복음」에서 환시를 통해 설명하는 천상 세계의 실체들, ‘스스로 나신 분’(autogenes), ‘바르벨로’, ‘어린이로 나타난 예수’,  ‘얄다바오트’,  ‘아다마스’, ‘4, 12, 72, 36(5)의 빛의 실체(광체)들’, ‘13, 72 에온’ 등의 천상의 짜임새는, 나그 함마디의 「요한 비밀서」,「세 형체의 프로텐노이아(원사색)」, 「이집트인들의 복음」, 「아담 묵시록」, 그리고 지하 세계(하데스)에 감금된 유다를 그린 「우리의 위대한 권능의 사색」 등과 연관되어 있음을 참고로 알아 두기 바란다. 

「유다 복음」을 이 셋파 영지주의에 따라 이해하려면 우선 모든 영지주의 문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가현주의를 알아야 한다. 셋파의 가현주의에서는 그리스도와 예수가 구분되며, 여기서 예수는 그리스도가 악한 물질적 실체(인간)에게 입히는 옷에 지나지 않는다. 십자가 나무도 악한 물질 세계가 받을 저주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악인들이 악인(바실리데스파 영지주의는 키레네의 사람 시몬이라고 한다)에게 ‘예수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았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 위에서 웃고만 계셨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유다 복음」에서 말한 “네가 나를 입은 사람을 희생시켰기 때문에”는 유다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악한 세상을 처형하게 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유다 복음」에서 ‘부패할 소피아’와 ‘연약한 소피아’라는 표현은 ‘소피아 신화-소피아의 타락’을 전제로 한다. 집회서나 지혜서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지혜의 도움으로 창조하셨다고 하지만,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이 현실 세계가 악 자체이므로 지혜가 타락하여 이 악한 세상을 창조했다는 신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설명을 통해 고대 후기에 번성한 영지주의는 그들의 고유한 언어, 영상과 상징을 가지고 사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색이 로마 제국에서 이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이었기에 교부(호교론자)들이 그렇게도 아우성친 것이다. 우리가 읽는 공관 복음은 아람어를 사용한 유다 그리스도인들 세계에서 쓰인 글이며, 영지주의는 그리스-로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중심의 구원론을 그리스-로마의 철학(중 플라톤 사상)과 고대 후기의 혼합 대중 종교와 과도하게 절충한 결과로 본다면 너무나 단순한 단정이 될까. 그렇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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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박사(한님성서연구소)


1968년부터 비엔나에서 유대학 전공(1975-박사 학위)

1980년부터 캐나다 퀘벡에서 동방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전공(1985-박사 학위)

1986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동방 그리스도교, 영지주의, 마니교 전공(1995-박사 학위)

1989년부터 파리 고등학술 실용대학 초빙 교수

1992년부터 프랑스 국립 과학 연구소 연구원

2002년부터 한님성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2003년부터 대한성서공회에서 시리아어와 콥트어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