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스라엘
로마서 2:17-3:8절 2015/ 3/ 25(수)
수요일 마다 로마서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1장부터 시작해서 16장까지, 편지라고 하기 에는 꽤 긴 본문을 격주로 살피고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인 로마서, 그 중에서 서두에 해당하는 말씀이 로마서 1장과 2장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살펴본 말씀이 1장 1절로부터 시작해서 2장 16절까지인데 여기에는 한 가지의 흐름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인 인간의 상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정죄 받은 그래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의 상태입니다.
죄.
성경은 두 가지의 형태로 죄를 설명합니다.
‘하마르티아’ 그리고 ‘스칸달론’입니다.
하마르티아, 정조준을 하지만 과녁을 빗나간 상태를 말합니다.
주로 죄 또는 죄악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반면 스칸달론이란, 걸려 넘어져 단절된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이것을 죄라고 번역하지 않고 주로 실족이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마 5: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 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11: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마 18: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하마르티아’ 그리고 ‘스칸달론’
어느 죄가 더 무서울까요?
요한1서 5장 16-17절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ἁ μαρτία) 범하는 것(ἁ μαρτία)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ἁ μαρτία)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ἁ μαρτία)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ἁ μαρτία)도 있도다
여기에 보면 두 가지의 죄가 나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그리고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우선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그것이 바로 ‘하마르티아’입니다.
죄, 곧 원죄로 말미암은 악한 행실을 말합니다.
아무리 정조준을 해도 과녁을 빗나갈 수 밖에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1장 29-31절의 행위들입니다.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반면. 사망에 이르는 죄의 상태를 스칸탈론(ἁ μαρτία)이라고 한다.
1장 28절의 상태를 말합니다.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상태, 그것이 σκανδαλον의 죄입니다.
결코 구원 받을 수 없는 사망에 이르는 죄의 상태입니다.
이 두 가지의 죄를 여러 각도로 설명한 것이 2장 16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자가 없다.’
이스라엘의 혈통을 잇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든 헬라 말을 하는 이방인그리스고인이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자가 없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낸 편지에 핵심 뿌리입니다.
그런데도, 여기에 수긍하지 않은 한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멸망해도,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심판을 받는다 할지라도, 우리만큼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에 따라 할례의 증표를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우리 몸에 율법의 증표가 분명하게 남아 있는 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율법의 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
이스라엘 후손 중에 한 지파였던 유다지파의 후손들을 말합니다.
‘찬송’, ‘칭찬’, ‘자랑’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만큼, 탁월한 민족성 가진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민족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의 의해 멸망하자 야곱 즉 이스라엘 혈통을 잇는 지파는 두 지파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유대지파 그리고 베냐민지파입니다. 그러다가 남 유다가 멸망하고 바벨론 포로 생활을 거치면서 베냐민 지파는 자연스럽게 유대지파에 예속되게 되었고,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에서 돌아 온 사람들을 우리가 유대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따른 다면 남은 자, 유일하게 남은 자가 바로 유다지파 유대인 셈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우월감과 자존감이란 대단한 것입니다.
‘찬송’, ‘칭찬’, ‘자랑’이라는 이름의 뜻답게, 하나님의 찬송이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되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유대인들이 로마서 1장과 2절에서 말한 바울의 주장을 거부하는 것 당연할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자신 역시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지만 표면적인 율법의 의로서는 결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무시하고, 율법의 껍질만 의지라고 자랑하는 것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아주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바울의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의 범죄를 낱낱이 고발합니다.
즉 ‘스칸탈론’으로 말미암은 ‘하마르티아’의 죄를 고발합니다.
2장 17-24절입니다.
2: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2: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2: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24 기록된 바(이사야 52장 5절)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유다의 뜻이 뭐라고 했지요?
‘찬송’, ‘칭찬’, ‘자랑’입니다.
그런데, 그 뜻에 반하는 행동들만 일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모독을 받는다.’라는 동사는 이방인들의 신성모독 행위나 말을 할 때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유대인들이 가장 경계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그 율법을 범하는 모순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르치지 좋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율법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모순된 삶을 바울은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대인이라고 하는 너희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 중에서 바울의 주장을 반박하는 이가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할례의 증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표피를 베는 것이 할례인데, 아브라함 시대부터 이어온 언약의 증표입니다.
할례의 증표, 이것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 증표만으로도 우리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이것에 대해 조근 조근 다시 반박합니다.
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여, 너희가 정말로 하나님의 칭찬, 하나님의 자랑 그리고 하나님의 찬양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율법의 표면적인 의’가 아니라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몸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 그 증표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의’ 곧 종교적인 자기 ‘의’의 포기입니다.
자력 구원의 포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가상적인 적대자들은 바울을 또 다시 반박합니다.
그래도, 유대인의 우월적 지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에 대한 주장입니다.
바울의 답은 ‘맞다’ 입니다.
유대인의 우월적 지위, 할례의 유익,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3: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3: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하나님의 말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받은 자로서의 우월적 지위가 유대인에게 존재하는 것 분명하고, 맞다 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유대인이 계시된 하나님 말씀에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다할지라도, 정죄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신 하나님보다 우월할 수 없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입니다. 이 부분은 새 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3:4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이지만,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성경에 기록한 바(시 51:4)"주님께서는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인정을 받으시고 재판을 받으실 때에 주님께서 이기시려는 것입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5 그런데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내가 말해 본 것입니다.)
3:6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3:7 다음과 같이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거짓됨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면, 왜 나도 역시 여전히 죄인으로 판정을 받습니까?"
3:8 더욱이 "좋은 일이 생기게 하기 위하여, 악한 일을 하자"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말을 한다고 비방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3:9 그러면 무엇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유대 사람이 이방 사람보다 낫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3: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시 14:1-3(칠십인역); 53:1-3(칠십인역); 전 7:20
말씀을 마칩니다.
지금 바울의 주장은 이런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선민, 참 이스라엘, 참 유대인인가? 입니다.
이것을 자칭 참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표면적으로 드러나 육체의 할례로 하나님의 백성, 참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전통과 육체의 할례로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참 이스라엘이요, 참 유대인인가?
바울의 해답입니다.
표면적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이스라엘이요.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율법의 전통과 할례만을 고집하는 너희는 참 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2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보면 두 부류의 신앙인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율법조문 속한 자이고 또 하나는 영의 속한 자입니다.
교회의 전통이나 교회의 관습이나 교회의 교리만을 신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오직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신령의 속한 사람이 우리 교회 안에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율법조문, 교회전통에 속한 사람인가? 아니면 신령한 영에 속한 사람입니까?
한번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면 이제는 도전하십시오.
신령한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되셔서 날마다 심령이 새롭게 되는 역사를 체험하는 참 이스라엘,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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