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로마서 6:8-14 순전한 그리스도인

心貧者 2019. 1. 11. 14:11

순전한 그리스도인

로마서 6:8-142014/6/1(주일)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6: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지난 주 우리는 감리교회 운동을 시작한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회심 276주년을 기념하는 연합집회를 제자교회에서 가졌습니다.

어떠셨습니까?

좋으셨는지요. 은혜가 되셨는지요.

연수동지방 33개 교회가 함께한 웨슬리 회심 연합집회.

우리 감리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귀한 신앙의 전통입니다.

교회의 연합, 교회의 일치 정신이 올곧게 살아 있는 집회였습니다.

 

웨슬리의 회심,

그 회심이라 하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처럼 과거의 살았던 거짓된 삶을 청산하고 거룩한 삶을 향해 돌아선 것으로 보통 이해를 합니다.

메타노니아의 회개, 돌아섬의 회개이지요.

하지만 웨슬리의 경우는 이것과 좀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보아도 그의 삶은 시종일관 반듯했기 때문입니다.

영국국교회의 신부로서 또한 그리스도인의 한사람으로서 그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한 신앙인의 삶을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18세기 전반에 걸친 산업혁명기의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열정 속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순전한 교회, 순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에 도달하는 것 이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감리교인입니다.

우리 교회는 감리교회입니다.

하지만 감리교회에 오래 다닌 분들이라 할지라도 웨슬리가 누구인지?

또 그의 회심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저는 웨슬리의 회심 사건이 갖는 의미를 간단하게 살펴보려 합니다.

교회 밖을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청년 웨슬리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국 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그리고 영국 국교회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무능력하고 거짓으로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왜 교회는 신앙과 삶의 불일치, 믿음과 행함의 불일치를 보이는 것일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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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입니다.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교회 그런 거짓된 성도들이 눈에 들어 온 것입니다. 교회는 형식적이고 가식적이었으며, 그 종교 지도자들의 삶은 복음과 거리가 먼 삶으로 가득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교회의 현실을 젊은 목회자 웨슬리는 목격한 것입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거짓되지 않은, 형식적이고 가식적이지 않는, 거룩한 삶, 순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모색하는 모임 하나를 만들게 됩니다.

친한 신앙의 벗들과 함께 어울려 성경 공부와 기도 생활에 매진하는 모임을 옥스포드 캠퍼스 안에 결성한 것입니다.

이 젊은이들은 늘 정해진 시간에 모여 그리스어 성경을 읽고, 여러 신앙의 고전을 읽었으며, 그리고 옥에 갇힌 이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규칙적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행함이 얼마나 철저했던지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하기 위해 별명하나를 붙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메소디스트methodist'입니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면 형식주의자 혹은 규칙주의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조롱조의 별명이 오늘날 우리 감리교회의 교단 명칭이 되었고 감리교 신앙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옥스퍼드 캠퍼스 안에서 긴 수련 기간을 거친 존 웨슬리는 자기 신학, 자기 신앙을 적용할 곳을 모색하던 중 북미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작정하고 1735년 그러니까 그가 32살이 되던 해 미국 조지아 주에 선교사로 가게 됩니다.

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데 무려 57일이 걸리는 여행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배 안에서 자기 신앙의 상당히 역할을 했던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나게 됩니다.

 

모라비안.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후예들입니다.

그들은 신앙의 박해를 피해 훗날 독일 북부 '헤른후트'라는 곳에 둥지를 튼 사람들이었습니다.

'헤른후트(Herrnhut)‘ 우리말로 '주님이 보호하시는 곳'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헤른후트 공동체운동은 계속되고 있고 헤론후트 묵상집은 본훼퍼가 찾아 볼 만큼 아주 영성이 있는 유명한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운동을 본 딴 사귐의 공동체가 태안에 있습니다.

 

대서양을 횡단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얼마나 풍랑이 거칠었는지 거의 배가 파선의 위협 앞에 놓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모라비안 신도만은 달랐습니다.

기도를 드리고 심지어 찬송을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이 광경은 웨슬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고 이것이 훗날 모라비안 집회에 참여한 계기가 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웨슬리가 계획 했던 그리고 기도로 준비했던 북미 선교는 한 마디로 말해 실패하게 됩니다. 창피할 정도로 아주 확실하게 실패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 안에 있는 불신과 무능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을 그는 1738124일 자 자신의 일기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무 위험이 없을 때는 복음도 잘 전하고 괜찮은 믿음의 소유자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죽음의 두려움에 직면해서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떨며 '죽는 것도 내게 유익함이라'는 고백을 감히 하지 못한다."(김동환의 <'목사 웨슬리'에게 목회를 묻다> p.67)

 

어쩌면 이것이 여러분에 감추고 싶은 제 자신의 솔직한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룩한 삶, 거룩한 교회를 향한, 순전한 그리스도교, 순전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신앙의 열정과 지식과 자부심은 어느 덧 제 자신에 대한 무능과 불신과 환멸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몇 달 간 너무 힘들었습니다.

눈치 챈 분도 있겠지만 사실 지금도 너무 힘듭니다.

여기서 이 길을 멈출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몸부림 칠 것인지?

 

저는 아직도 그 해답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웨슬리는 1738524일 밤 845분경 올더스게이트 거리 어느 집회소에서 열린 모라비안 교도들의 기도 모임에서 찾게 됩니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모임에 참석했지만 웨슬리는 성령의 ‘warm’ 따스한, 온화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한 리더가 마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낭독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설명하자 그 때 웨슬리는 자기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그 순간 그리스도만을 구주로 신뢰하게 되었고,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사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앞의 책, 77)

 

드라마틱한 회심이 아니었지만 성령의 ‘warm’ 따스한, 온화함이 그의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 하나님의 은혜 아래 존 웨슬리가 사로잡힌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현실은 냉정했고 영국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권의 벽은 아주 견고했습니다.

강단권을 빼앗긴 웨슬리는 장엄한 교회가 아닌 채플에서 말씀을 선포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금기시 되었던 고난 받는 이들의 삶의 자리가 곧 그의 예배처소가 되었고 그의 목회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한 웨슬리의 유명한 말이 "세계는 나의 교구다."(The world is my parish!)입니다. 웨슬리에게 더 이상 강단권이 허락되지 않자 웨슬리가 한 말입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아셔야할 진실 하나가 있습니다.

감리교회는 경건함 곧 개인의 영적 책임을 소중하게 여기는 교회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책임 또한 소중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고 그 둘을 하나로 보는 것이 곧 감리교 신앙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이고 이웃 사랑이 곧 하나님 사람입니다.

구별은 되지만 분리가 되지 않는 하나의 계명입니다.

따라서 '저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감리교 정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지 예정론을 주장하는 칼빈주의 곧 극단적인 극보수적인 장로교 정신입니다. 우리의 정신은 '저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셔서가 아니라 저 죄 많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감리교 정신입니다. 마치 이 땅에 오신, 성육신하신 주님처럼 말입니다.

 

찬송가 595장 존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의 찬양입니다.

나 맡은 본문은 구주를 높이고 뭇 영혼 구원 얻도록 잘 인도함이라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다하리

 

이것이 감리교인의 신앙이고 감리교회의 정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그 시대에 순전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아주 단순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입니다.

여기에 무슨 설명, 무슨 사족이 필요하겠습니까?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611절을 새 번역으로 소개합니다.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6:11).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순전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순전한 그리스도인의 기준을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수녀회'를 만들어 인도의 빈민들을 돌봤던 마더 테레사가 이런 말을 했다지요.

"나는 세상에 보낼 사랑의 편지를 쓰시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몽당연필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웨슬리처럼 순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까?

그런 열망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우리가 확인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나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입니다.

세상의 욕망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손인지.

 

바울 사도는 오늘본문 12절에서 성도를 가리켜 '몸의 정욕에 굴복하지 않는 자',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않는 자라고 말합니다.

몸의 정욕, 몸의 사욕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패인 상처가 나으려면 속에서부터 자꾸 새 살이 차올라야 하듯이, 정욕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열망이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로 가득한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