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특사
말라기 3:13-18절 2014/2/9(주일오후)
3: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3: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3: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3: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3: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입니다.
말라기(Malachi)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 제목에 힌트가 나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나의 사자' 혹은 '나의 특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특사라는 뜻답게 그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말라기서는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예언서로서의 말라기.
그런데 그 뜻이 ‘나의 사자’, ‘나의 특사’입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인가 비장함이 엿보입니다.
말라기, 말라기서가 교회에서 주로 인용될 경우는 대개 십일조 생활을 강조할 때 사용됩니다. 말라기 3장 10절입니다.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것을 제가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아, 내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사실 이 대목 말고는 사람들이 말라기서에 별로 주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말라기가 오늘 우리 시대, 특히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할까합니다.
말라기, 말라기 예언자는 학개 그리고 스가랴 예언자 뒤에 활동한 예언자로 주전 460년경에 활동한 분입니다. 그래서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렇게 세 권의 책을 연속해서 읽어보면 그 당시의 시대상을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예언자로서 활동하던 그 때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귀환하여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성전을 세우기 위해 박차를 가하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적인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귀환 초기의 설렘과 기대는 어느새 잦아들고, 일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몫과 책임이 점점 많아지자 너나 할 것 없이 비틀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비전은 아름답지만 그 비전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고단한 법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희생이 담보물로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도 그러했습니다.
새 성전에 대한 비전, 새롭게 건설될 나라, 새롭게 지어질 삶의 터전에 대한 비전은 정말 아름다웠지만 그들의 가혹한 현실과 형편 속에서 자신의 삶과 자신의 재산을 희생의 담보물로 제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것은 낙담과 냉소의 분위기였습니다. 낙담과 냉소입니다.
‘과연 실현가능할까’
‘되겠어?’
‘헛된 꿈이야?’
물론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뢰도 무너졌습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일이 아니라 무엇인가 기댈 그 어떤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땅의 재물이든 이방의 우상이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 당시 분위기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신앙이 엉망이 되고 맙니다.
말라기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해줍니다.
1장 2절입니다.
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에서가 야곱의 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생 야곱 곧 이스라엘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나님께 대답하는 줄 아십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1:2)라고 대꾸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당시 종교지도자인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제사장들을 향해 하나님이 준엄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너희의 주인이고 아버지인데, 아버지요 주인 나를 두려워하고 공경하기는커녕 오히려 멸시하고 경멸하고 있다고 하나님이 꾸짖자, 그 때 제사장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1장 6절입니다.
"우리가 언제(어떻게)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1:6)라고 대듭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들 듯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대듭니다.
또한 하나님이 제사장을 향하여 제단에 더러운 빵을 바쳤다고 꾸짖자 이번에는 "우리가 언제 제단을 더럽혔습니까?"(1:7)라고 되묻습니다.
2장 17절에서는 "너희가 말로 나 주를 괴롭혔다" 하시면 "우리가 어떻게(언제) 주님을 괴롭게 해 드렸습니까?"하고 벋댑니다.
이처럼 말라기 시대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공경심)이 철저히 무너진 시대였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1장 10절에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겠습니까?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누가 성전 문을 닫아걸어서, 너희들이 내 제단에 헛된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면 좋겠다! 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오겠습니까?
주님은 1장 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들이 싫다.’
‘너희가 바치는 제물도 이제 나는 받지 않겠다.’
저는 이 대목을 보면서 목사로서 마음이 아주 무거워집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마치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는 것 같은 말씀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지자 이제는 현실에 대한 판단력도 흐려지게 됩니다.
한 번은 하나님의 자녀, 의의 자녀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말까지 합니다.
2장 17절 후반부입니다.
2: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하나님은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모두 좋게 보시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더 사랑하신다는 괴변까지 늘어놓습니다.
그러면서 결정타 한 방을 날립니다.
‘공의롭게 재판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공의가 작동되지 않는 현실, 악한 자들이 더 큰소리치며 사는 세상에서 낙심한 사람들의 한탄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대 상황은 영적 암흑기가 무엇인지 그 절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새 성전에 대한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사장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땅에 떨어진 것이 말라기 시대의 영적 분위기입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가장 큰 책임, 여러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여 집니까?
무엇보다도 당시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라기서는 유난히 제사장들의 죄에 대한 비판이 아주 신랄합니다.
말라기가 말하는 타락한 제사장, 타락한 종교지도자의 특색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종교자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여 듣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만을 높여야 할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앞세웁니다.
물론 그 피해 당사자는 종교지도자인 제사장들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예언자 말라기는 자기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제사장들의 타락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보다는 이 땅의 기득권자들을 기쁘게 하는 일에만 골몰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익이라면 말씀을 왜곡하거나 축소하는 일에도 그들은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보다는 그들의 욕망을 채우는 역할에 만족했습니다.
그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의한 세상에 당신의 특사를 보내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3장 1절입니다.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특사가 와서 행하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신앙의 불순물 종교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3: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특사가 와서 행하는 첫 번째 과제는 신앙의 불순물은 걸러내고, 성전의 더러운 것은 깨끗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 특사가 와서 행하는 일은 공의의 하나님, 그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3: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그렇게 해서 성전을 성전 되게 하고, 제사장을 제사장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 이 땅의 자신의 특사를 파견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조급한 마음입니다.
언제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인가? 에 대한 조바심이 문제입니다.
왜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조급합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냉혹한 현실들 때문입니다.
3: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교만한 자가 오히려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오히려 재앙을 면하는 세상. 돈 있고 백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특사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특사를 파견하여 반드시 의에 대한 공의에 대한 자신의 약속을 지킬 것이며, 그 약속을 신뢰하는 자는 자신의 특별한 소유자로 삼겠다고 단언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3: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3: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17절, 정한 날에 너희를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소유로 삼아 아끼겠다는 것입니다.
효도하는 자식을 아끼듯 아끼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은 자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 그 영적 분별력을 너희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십니까?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특사로부터 '너는 나의 특별한 소유'라는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효도하는 자식을 아끼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아낀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 되십시오.
이 은혜를, 이 은총은 빼앗기지 마십시오.
요즈음 제가 이 말씀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시편 37편 23-24절입니다.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37: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새번역성경으로 다시 일어 드립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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