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으라
마태복음25:1-13절 2018/06/29(금)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5: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25: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25: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25: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은 28장으로 된 책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살펴 볼 말씀은 25장의 내용입니다.
25장,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 마지막에 다루신 마태복음의 주제가 나옵니다.
다섯 번째 설교의 핵심이자 주제인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파루시아, 주님의 재림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설교가 다섯 편 나옵니다.
①마태복음 5-7장 산상설교
②마태복음 10장 파송설교, 12제자를 파송할 때 한 설교.
③마태복음 13장 비유설교.
‘천국은 마치’로 시작하는 천국에 관한 비유설교.
④마태복음 18장 제자 공동체에 관한 설교
⑤마태복음 24-25장 종말설교, 재림에 관한 설교
그런데 그 재림에 대한 설교를 하시면서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설교 즉 ‘천국은 마치’라는 비유 형식을 그대로 따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재림, 그것은 곧 천국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파루시아)’이라는 신비하면서도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 언급한 것이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찬송가 175장입니다.
제목이 무엇이지요?
‘신랑 되신 예수께서’
어느 본문을 배경으로 찬송가를 만든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재림’이라는 분류에 찬송가 175장이 들어간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특징 중 하나가 혼인예식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고 이스라엘도 그렇습니다.
혼인예식을 아주 중하게 여깁니다.
우리나라 혼인예식은 전통적으로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첫 단계는 ‘전안례奠雁禮’입니다.
나무로 된 기러기를 올리는 예입니다. 초례청(醮禮廳)에 기러기를 올리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그래서 사랑의 약속을 영원히 지키는 동물로 여겼던 기러기를 초례청에 올린 것입니다.
또 하나는 상호 신뢰입니다.
기러기가 날 때 V자 대형을 형성하는데 이것은 질서와 예절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고 해서 초례청에 올렸다고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교배례交拜禮’입니다. 신랑신부가 대야에 준비된 물에 손을 씻고, 서로 맞절을 하는 예입니다.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공경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합근례合巹禮’입니다.
술잔을 교환하여 마심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알리는 예입니다. 이처럼 전통 혼례에 있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예’입니다.
우리나라 전통혼례처럼 유대인들도 혼인예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 예입니다. 까다로울 정도로 아주 철저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유대인의 혼인예식을 그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유대인 전통에 따르면, 신랑과 신부는 먼저 약혼을 통해 법적인 부부로 인정을 받습니다.그렇다고 우리처럼 바로 가정을 꾸리고 살림을 차리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약 1년 동안 각자의 집에서 지냅니다. 그러다가 양가의 합의를 통해 결혼식 날짜가 잡히면, 신랑은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갑니다. 그 때 신부의 집에선 신부와 그의 친구들이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집, 설렘과 초조함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오기로 한 신랑이 약속된 시간 안에 도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은 지나가고 예식은 자꾸 지연되지요.
그러니 신부의 집 분위기가 어떻겠습니까? 맥이 풀리지요. 설렘과 초조함에서 일순간에 맥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준비는 다 됐겠다. 긴장이 풀리고 맥이 풀리면서 잠이 살살 오기 시작합니다. 잠이 잠을 부른다고 마침내 모두 잠들고 맙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신랑이 도착했다는 외침이 들립니다.
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신랑이 온다는 외침을 들은 열 처녀는 깨어나자 마다 등을 손질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등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실은 횃불입니다. 기름을 묻혀 길을 밝히는 횃불이지요. 기름 한번 묻으면 약 15분 정도 탄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기름을 무쳐야 하는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횃불)만 준비했지 그 등(횃불)을 밝히고 유지 하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당황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기름을 준비한 친구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그 때 돌아온 슬기 있는 자들의 답은 이것입니다.
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기름을 예비 한자 곧 슬기로운 자들만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되고 잔치의 문이 닫히지요.
25: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문은 닫힌지라’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간청하고 노력해도 소용없게 되었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가 천국에 대한 비유라는 사실을 꼭 염두 해 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이어 나오는 ‘천국에 대한 비유’이지요.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이것이 천국을 바라보지만 종말의 지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종말의 지연입니다.
다시 오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
곧 주님의 재림이 자꾸 지연되는 것입니다. 환란과 박해는 점점 심해지는데 주님의 재림이 자꾸 지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점점 지쳐가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서는 진짜 메사야가 나타났다는 거짓 선지자의 선동에 많은 교인들이 유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또 교회 안에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주도권 분쟁과 다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 때 우리는 어디에 속한 자인가를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인가 아니면 슬기 있는 자인가? 이것을 한 번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일까?
흥미로운 것은 열 처녀 모두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졸다가 잠이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나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나 모두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잠을 이기는 장사가 없듯이 육의 본능 즉 육신의 정욕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름을 준비한 자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나 모두 육체우선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절대로 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사람인지 또 누가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사람인지? 누가 구원 받은 사람이고 누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인지? 절대로 분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 이것이 분별됩니까? ‘주님이 오실 때’입니다. 신랑이신 주님이 오시는 날, 헬라어로 ‘파르시아(임재, 재림)’라고 부르는데 바로 그 날에 가서 분별이 됩니다.
어떻게 분별이 될까?
바로 기름입니다.기름을 준비한 사람만이 천국잔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자가 준비한 기름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한 마디로 잘라 말하면 보혜사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 바로 성령이 내 안에 모셔져 있는가? 입니다.
성령을 말미암은 평안의 기름, 생명의 기름이 내 안에 거하는가? 이지요.
말씀을 마칩니다.주님을 맞이할 등을 준비하셨습니까?
교회에 다니는 신앙의 형식이 있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등과 함께, 교회 다니는 것과 함께 곧 준비해야할 기름이 있습니다.
보혜사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 바로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을 요한복음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외적증거)과 성령(내적증거)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니 육신의 소욕에 사로잡힌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그리고 성령과 날마다 교제하십시오.
평안으로 그리고 생명으로 날마다 교제하십시오.
그것이 파루시아,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자의 모습이고 마지막 때에 깨어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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