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쉬 하샤나 Ⅱ
창세기 22:9-14 2018/02/11 변화주일
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는 이웃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옛사람들은 설 전날인 섣달그믐에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것을 우리 어르신들은 묵은세배라고 불렀습니다.
묵은세배를 드리는 이유가 참 아름답습니다.
지난 한 해를 무탈하게 잘 보낸 것에 대한 감사를 어르신들께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를 드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아온 날에 대한 감사이자 고마움이지요.
우리교회 여선교회가 해마다 설과 추석을 앞두고 요양원에 계신 우리 신앙의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바로 묵은세배 전통을 이어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처럼 바쁜 우리 일상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이 바로 절기입니다.
다른 말로는 명절이라고도 하는데 명절, 절기 다 같은 말입니다.
우리의 설과 추석처럼 유대인들은 삼대 절기를 지켰습니다.
어떤 절기가 있습니까?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입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삼대 절기입니다.
이 절기들은 모두 농작물들을 추수하는 추수절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절기는 농작물을 추수하는 추수감사절 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모든 절기는 하나님이 도우시고 구원했던 이스라엘의 역사와 연결을 짓습니다.
예를 들자면, 유월절은 원래 해 마다 봄이 되면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떠나던 유목민들이 양을 잡아 하나님께 바치던 관습에서 시작된 전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것을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 곧 출애굽 사건과 연결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그러면 출애굽, 출애굽 그러면 유월절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입니다.
이집트 노예로 구속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총을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하고 또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지금도 기념하는 유월절 전통입니다.
두 번째로 오순절입니다.
다른 말로는 칠칠절,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원래는 밀 추수를 마친 후에 지키는 명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 오순절을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사건과 연결을 지었습니다.
율법 곧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 날이라는 것이지요.
유월절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고 구원받은 날이라면, 오순절은 그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하나님이 된다는 언약입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이스라엘이 이집트 곧 죄의 백성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그러면 율법, 율법 하며 오순절이 된 것입니다.
약속의 백성이자 율법의 백성이 된 것이지요.
따라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강림 사건이 오순절 명절에 이루어 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역사이지요.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다시 새롭게 모든 민족과 계약을 맺겠다는 하나님의 깊은 뜻과 의지가 담겨진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을 하나님의 백성 곧 거룩한 백성으로 삼겠다는 예레미야 31장 31절의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진 날이 바로 오순절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120(12*10)명의 갈릴리의 무리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서로서로가 다른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 즉 방언의 역사로 나타난 것입니다.
행2: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2: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2: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역사가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각 사람마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입니다.
이처럼 시내 산의 율법이 거룩한 백성이 되는 외주 역사였다면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거룩한 백성이 되는 내주 역사가 된 것입니다.
세 번째, 초막절입니다.
다른 말로는 수장절이라고 부릅니다.
가을걷이를 다 끝낸 후에 지키는 명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초막절을 광야 생활 40년과 연결을 지었습니다.
창고에 먹을 것이 가득하고 풍성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친히 먹여 주시고 입혀주시고 마시게 하였던 광야 40년의 초막 생활을 결코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조상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초막생활을 했던 것처럼 그들은 가을 추수가 다 끝나면 옥상이나 베란다에 초막을 지어 놓고 한 주간 동안 광야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이런 삶의 축제들인 절기를 통해 자기의 뿌리인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을 돌아보았고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기 삶의 정체성을 재확인했던 것입니다.
첫째, 자기의 뿌리인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와 함께 또 하나 살펴볼 절기가 있습니다.
‘로쉬 하샤나’라는 유대인의 신년축제입니다.
우리에게 설날이 있다면 유대인에게는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라는 신년축제, 설이 있습니다.
‘로쉬’는 ‘머리’라는 뜻이고 ‘하샤나’는 ‘한 해’를 뜻합니다.
따라서 ‘로쉬 하샤나’는 한 해의 머리가 되는 날 바로 설이 되는 것입니다.
‘로쉬 하샤나’는 유대의 종교력으로 티쉬리Tishri월 첫 날에 시작됩니다.
우리 달력으로는 9월 말이나 10월 초에 해당되는데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시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우리와 달리 9월 말이나 10월 초를 새해로 잡은 까닭은 탈무드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때가 바로 티쉬리월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쉬 하샤나’를 티쉬리월 초하루인 9월 말이나 10월 초로 잡은 것입니다.
이처럼 ‘로쉬 하샤나’를 유대인들이 지키는 이유는 두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하나는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되돌아보자는 것이 첫 번째 목적입니다.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살지 못한 삶을 회개하고 새로운 변화의 삶을 다짐하는 것이 두 번째 목적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 있어서 ‘로쉬 하샤나’는 단순한 새해의 첫 날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신 창조의 첫날로 그들은 믿고 또 그렇게 기념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신년부흥성회와 신년산상성회로 토착화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신년 축제인 로쉬 하샤나의 첫날이 되면 창세기 21장에 나오는 이삭의 탄생 이야기를 찾아 읽었습니다.
앞서 설명 드린 것처럼 유월절은 출애굽, 오순절은 모세의 율법, 그리고 초막절은 광야생활 40년과 연결을 지었던 것처럼, 로쉬 하샤나의 첫날이 되면 창세기 21장에 나오는 이삭의 탄생 이야기를 찾아 읽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삭’은 바랄 수 없는 중에 얻은, 정말 하나님의 선물과 같은 존재이지요.
새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얻은 선물이 바로 로쉬 하샤나, 새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창세기 21장에 나오는 이삭의 탄생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이삭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뜻 때문입니다.
창 17: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밑에 있는 각주 1)을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라고 씌어 있습니까?
‘웃음’입니다.
이삭이란 ‘그가 웃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신년 축제인 로쉬 하샤나에 이삭의 탄생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일 년 내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보자는 바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웃음이지요.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또 하나 로쉬 하샤나에 이삭의 탄생 이야기를 읽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삭처럼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더디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어 우리에게 약속한 웃음을 반드시 선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이런 우리의 기대와 달리 현실은 꽃길이 아닙니다.
예기치 않은 어려움으로 인해 우리 삶의 터전이 늘 흔들리지요.
그래서 ‘로쉬 하샤나’나 그 다음 날이 중요합니다.
신년 축제의 둘째 날 유대인들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곧 이삭의 결박과 희생 이야기를 읽는 것입니다.
본문 그대로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창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살다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유독 하나님이 나에게만 무관심하신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처럼 유독 나에게만 하나님이 잔인하게 절망의 가장자리로 몰아가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괴롭지요 힘들지요.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긍정적 사고’ ‘적극적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늘 기대하고 바라지요.
하지만 우리의 인생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낯선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믿음, 바로 신앙의 결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절대 신뢰, 절대 믿음이지요.
우리는 이삭 이야기의 결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숫양 한 마리를 예비해 놓으셨고, 아브라함은 그 양을 잡아 번제를 드립니다.
그런 후 아브라함은 그 곳 이름을 무엇이라고 불렀습니까?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뜻입니다.
저는 ‘여호와이레’라는 이 한 마디 말씀처럼 우리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인사를 서로 나누는 것으로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새해, 당신의 이름이 하나님 생명책에 기록되는 좋은 해가 되길 바랍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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