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장 8-11절 2017/12/29(금)
14: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하나님을 한번 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 주로 언제 듭니까?
편안할 때 입니까 아니면 어려울 때 입니까?
편안할 때 보다는 어려울 때이지요.
죽음을 생각할 만큼 아주 어려울 때, 그 때 하나님을 한번 쯤 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맛난 것 먹으면서, 좋은 것 구경하면서, 자기 좋은 것 하면서 하나님 찾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빌립이 그런 사람 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빌립.
이 분이 참 대단한 분입니다.
적어도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제자로 등장할 만큼 아주 비중 있게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베드로와 한 동네인 갈릴리 벳새다 출신입니다.
그런 빌립이 이웃 동네인 갈릴리 가나 출신의 나다나엘을 전도합니다.
최초의 전도자이지요.
그 때 아주 유명한 말을 빌립이 납깁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나다나엘의 비아냥거림에 빌립이 이렇게 말합니다.
‘와서 보라 Come and see’(요1:46)는 아주 유명한 말씀이지요.
요한복음에서 첫 번째 전도자로 기록된 빌립이 훗날 사도가 되어서 교회를 세우는데 어디에 세웁니까?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도성 바로 사마리아입니다.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최초로 전하고 처음으로 교회를 세운 분이 바로 빌립입니다. 정말 전설적인 분이지요.
그런데 그분이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속내 하나를 오늘 본문에서 드러냅니다.
요한복음 14장 8절입니다.
14: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Come and see’의 주인공답게 아주 화끈하면서도 도전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질문은 빌립만의 질문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질문이지요.
사실 오늘 우리도 꼭 따져 묻고 싶었던 질문이지요.
특히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을 때, 그리고 인생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 몰리 때 이런 질문은 더 듭니다.
‘어떤 사인이라도 좀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 과연 우리 주님은 뭐라고 답을 하셨을까요?
9절입니다.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거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거울인 나를 보고도 하나님을 보이라고 떼를 쓰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볼 때 마다 열왕기상 19장에 나오는 엘리야가 떠오릅니다.
‘엘리야’
구약을 대표하는 최고의 선지자이지요.
그런 그가 갈멜산 전투 후에 아주 큰 침륜에 빠집니다.
주어진 사역을 이어가지 못할 만큼 아주 큰 시험에 듭니다.
그 때 선지자 엘리야를 하나님이 친히 찾아와 다시 힘을 주는 이야기가 열왕기상 19장입니다.
9절부터 보겠습니다.
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9: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9: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아니면 모세처럼 ‘불’ 가운데 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9장 12절 끝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 어디 계신다고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세미한 소리 즉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소리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들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례자이자 예비자였던 요한이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빌려 하신 말씀인데,
‘나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소리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있어 왔었던 선지자의 그 소리, 항상 들려왔었던 예언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귀 막고 하는 말?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주님이 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나의 목소리를 통해 지난 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보여 달라는 떼를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요한복음 14장으로 돌아옵니다.
계속되는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소리)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쉽게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나를 통해 증거 된 하나님의 말씀, 그 소리를 듣고도 도저히 못 믿겠거든 내가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행하는 그 일’,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과 부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그 증거를 보고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바로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이지요.
믿음.
우리 안에 이 믿음이 생기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계속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여기에 보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의 믿음의 역사가 있습니다.
첫째, 주님이 하신 일 곧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의 능력’을 우리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이 말한 소금과 빛입니다.
한 20년 전 일입니다.
1999년 9월 9일입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서 거의 모든 일간지와 교계 신문에 ‘하나님과 국민 앞에 우리 자신을 고발합니다.'라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사죄의 글을 광고 형식으로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교회 일치와 개혁, 그리고 나눔과 섬김의 삶을 향한 연대를 이루어 나가며,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힘차게 전진하겠다.
그렇게 20년이 지났습니다.
‘교회 일치와 개혁’
‘나눔과 섬김의 삶’
여기에 우리가 아직 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바로 방향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정말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믿는 자라면 많은 돈을 들여 널리 광고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처럼 좀 더 미련해지고, 좀 더 약해지고, 좀 더 천해지고, 좀 더 멸시받는 자리에 서고, 좀 더 없는 자의 편 섰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새해에 소망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빌립보서 4장 12절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알아,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주는 첫 번째 능력입니다.
두 번째는 13절과 14절에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두 번 이나 반복해서 강조한 말씀이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님이 친히 행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바로 기도의 능력이지요.
내가 아니라 주님이 친히 행하시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무엇인지 한 번 맛 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 주님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이것입니다.
제발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보여 달라고 그만 징징거리고 이제는 좀 나를 믿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능력 그리고 기도의 능려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그만 징징거리고 이 시간 믿음과 그에 따른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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