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요한일서 1:3 사귐의 기도 6

心貧者 2018. 7. 5. 12:58


사귐의 기도 6

요한일서 1:3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사귐의 기도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마르지 않은 샘물과 같은 기도

하나님과 깊은 사귐에 이르며

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소명을 발견하고,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말합니다.

2: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는 삶으로, 나와 우리 공동체를 이끌어 가도록 돕는 은총의 도구가 사귐의 기도입니다.

 

지난시간에 살펴본 내용을 정리합니다.

좋은 기도

더 좋은 기도

소원 성취의 기도:

하나님의 선물보따리

대면과 사귐으로서의 기도:

하나님 자신

구라고 찾고 두드리라: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구라고 찾고 두드리라:

성령

만사萬事의 변화

자신(自我 ego)의 변화

하늘보좌를 움직이는 기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

하나님의 주권과 선의

 

오늘은 네 번째 질문을 다루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7절의 말씀처럼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파루시아의 믿음 속에서 하루하루를 정말 힘겹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마지막 권고를 합니다.

5:16 항상 기뻐하십시오.

5:17 늘 기도하십시오.

5:18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5:19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5:20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하는 말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5:21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오.

5:22 그리고 악한 일은 어떤 종류이든지 멀리하십시오.

 

이 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주제는 517절입니다.

5:17 늘 기도하십시오.

 

과연 이것이 실천 가능한 일일까요?

어떻게 쉬지 않고 늘 기도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하루에 몇 시간을 채워야 가능한 일일까요?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에게도 버거운 일을 바울은 왜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리 종말의 때라도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하지만 은총의 도구로 주어진 기도를 제대로 이해하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해 집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 생활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야 마땅하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총의 도구로 주어진 기도는 하나님과 대면하고 그 분과 사귀는 사랑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순간순간 우리의 의식의지 감각을 일깨워(‘깨어 기도하라의 뜻처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 517절에서 말하는 쉬지 않는 기도입니다.

다시 말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창세기 5에녹처럼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다.

5:22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다음 삼백 년 동안 하느님과 함께 살면서 아들딸을 더 낳았다.

5:23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5:24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다.(초대 교회 신앙의 핵심: 파루시아의 완성)

 

다른 표현으로는 늘 성령 충만하라로 말할 수 있습니다.

 

5: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서 미련한 자처럼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사십시오.

5:16 이 시대(종말의 때)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

5:17 여러분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5:18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의 초점은 영이신 하나님과의 대면과 교제에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을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쉬지 않는 기도의 삶입니다.

그러니 순간순간 주어진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 나는 제물로 생각하고 전심을 다하여 몸으로 드리는 기도를 실천하십시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쓴 로렌스 형제가 있습니다.

그는 수도원 식당에서 계란을 부치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울이 말한 쉬지 말고 기도하라의 또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우리가 로렌스 형제처럼 매사를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 일을 하는 동안 하나님과 든든히 연결 될 것이고, 그 연결고리 속에서 하나님과의 사귐과 사랑의 일이 지속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웨슬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해설교 일부 발췌.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든, 그분께 말씀을 드리든, 그분을 위해 무슨 일을 하든, 무슨 고난을 받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밖에 다른 목적이 없고 그분을 기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소원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기도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제 마음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전한 마음으로 행하는 일은 모두 기도다.

 

먹는 일, 자는 일까지도 비록 이성은 외부적인 일 처리에 바빠도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계속된다.

 

사랑이 충만한 사람들의 영혼 안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소원이 끊임없이 기도의 원천이 된다.

 

이처럼 쉬지 않은 기도의 원천은 첫째, 사랑이 충만한 사람들의 영혼 안에 있으며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소원 속에 달려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 봅시다.

우리에게 이 두 가지가 있는지?’

아니면 기도에 투자하는 물리적 시간을 자기 과시로 삼고 있는지?’

 

다시 강조 합니다.

기도에 투자하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할 수만 있으면 지금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합니다.

또 그런 열망은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 드려지는 기도가 사랑이 충만한 사람들의 영혼 안에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소원 속에 있는지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 곧 육체 우선적인 존재라 항상 자기 과시(자랑, 공덕)’라는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반드시 집고 넘어갈 문제가 하나 또 있습니다.

삶이 곧 기도이다라는 말을 따로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왜곡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삶이 곧 기도이다라는 말을 기도의 면죄부가 아닙니다.

생활() 자체가 기도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은 따로 시간을 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완전한 기도의 삶을 산다 하더라도 물리적인 기도 시간을 따로 지키지 않는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이 되시는 주님이 늘 기도의 자리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늘 자신이 정한 기도의 시간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영적 어린 아이인 우리는 더 말해 무엇을 하겠습니까?

따라서 삶(생활) 전체를 기도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기도 시간을 마련하고 더 깊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삶이 곧 기도이다라는 말은 결국 빈말이나 기도를 피하려는 핑계일 뿐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명령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극단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루 여덟 시간은 기도해야 한다.’는 기도의 공덕(자랑)을 조심해야 하며, 또 하나는 삶이 곧 기도이다라는 말을 기도의 면죄부로 여기고 기도 시간의 성소를 허무는 일입니다.

따라서 바람직한 기도 생활은 충분한 시간을 내서 하나님과 깊은 사귐에 전념하는 습관을 유지하면서 그 기도의 힘으로 종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산 제물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의 량기도의 삶을 통합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눈을 감든 뜨든, 말을 하든 않든, 무릎을 꿇든 움직이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의 사귐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향기가 충만해지면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나의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기도한대로 살겠다는 결심(아멘)’ 그것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가르침에 근본 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