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열매 맺는 하나님 나라
마가복음 4:26-29절 2018/11/04(주일) 추수감사절
4: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4: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4: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살피고자 하는 말씀은 2014년에 선포했던 말씀을 재구성해서 다시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다른 분들도 저를 그렇게 부릅니다.
목양과 가르치는 일
이것이 제 본업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목양이 전문이고, 가르치는 것이 전문인.
일이 되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예배드리는 것 마저 점점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아픔입니다.
생활신앙이 아니라 일.
먹고 사는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하루를 시작할 때 꼭 읽고 묵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르치려하지 말라
회개시키려 하지 말라
개혁하려 하지도 말라
스스로 가르침을 받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주의 은총으로 개혁하라.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목사인 저의 간절한 바람은 참된 예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가 짐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강화도에서 다리를 건너면 석모도라는 섬이 나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쯤에 여행하기 참 좋은 섬입니다.
온천으로도 아주 유명한 곳이지요.
그 섬에 보문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보문사에 올라가면 절벽에 새겨진 불상을 향해 합장을 하고, 온 몸을 조아려 정성을 다해 절을 하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드는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참 어리석다’
‘그저 돌덩어리인데, 그래서 종교를 아편이라 하는구나!’
그런데 잠시 후 제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 목격되었습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서너 번 절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천배가 기본이었습니다.
이천 배 삼천 배, 한 두 시간이 아니라 등에 땀이 흠뻑 젖는 줄도 모르고 해거름이 질 때 까지 절을 합니다.
제가 그 때 받은 도전이 있었습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사모하였는가?’
‘언제 우리가 등에 땀이 흠뻑 젖는 줄도 모를 정도로 찬양하고 기도했는가?’ 이지요.
찬송가 170장입니다.
통합 찬송가 16장이지요.
새 찬송가 170장의 가사도 좋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옛날 찬송가 16장의 가사가 더 좋습니다.
4절입니다.
내 안에 주님 계시고 주안에 나 있어
그 한량없는 기쁨과 참 안식 얻도다
이것이 제가 간절하게 드리고 싶은 예배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마가복음에 기록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막4: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하나님의 나라.
마치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수께끼와 같은 이 비유.
과연 어떤 뜻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비유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 1절입니다.
4: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마태복음에 산상설교가 있다면, 마가복음은 선상설교이지요.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선상설교가 시작되자 정말 많은 무리들이 바닷가 육지에 몰려들게 됩니다.
그 중에 한 부류가 바로 열심당원입니다.
‘셀롯’이라고 하는데, ‘젯롯당’, ‘열혈당’이라고도 부릅니다.
예수님 제자 중에는 시몬 베드로가 아닌 또 다른 시몬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눅6: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6: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열심당원)이라는 시몬과
셀롯(열심당원)
이들이 추구하는 운동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 왕국의 재건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했던 신정국가, 다윗의 왕국을 재건하자는 무력운동입니다.
피를 봐서라도, 식민 지배국 로마로부터 독립해서 다윗의 왕국인 신정국가를 재건하자는 것이 그들의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정의 칼, 심판의 칼을 늘 품 속에 지니고 다녔던 사람들이 열심당원, 셀롯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력, 폭력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 때 그들 눈앞에 들어온 인물 하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을 벌었던 나사렛 사람 예수였습니다.
특히 그가 가지고 있는 치유 능력은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치유의 능력 때문에, 그 주변에는 늘 사람들도 붐볐기 때문입니다.
잘만 다루면 얼마든지 이용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여긴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를 따르는 무리 속으로 셋롯, 열심당원이 들어간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15절 ‘셀롯(열심당원)이라는 시몬’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바로 그런 열심당원들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급진적 사고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
마치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다는 것입니다.
4: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농부가 파종, 씨를 뿌립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이 지나면 밭에 변화가 생깁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대지위에 여린 새싹이 올라오지요.
새싹이 올라올 때 농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슴이 흔들리는 기쁨을 드러낼 때가 이 때입니다.
이 때, 이 때입니다.
씨앗의 새싹을 틔운 것, 누가 한 일입니까?
소금 땀을 흘려가며 가꾼 농부입니까?
아니면 땅입니까?
농부가 아니라 땅이라는 것입니다.
4: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씨 뿌린 것은 분명 농부이지만
그 씨의 새싹을 틔운 것도
이삭을 피우게 한 것도
그리고 그 이삭에 충실한 알곡을 맺게 한 것도 알고 보면 땅이 한일입니다.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지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나라.
결국 하나님이 하실 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등장한 비유의 핵심입니다.
소금 땀을 흘린 농부가 싹을 틔운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 아무리 소금 땀을 흘려가며 고생 고생한다 할지라도 농부에게는 (사람에게는) 싹을 틔울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것이 농부인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 한계를 좀 깨달으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삭이 피고, 그 이삭이 충실한 곡식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이삭을 피게 하고 충실한 곡식을 맺게 합니까?
농부가 한 것 같지만 이것 역시 아니라는 것입니다.
땅이 한 일이요.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 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28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파종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좋은 씨앗이 우리 마음 밭에 그리고 형제의 마음 밭에 뿌려지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싹을 틔우는 것도, 기쁨의 싹을 틔우는 것도, 사랑의 싹을 틔우는 것도, 평안의 싹을 틔우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생명의 충실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도, 기쁨의 충실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도, 사랑의 충실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도, 평안의 충실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몫이 있습니다.
땅이 씨앗을 품듯이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품고,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믿음으로 응답하고, 그 역사하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옛날 찬송가 16장 4절 가사처럼
‘내 안에 주님 계시고 주안에 나 있어 그 한량없는 기쁨과 참 안식 얻도다’ 라는 그 상태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 나라의 씨를 뿌리는 농부로서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는 자기 부인의 역사입니다.
둘째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 그 선하심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야구가 한창인데, 야구시합에서 8:7 스코어를 케네디 스코어라고 합니다. 8회 말까지 7대 0으로 지고 있다가, 9회 말에 여덟 점을 얻어 이기는 것을 ‘케네디 스코어’라고 합니다.
그 ‘케네디 스코어’ 같은 역전의 인생, 승리의 인생이 오늘 우리가 뿌린 하나님 나라의 씨앗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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