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시편 145:1-12 왕이신 나의 하나님

心貧者 2018. 1. 9. 11:51


왕이신 나의 하나님

시편 145:1-12 2018/1/7 주현 후 1
145: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145: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145: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145:4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145:5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145:6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권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145:7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145:8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145:9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145:10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145:11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145:12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

 

시간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유대인들은 시편 96편을 낭독하면서 로쉬 하샤나라는 신년 축제를 즐깁니다.

우리도 한 번 찾아서 낭독해 볼까요?(9절까지만)

96: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96: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96:3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96:4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96:5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96:6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96:7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96: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96: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이 중에서 1절부터 3절 사이를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보면 명령형으로 되어 있는 단어들이 여섯 번 등장합니다.

'노래하라, 노래할지어다, 노래하라'3, '송축하라', '전파할지어다', '선포할지어다'가 각각 1번씩 등장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노래하고 송축하며 전파하고 선포해야할까요?

그 이유가 이어서 나옵니다.

96:4 여호와는 위대하시니()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것임이여

 

그리고 5절입니다.

96:5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노래하고 송축하며 전파하고 선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해 마다 신년, 로쉬 하샤나가 될 때마다 시편 96편을 큰 소리로 낭독하는 이유는?

첫째, 우리가 노래하고 송축하고 전파하고 선포해야할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둘째, 우리 삶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

너희들이 밝히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쉬 하샤나곧 새해가 될 때마다 유대인들이 시편 96편을 찬양하는 이유였습니다.

우리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 삶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면서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하고 좀 다르지요.

우리는 첫째도 건장 둘째도 건강 셋째도 건강이지요.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첫째도 돈 둘째도 돈 셋째도 돈이지요.

 

하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유대인들은 기복이 아니라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첫째도 질문 둘째도 질문 셋째도 질문이지요.

하나님이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무엇인지? 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계시의 책 곧 성경이 됩니다.

 

로쉬 하샤나

새해가 되면 유대인들이 행하는 또 하나의 풍습이 있습니다.

로쉬 하샤나를 알리는 뿔 나팔 곧 쇼파를 부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새해를 알리는 뿔 나팔을 부는 이유는 세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 ‘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현존 앞에 모이라는 것입니다.

모임을 알리는 나팔 소리입니다.

교회 종탑에서 울러 나오는 종소리를 연상하시면 됩니다.

 

둘째, 뿔 나팔을 부는 이유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그 구원의 약속이 실현되기를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언약의 기억과 언약의 기대입니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간이든 인생이든 생명이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을 모든 것에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시간도 인생도 생명도 다 내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인데,

어떻게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그 힌트가 오늘 본문 1절에 나옵니다.

바로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라는 믿음으로부터입니다.

145: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이 본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할 때 마다 그리고 기도가 막힐 때 마다

부르고 또 이어서 부르는 찬양인데 다 같이 불러봅시다.

 

제가 이 찬양을 부르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새롭게입니다.

날마다 새롭게이지요.

 

은혜나 믿음이나 어제 먹다 남은 찬밥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따끈한 밥, 새 밥이지요.

늘 새 밥입니다.

 

그런데 그 감격 그 감동 그 신선함이 떠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식을 때, 그 때 이 찬양을 부르면서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회복 될 때가지 부르지요.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세상이나 우리의 인생이 확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의 또 다른 하루이지요.

하지만 제가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그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그 삶은 어떤 삶일까?’

오늘도 기대하고 소망 해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지요.

이 시는 각 절의 첫 글자가 히브리어 자음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ㄱㄴㄷㄹㅁㅂㅅ처럼 히브리어 알파벳 자음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1절은 으로 시작되는 단어, 2절은 으로 시작되는 단어, 3절은 으로 시작되는 단어, 4절은 으로 시작되는 단어, 5절은 으로 시작되는 단어,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히브리어 22개의 알파벳 가운데 14번째 알파벳이 인데, 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22절이 아닌 21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

아직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이 찬양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 감격입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에 대한 감격입니다.

어제와 같지 않은 새로운 은혜, 그 은혜에 대한 새로운 감격이지요.

하나님의 영광 앞에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 앞에 한 걸은 더 다가가는 감격이지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표시는 나지 않지만 한 걸은 더 다가가는 감격이지요.

 

두 번째는 여기에 우리가 좀 주목했으면 하는 이유인데, 세상을 공의롭게 다스리시는 하나님, 그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고마움이지요.

특히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작은 자나 큰 자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못 낫거나 잘났거나 모든 이에게 임하는 공의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1절을 제외하고 2절부터 보시면 하나님을 지칭 할 때 145편의 시인은 거의 또는 여호와라는 호칭을 번갈아 가면서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유독 1절만 왕이신 나의 하나님으로 호칭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지요.

여기서의 하나님은 히브리어 엘로힘의 번역어입니다.

 

엘로힘

이 호칭이 성경 속에서 반복해서 강조된 곳이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창세기 11 - 24절 전반부까지입니다.

첫 번째 창조기사이지요.

여기에 보시면 엘로힘의 번역어인 하나님으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24절 후반부터는 하나님의 호칭이 무엇으로 바뀝니까?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뀝니다.

 

이게 무슨 대수일까?’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 우리가 알아서 뭐해? 무조건 믿으면 되지?’

물론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기록하고 읽고 구전했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경험에 따라 하나님을 다르게 불렀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하나님으로 번역된 엘로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된 세상을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을 고백할 때 주로 등장합니다.

좀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강조할 때 사용합니다.

 

반면 야훼, 여호와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항상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침투하십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당신의 백성 곧 의로운 자는 구원하시지만 악한 자들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시편에 등장하는 여러 탄원 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호칭이 여호와입니다.

 

아주 간단한 예 하나를 들겠습니다.

시편 1편의 결론입니다.

1: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엘로힘여호와그 호칭의 차이가 좀 보이시는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 두 호칭이 조화롭게 등장합니다.

그 만큼 하나님에 대한 감격.

그 고마움의 풍성함이 더하다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도 엘로힘곧 나의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가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가입니다.

 

어떻습니까?

정말 그렇게 살아갑니까?

 

성경 중에 성경이지요.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독생자까지 내어 주셨다고 했는데, 하나님을(엘로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간다고 하는 우리는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입니다.

이것이 창립 60년을 맞이하는 교회 바로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새 해의 첫 메시지입니다.

나는 이 추악한 세상을(이 더러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말씀을 마칩니다.

지금 시인의 고백 속에 담긴 제왕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백성들 위에 굴림 하는 왕이 아닙니다.

자신이 창조한 백성을 세심하게 돌보시는 왕, 사랑의 왕입니다.

 

세상, 아니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십시오.

왜 우리 백성은 불행하다고 여길까요?

수출은 세계 6위인데, 선진국의 지표인 국민소득 3만 불이 코앞인데, 왜 백성들은 가난하다고 여기고 불행하다고 여기고 사는 것이 팍팍하다고 여길까요?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국회의원’ ‘제왕적 그룹회장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시적인 권력을 백성들 위에 굴림 하는데 그 모든 힘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갑질이지요.

 

교회는 어떤가요?

특히 한국교회가 여기서 자유로운가요?

그렇다면, ‘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생길 이유가 없겠지요?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이런 가짜 제왕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진짜 왕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창조한 백성, 그 백성 하나하나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세심하게 돌보시는 사랑의 왕.

그 왕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