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마태복음7:7-14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心貧者 2019. 10. 21. 09:10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복음7:7-14                              2019/10/09(수요예배)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인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그리고 섬기시는 교회 위에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가 즐겨 외우는 요절로 시작됩니다.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그러고 보면,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좋아 하는 성경 구절, 요절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가장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요절, 이것입니다.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그 다음으로 많이 인용되는 요절이 마가복음 923절입니다.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와 비슷한 요절 하나 더 찾아보겠습니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 더 인용해 볼까요?

혹시, 이 말씀이 어느 본문에 나오는지 아시는 분은 알려주십시오.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미안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이런 구절의 요절은 없습니다.

다만, 유대인의 탈무드에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천하를 구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마태복음 1626절에 이와 연결할 수 있는 말씀이 나오기는 합니다.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하지만 성경 66, 그 어디에도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라는 성경 요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요절을 습관적으로 외우고 인용하다보면, 놓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요절이 주는 본래의 의미입니다.

요절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지요.

따라서 요절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용하기 위해서는 문단의 앞 뒤 맥락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왜곡되지 않고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읽은 독자 마음대로 악마의 편집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요절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깊이 탐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생활이 왜곡되지 않고 교회가 건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마태복음 77절을 보겠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본문을 자세히 읽고 묵상하다 보면 좀 이상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목적어가 없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명령어만 있지,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고, 무엇을 두드려야하는 지에 대한 목적어가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구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찾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드려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이 말씀을 주신 주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것들을 우리가 그 속에 마구 집어넣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신의 개인소원이라든가, 자신의 개인출세라든가, 자신의 개인성공 등 세속적인 자신의 욕망들을 마구 집어넣습니다.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양 세속적인 자신의 욕망들을 쓱 집어넣습니다.

 

한 청년이 들려 준 이야기입니다.

기도원에서 한참 은혜 받고 내려가는 길에 기도원 셔틀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않아 있는데, 마침 마음에 든 아가씨가 오른쪽 옆 자리에 않더라는 것입니다.

기쁨도 잠시, 이번에는 그렇고 그런 아가씨가 왼쪽 자리에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 청년 은혜 받고 내려오면서 내내 무슨 기도 드렸는지 아십니까?

차가 오른 쪽으로 쏠리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반대로 왼쪽으로 쏠리면 주여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산에서 내려오는 내내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에 우리의 욕망을 집어넣는 순간, 기도는 변질되고 왜곡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망하지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세속의 욕망이 기도의 목적이 되는 기복신앙이지요.

 

따라서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56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산상설교라는 맥락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산상설교를 통하여 우리 주님이 가르치고자 하신 말씀, 그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가 이 땅에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요한계시록 213절과 4절의 상태이지요.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러한 배경을 두고 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구하라' '찾으라' 그리고 '문을 두드리라'는 명령의 목적어 역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안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것 곧 세속적인 우리의 욕망으로 더러워질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고, 우리가 찾고, 우리가 문을 두드리는 목적은 항상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의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응답 이상의 능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응답 이상의 능력입니다.

 

'구하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원어는 '아이테인aitein'입니다.

'질문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반면 '찾으라'는 단어는 제테인zetein’인데 '탐구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구하고 찾는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 질문하고, 그 분의 뜻을 깊이 탐구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그리고 깊이 탐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먼저라고 했지만 사실 이것이 모든 기도의 전부입니다.

내 안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그분의 뜻을 묻고 깊이 묵상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내 안에 계신 주님과 사귐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살고, 내 나라와 내 의가 죽는 것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면 어떤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지는지 아십니까?

바로 그 다음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은혜

바로 바울이 평생 동안 고백했던 자족함의 은혜를 우리에게도 능력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응답 이상의 능력입니다.

 

바로 찬송가 370장의 상태이지요.

1절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주님만 따라가리

 

2절 그 두려움이 변화여 내 기도되었고

전 날의 한숨 변화여 내노래되었네.

 

3절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4절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셔서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그래서 오늘 본문 9-1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가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비유는 이런 뜻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우리의 목숨 줄 까지도 책임지시고, 그 이상의 것을 더하여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하는 걱정 따위 필요 없는, ‘능력의 삶’ ‘부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 땅에서 죽을 때 까지 걱정하는 것들, 즉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 함을 능력으로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셈법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하나님 나라의 이치입니다.

 

, 이제 12절로 넘어 옵니다.

12절은 우리가 흔히 '황금율'이라고 일컫는 구절입니다.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우리가 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의를 먼저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의의 사람,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12절을 새 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립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바리새인처럼 서기관처럼 율법의 조문과 예언서라는 문자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예수님이 묻습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 무엇인지 아는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에게 그리고 또 첫째는 이웃에게

 

그래서 모든 율법가운데 으뜸이 되는 계명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된 것입니다.

내 몸 사랑하듯 하나님 사랑하고, 내 몸 사랑하듯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라는 것이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남을 대접하라

이 말의 뜻을 우리가 잘 새겨야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좋다고 남들도 다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동화 하나 드리겠습니다.

수사자와 암소가 결혼을 하였습니다.

남편인 사자가 아내인 암소를 얼마나 사랑했던지 최고로 신선한 살코기를 구해다가 대접해주었습니다.

아내인 암소는 싫었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먹었습니다.

 

아내인 암소 역시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아주 신선한 건초를 대접했습니다.

사자 남편 역시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건초를 먹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던 어느 날 드디어 일이 터졌습니다.

더 이상은 못살겠으니 서로 헤어지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물론 최선을 다 했지요.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을 바로 알지 못하는 자기 방식만의 사랑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누구 방식대로요?

하나님 방식으로 아니면 내 방식대로...

그래서 남을 대접하는 일에 있어서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회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지식'이다.’

서로를 잘 알아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 그 행위가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대목에서 우리 주님을 이런 명령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러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계속해서 읽습니다.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친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613조의 율법 조문이었습니다.

하지 말라는 조문이 365 그리고 하라는 조문이 248입니다.

이렇게 613조의 율법 조문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달랐습니다.

‘613개의 문이 아니라 한 가지의 문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가르치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지요.

그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으로요?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품는 마음으로 그리고 둘째는 남을 대접하는 손길로 그 좁은 문을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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