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이 죽을 때 손정도 목사를 찾아 의지하라는 유언에 따라 김일성은 손목사를 찾아 많은 도움을 받았고, 청년시절 중국 지린에서 7개월간 감옥에 있을 때 손목사가 옥바라지를 하고 일본 헌병에 이첩되기 전 큰돈을 써서 석방시키기도 했다. 김일성은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 손 목사를 '국부' '생명의 은인' '친아버지' 등으로 지칭했다. 김일성은 손 목사 자녀들과 자주 어울렸으며 차남 손원태씨와는 친구였다. 손 목사의 장남 손원일 제독은 한국 해군의 창설자로, 6,25 때는 김일성과 적이 되어 싸우기도 했지만 손정도 목사는 남과 북에서 모두 존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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