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요한복음1:9-13 어떤 메시아를 원하십니까?

心貧者 2018. 12. 27. 14:56


어떤 메시아를 원하십니까?

요한복음1:9-13                                      2018/12/28()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오늘 본문을 읽을 때 마다 늘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왜 자기 땅에 오신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

메시아를 유일하게 기다리는 민족.

유대인들이지요.

그들은 왜 자신들에게 오신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았을까?

이방인인 우리도 목숨 걸고 믿는 메시아를 그들은 왜 배척하고 죽였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메시아에 대한 생각의 차이 때문입니다.

 

메시아

그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악가가 있습니다.

헨델입니다.

헨델의 메시아

정말 장엄하고 웅장하고 거대한 느낌을 주지요.

전곡을 연주하는데 드는 시간 만 2시간 30분 이상 걸립니다.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작품이지요.

 

헨델의 메시아전곡을 연주하는 음악회가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스케일이 대단한 작품이 헨델의 메시아입니다.

특히 ‘44번 할렐루야같은 경우는 앉아서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스케일과 웅장함이 대단합니다.

예수님이 정말 메시아구나라는 고백과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그 스케일과 웅장함이 정말 대단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헨델의 메시아에서 놓친 메시아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밤 제가 나누고 싶은 말씀의 주제인데 어린양으로 오신 메시아입니다.

 

물론 메시아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결코 부인될 수 없지요.

누가 감히 만왕의 왕이신 메시아를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메시아에는 그런 이미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설적이지만 어린 양의 메시아도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자 어린양이지요.

서로 다른 역설적인 이미지가 진정한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헨델은 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이미지를 그대로 자신의 작품 속에 녹입니다.

그래서 여러 메시야 찬양 중 헨델의 메시아가 지금까지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끊임없이 연주되는 이유입니다.

메시아의 진정한 이미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작곡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헨델이 자신의 작품 메시아에서 마지막 53번 합창곡으로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의도적으로 작곡하고 편집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헨델의 메시아 찬양은 44할렐루야로 끝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해는 됩니다.

교회의 존재감이나 그리스도교의 탁월성이나 그리스도가 말하는 구원의 가치를 보여주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난당하는 어린양의 이미지 보다는 승리를 뜻하는 만왕의 왕이 더 나을 것입니다.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신앙의 내면적 가치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어린양,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예수입니다.

영광의 삶속에 감추어진 십자가의 삶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너도 나도 큰 자가 되고 왕이 되려고만 하지,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어린양 특히 누군가의 희생 제물이 되는 어린양이 되려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유일하게 메시아를 기대했던 유대인이 왜 자기 땅에 오신 메시아를 죽였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어린양으로 오신 나약한 메시아가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릴리 작은 고을 베들레헴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말구유에 누인 갓난아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갈릴리청년을 도저히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죽인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는 누명까지 씌어가면서까지 아주 잔인하게 나무에 달아 죽입니다.

결국 유대인의 편견이 참 빛으로 오신 메시아를 죽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부시한 것이지요.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예언을 그들이 저버린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실까?’

이것을 가장 잘 증거 한 말씀이 구약성경 이사야서입니다.

이사야 421-2절입니다.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42: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여기에 보면 메시아의 첫 번째 이미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42:1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42:2 그는 소리 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할 것이다.

 

모든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되, 요란하게 소리를 치거나 목소리를 높이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야의 첫 번째 이미지입니다.

오시는 소리가 거리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조용 오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는 가난한 심령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용히 오시는 것입니다.

 

찬송가 109장에 나오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처럼 어둠에 묻힌 내 심령 안에 고요하고 거룩하게 오시는 분이 바로 메시야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나만 알 수 있게 조용하게 오시는 분이지요.

 

두 번째 메시아의 이미지입니다.

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메시아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25: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25: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25: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즉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처럼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두 번째 이미지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이미지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입니다.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우리의 질고인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죄악을 친히 감당하셨던 어린양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셨던 어린양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지금 여러분이 믿고 있는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입니까?

더 부유해지려하고 더 가지려하고 더 높아지려하는 이들의 친구가 되시는 메시야입니까?

아니면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 하나 없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메시아입니까?

지금 여러분이 믿고 따르는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