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른후트(Herrnhut) 공동체 로중(Losung) ‘암호’
헤론후트 우리말로 “주님 이 보호하시는 곳”이란 뜻이다.
헤른후트공동체운동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 년 전, 독일의 북동부에 위치한 한 자그마한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그라프 폰 친첸도르프 (1700.5.26-1760.5.9)에 의해 시작된 디아코니아 공동체운동이다.
원시그리스도교를 재현하고자 하는 생활신앙 공동체이자 경제공동체이다.
체코에서 종교개혁운동을 하다가 1415년에 화형당한 얀 후스 의 후예들인 모라비안의 영향을 받은 친첸도르프는 자신의 사유지에 그들을 정착하도록 하여 그곳을 “주님이 보호하시는 곳”이란 의미로 “헤른후트”라 칭하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다. 1727년 7월, 이 공동체에 ‘소모임’(Band) 이 처음 조직되는데, 대략 2~3명으로 구성되고 일주일에 1-2회 저녁 모임을 가졌다. 이는 모라비안 전통을 쇄신한 것으로 5년 후, 이 공동체가 500여 명으로 늘어날 무렵 전체 속회의 수는 80여 개에 이르렀다.
1728년 5월 3일, 헤른후트 공동체에서 친첸도르프는 찬양모임에 나온 형제들에게 처음으로 다음 날을 위한 간단한 말씀을 건네주었다. 이때부터 저녁마다 간단한 성경구절과 찬송이 소개되었고, 다음 날 아침에 공동체에 의해 집집마다 전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늘 날 개신교에서 가장 널리 확산된 헤른후트 매일묵상집인 『로중』(Die Losungen)이 탄생하게 되었다. 독일어로 로중(Losung)은 ‘암호’를 뜻하는데, “제비 뽑는다”는 의미의 동사 로젠(losen)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처음에 이 기도서의 구약성서 구절은 1,800개의 구절에서 매일 제비뽑기 식으로 헤른후트에서 선택되었다. 그 당시 제비뽑기에 의한 선택은 신비주의적 사고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다음에 신약성서의 말씀은 공동체원 들에 의해 구약성서의 말씀에 대응하는 말씀이 선택되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찬송과 기도문이 공동체의 응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여정에서 이 짧은 말씀과 기도문은 “병사들이 싸움터에 나가면서 지니고 가는 중요한 암호”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즉 하루의 삶에서 이 짧은 말씀은 하나의 강력한 영적 무기로서 커다란 힘을 지니게 되었다. 이 기도서는 1731년에 처음으로 책으로 출간되어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다.
제비를 뽑는 것은 신비주의적인 요소도 있지만, 당시엔 이러한 전통이 보편적이었다. 특히 깊은 기도 후에 선택된 말씀은 직접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라는 질문에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확신 아래 ‘로중’운동을 전개했다. 구약성서의 구절은 그런 과정을 거쳐 선택 되어진 것, ‘로중’이다. 이러한 로중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신약성서 구절인 데, 이는 공동체가 오랜 시간동안 기도를 통해 채택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구약성서 한 절의 ‘로중’을 해석하면서 여러 주석서나 해석도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신약성서 한 구절을 통해 묵상하면서 “말씀하시는 말씀”을 가슴에 담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성경묵상시간은 조용히, 하지만 아주 강력한 영성의 불길로 이끈다. 매일 ‘로중’을 묵상하며 말씀 나누기를 하고 기도문으로 기도시간을 갖고 찬송을 부르면 더 좋다. 친첸도르프에 의하면,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응답이다. 다른 하나 중요한 ‘로중’의 활용은 기도문 아래에 있는 두 개의 성서본문이다. ‘로중’은 그 자체를 통해 성서의 깊은 강으로 이어지게 하는 관문이다. 기도문 아래 본문을 계속 읽어나간다면 구약성서는 4년에 한번, 신약성서는 8년에 한번 통독을 하게 된다. ‘로중’으로 마음을 열고 기도문 아래에 제시된 성서본문을 통해 말씀의 깊은 강으로 들어가는 것도 귀중한 경험이 되리라.
마지막으로 주일날 설교 본문은 독일교회의 설교단에서 동시에 선택되는 말씀이다. 주일에 주어지는 세 개의 본문말씀은 깊은 석의과정을 통해 선택되어진 것이다. 강단의 말씀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다. 주일 설교본문도 ‘로중’처럼 한 주간에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 세 말씀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말씀 자체가 주는 본래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 설교는 “화해의 디아코니아”를 선포하는 “말씀하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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