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요한일서 1:3 사귐의 기도 5

心貧者 2018. 6. 29. 15:57


사귐의 기도 5

요한일서 1:32018/06/27()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사귐의 기도란 마르지 않은 샘물과 같은 기도하나님과 깊은 사귐에 이르러 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소명을 발견하고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다윗, 예수, 바울의 기도 영성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영성을 체득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보다 기도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좀 더 앞서야 합니다. 그래야 구체적인 기도 방법을 습득하고 기도생활을 할 때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기도가 무엇이냐?’에 대한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기도를 먼저 살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도이해이지요.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가장 원초적인 기도 이해로 이방인과 같은 소원 성취형태의 기도 이해입니다.

하지만 기도의 초점은 하나님 자신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 자는 자신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영이신 하나님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 아니면 나의 청원(소원이나 기도제목)이 이루어지는 응답(성취)에 있는가?’를 늘 살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의 선물을 구하는 것 중 우리의 기도는 어느 쪽에 더 치우쳐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면이고 사귐이다.

이 관계 속에서 우리의 요청(청원, 기도제목)이 뒤따라가는 것이다.

 

- 그래서 기도가 은총의 도구이다.

 

- 은총의 도구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가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시고 자하는 최고의 선물은 오직 성령이다.

11:9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 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11:10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11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11:12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13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 느냐?"

 

둘째,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것일까 아니면 기도자인 나를 변화시키는 것일까?

 

- 기도를 통하여 변화될 대상은 만사萬事가 아니라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 는 우리 자신(自我 ego)이다.

4:22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4:23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4:24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새 사 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 따라서 기도 할 때 내 말을 줄이고, 영적 깨달음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 을 경청하는 훈련을 하라.

 

- 성령으로 말미암은 의 변화를 주변과 세상에 확산하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 되라. 이때 주변과 세상이 주는 반대와 거부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이 지난 시간까지 살펴본 내용의 복습입니다.

 

오늘은 기도에 대한 이해, 세 번째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끈질긴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가?’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이 표현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움직일 수 있어야 능력 있는 기도라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 왕 히스기야의 기도처럼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뜻을 움직여 15년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루는 것이 능력 있는 기도라고 여겨왔습니다.(왕하20:1-10)

 

이런 맥락에서 간청하는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18:2-5)와 간청하는 친구와 못된 친구의 비유(11:5-8) 역시 끈질긴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움직인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믿음이고 훌륭한 믿음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누가복음의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는 왜곡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간청하는 과부(18:2-5)나 간청하는 친구(11:5-8)에 비유는 오직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비유로 앞서 설명 드린 누가복음11:9-13절에 기록된 오직 성령과 연결 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기록자 누가의 모든 관심은 오직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끈질긴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움직인다는 의미로 해석할 경우 이 비유에 등장하는 불의한 재판관과 못된 친구의 성품은 하나님의 성품과 같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과부의 억울한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뇌물만 바라는 불의한 재판장이 아닙니다. 또한 친구의 딱한 사정을 알고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귀찮다며 외면하는 못된 친구도 아닙니다.

 

만일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또한 그것을 주실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울며불며 간청할 때까지 모른 체 하시는 분이라면 우리는 어떻게든지 그분의 마음을 돌이킬 방도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누가복음 11:9-13의 말씀처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누구에게나 더 좋은 것 성령을 주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누가가 이 두 가지 비유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가장 악질적인 인간도 이렇게 간청하면 마음을 바꾸어 들어주시지 않는가?’(생선, 달걀전갈, 돌을 줄자가 있는가?)

하물며 가장 선하신 하나님은 너희의 기도에 얼마나 기꺼이 응답하시겠는가?

그러니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든든히 믿고(신뢰) 구하고,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 알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보혜사로 일하시는 성령입니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바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간청하는 것은 좋은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와 상관없는 썩어질 육신의 것이라면 더욱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면 기도 자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우리의 기도는 온통 나의 기도제목과 나의 필요로 채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기도가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이러 기도를 앞서 행하도록 하나님이 몰아가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 앞뒤 가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강조하고자 것은 은총의 도구로 주어진 기도는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은총의 도구로 주어진 기도가 우리의 욕망이나 채우고자 하는 도구(수단)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귐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것 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의 보좌를 움직여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변화이지요.

그래서 그런 기도 자는 기도에 깊이 들어갈수록 자신의 욕구 목록들이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선의에 맡기기 때문입니다.

 

이 때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이 것이 있습니다.

응답 받는 기도보다 응답 받지 못한 기도가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끈기 곧 인내심의 부족일 수도 있고,

기도의 시간(분량)을 채우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일 수도 있고,

더 의지하지 못하는 우리 믿음의 분량도 원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보좌로 나아가는 자가 꼭 명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와 달이 항상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아주 선한 아버지라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누가는 이 점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간청하는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18:2-5)와 간청하는 친구와 못된 친구의 비유(11:5-8) 그리고 악한 아버지와 좋은 아버지의 비유(11:9-13)에서 이 사실이 아주 잘 나타납니다.

그러니 기도 응답의 거부를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더욱 신뢰하십시오.

보좌에 계신 분은 바로 우리 아버지입니다.

 

경험으로 볼 때, 요구 형태의 기도는 기도 자를 쉽게 지치게 합니다.

똑같은 요구사항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지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하는 사람도 이렇게 지루한데 들으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지루하시겠습니까?

 

따라서 오늘 기도 분량을 채우는 끈기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신뢰를 가지고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사귐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뢰 속에서 인격적인 사귐에 들어가다 보면 기도의 진정한 맛을 경험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상태에 계속 머물고 싶어지게 됩니다.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하게 되지요.(바울의 삼층천)

 

그러니 결론입니다.

하늘 보좌를 움직이기에 앞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우리가 구하기 전에 먼저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6:25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6:26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6: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6:28 또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6: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6:30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6: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6:32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6: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