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순응하는 교회
사도행전 17장 1-18절 2018/1/12(금)
17: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17: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17: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17: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17: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17: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17: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17: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17: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7: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7: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7: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7: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17: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7: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긴 본문인데 막힘없이 잘 읽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고민을 좀 했습니다.
본문도 길고,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도 몇 개 있어서, 본문을 좀 줄여볼까 고민을 좀 했습니다. 하지만 줄일 수 없는 본문이기에 1절부터 18절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도행전 17장.
어느 것 하나 소홀이 할 수 없는 참 역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본격적인 2차전도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사도행전 17장은, 특히 그리스 지역의 핵심도시인 세 개의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어디어디 입니까?
첫째, 데살로니가(데살로니키)입니다.
17: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두 번째 도시는 베뢰아입니다.
17: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등장하는 도시가 아덴(아테네)입니다.
17: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이렇게 세 도시에 대한 전도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본문이 사도행전 17장입니다.
이들 도시마다 사도 바울이 친히 찾아가서 전도를 하게 되었는데, 참 재미있는 것은 그들 도시마다 복음에 대한 반응이 각각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동일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도시의 반응( 사람들)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우선 그리스 최북단에 위치한 데살로니가입니다.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이지요.
이스라엘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관대한 관습 때문에 일찍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약 20여일 정도 머물면서 동족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집중해서 가르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사경회를 3주에 걸쳐서 약 20여 일 동안 연 것입니다.
17: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약 20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여기서 사도 바울이 행한 ‘강론’은 지금의 사경회와 좀 다릅니다.
사도 바울이 행한 ‘강론’, 3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질문입니다.
질문이 있는 강론이지요.
이것이 유대인 교육의 특징이자 핵심인데 질문입니다.
둘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되, 단답형이 아닙니다.
자세히 풀어 설명하는 것이 강론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바울이 강론할 때, 졸다가 창가에서 떨어져 죽는 청년 유두고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셋째, 강론의 핵심은 이 세 번째 있습니다.
풀어 설명한 말씀을 마음에 확정 짓게 하는 것이 강론의 목적입니다.
‘아멘’ 이지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는 ‘확신’ ‘확정’ ‘다짐’ ‘결단’이지요.
물론 바울이 사용한 교재는 ‘구약성서’입니다.
구약성경이 증거 하고 있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누구다?
그렇습니다.
예수라는 것입니다.
왜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대속의 십자가와 또 하나는 몸의 부활로 그 모든 증거를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그러자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유대인들이 용역 깡패를 동원해서 바울의 복음전도를 방해합니다. 바울의 입을 물리적으로 들어 막지요.
심지어 ‘베뢰아’까지 쫓아가서 방해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17: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가 훗날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연보에 가장 먼저 앞장섰던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사실 이것은 사도 바울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있어서, 아무래도 성경에 익숙한 유대인들이 더 유리하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그들이 아닌 이방인 곧 헬라인과 여자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다음으로 살펴 볼 도시는 ‘베뢰아’입니다.
데살로니가 바로 밑에 위치한, 역시 중요 도시이지요.
‘베뢰아’, 지금은 ‘베리아’라고 부릅니다.
‘무겁다’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베뢰아의 특산물이 돌이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입니다.
‘베뢰아’ 그러면 우리가 이단을 떠올려서 부정적 이미지가 좀 강하지만, 실은 바울에게 있어서 ‘베뢰아’는 아주 중요한 도시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결실에 있어서 아주 남다를 면을 보여준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7: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이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가 베뢰아 교회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에게 복음이 증거 될 때, 나타난 특징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17:11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순응이지요.
두 번째, 이 부분이 중요한데 17:11 후반부입니다.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혼용하지 않고 분별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사람의 말을 검증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실력이 잇는 것이지요.
세 번째 특징입니다.
17: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다음으로 살펴볼 도시는 아가야 지방의 주도인 아덴입니다.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철학이 태어난 도시이지요.
아덴 사람들은 두 가지의 장점이자 특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생각하는 힘)이고 또 하나는 알 수 없는 신을 경배할 정도로 종교심이 아주 풍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덴 선교에서 바울이 보기 좋게 실패합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첫째 ‘인간이 하나님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죽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더욱이 ‘죽음 사람의 부활, 몸의 부활’, 역시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여긴 것입니다.
17: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리스의 중심 도시인 데살로니가, 베뢰아 그리고 아덴이 어떻게 복음에 응답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증거 한 복음은 동일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몸의 부활이지요.
그런데 보십시오.
복음에 대한 순응이 제 각각으로 나타납니다.
주목할 것은, 누가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는가? 입니다.
회당 중심, 율법 중심의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철학적이고 논리적이고 거기다가 종교심까지 풍부했던 아덴사람도 아닙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복음에 비추어진 자신의 죄
그 죄를 인식했던 헬라인과 여자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 지 아주 치밀하게 검증했던 베뢰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죄가 무엇인지 속히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또 하나,
응답 받은 말씀이나 깨달은 말씀이 있다면 그것이 사람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 꼭 성경으로 검증하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그리고 베뢰아 교회처럼 복음에 순응하는 교화기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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