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사도행전 20:1-12 말씀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라

心貧者 2018. 1. 20. 17:37


말씀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라

사도행전 20:1-122018/2/19()

20: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0: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20: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20: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20: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20: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20: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20: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20: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20: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지난 시간에 예고했던 청년 유두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배 시간 마다 습관적으로 조는 분들에게 기분이 좀 나쁜 내용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 시간에 졸다가 3층 난간에서 떨어져 죽은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분명하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표적 설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조는 분들을 겨냥해서 드리는 설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점을 우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보통의 경우입니다.

보통의 경우, 오늘 본문을 두 가지의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하나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다소 위협적이지만 졸면 죽는다.’는 경고로 접근합니다.

 

또 하나는 기적의 관점입니다.

졸다 죽은 유두고를 사도 바울이 살려냈다는 기적의 관점이지요.

 

하지만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런 것들에 있지 않다고 봅니다.

졸면 죽는다.’는 위협적인 경고의 메시지도 아니고 졸다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사도 바울이 살려냈다는 기적의 메시지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로고스(메시지)는 무엇일까?

미리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늘 설교 주제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 말씀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고 있는가?’ 입니다.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내 삶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가? 입니다.

 

지난 시간에 드린 말씀인데,

사도들이 행했던 강론에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 강론의 기초이자 시작은 질문입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가 정말 그리스도인가?

그가 형벌로 지은 십자가가 대속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몸의 부활이 가당한 이야기 인가?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구원이 임하는가?

그리스도인 참된 예배는 무엇인가?

계명 중에 가장 으뜸가는 계명은 무엇인가?

바울도 사도인가?...

이런 질문들로 가득한 것이 강론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둘째, 강론의 특징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주되 자세히 풀어 설명하는 것이 강론입니다.

무엇을 가지고요?

성경입니다.

율법과 예언서가 기록된 성경을 가지고 자세히 풀어 설명하는 것이 강론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강해 형식의 설교이지요.

 

셋째, 강론의 특징입니다.

풀어 설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로 하여금 확정 짓게 하는 것이 강론입니다.

아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는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앞서 설명 드린 것처럼 바울의 강론이 길어지자 문제가 생깁니다.

다 좋은데, 바울의 강론시간이 좀 길었던 모양입니다.

20: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이처럼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의 강론이 길어 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드로아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기 원했던 사도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차전도 여행이 끝나갈 무렵입니다.

에베소에서 약 3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마케도니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행,

모두가 반대 했던 여정이었습니다.

그 때 그 중간에 있는 도시 드로아(트로이)에서 일주일 간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짧던지 드디어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그 마지막 날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0:7 그 주간의 첫날에

 

주간의 첫날’, 그날이 언제입니까?

주일이지요.

이때부터 주일예배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입니까?

드로아(트로이)’에서 입니다.

 

당시 예배, 이런 형태였습니다.

20: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첫째, ‘떡을 떼는오늘날의 성찬식을 행합니다.

성찬식보다는 성찬 형태에 공동애찬에 더 가깝지요.

어찌되었든 성찬과 공동애찬을 합한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후에 모든 이들이 다 모이면 행한 것이 강론이었습니다.

성경 공부 형태의 설교를 행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날이 드로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마지막 날(기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의 마음이 다급하지요.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더 전해야겠다는 간절함이 결국 설교를 길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아주 큰일이 벌어집니다.

3층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들고 웅성거렸지요.

그 때 사도 바울이 이 문제를 이렇게 수습합니다.

20: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20: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20: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 대단하지요.

 

여기서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왜 이런 이야기를 남겼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설교 시간에 졸면 죽는다.’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죽은 자를 살렸다.‘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누가는 청년 유두고의 이야기를 사도행전에 남겼을까요?

그 때에는 밤이 새도록 듣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밤이 새도록 전할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11절을 보십시오.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듣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 전하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때에는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2주 동안 중국인 현지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토요일 주일 빼고 오전에 세 시간 오후에 다섯 시간 그렇게 여덟 시간을 열흘간 강의했습니다.

문제는 마지 막 날이었습니다.

그날, 신학교를 운영하는 선교사 사모님이 부흥 집회를 요청한 것입니다.

 

부흥집회 설교를 몇 시간 요청한 줄 아십니까?

길게입니다.

그냥 길게입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몇 시간할까요?

그 때 돌아온 답이 최소 5시간입니다.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새벽 23시도 좋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겠지만,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 10시간 동안 설교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듣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도 많았고, 전하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부흥하는 교회가 중국 삼자교회입니다.

설교 시간만 한 시간 반입니다.

그런데도 조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에어컨 없습니다.

온풍기 없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그랬다지요.

목사님의 설교가 끝날 때마다 안돼 벌써 끝나면 안돼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교회의 부흥 심령의 부흥은 다른 것에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말씀의 맛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는 말씀의 맛이지요.

전하는 자나 듣는 자나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는 말씀의 맛이지요.

 

위대한 전도자이자 부흥사 무디는 자신의 성경책 곳곳에 ‘T & P’라는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무슨 약자일까요?

Tested[téstid] and proved[pruːv]의 약자입니다.

말씀대로 살아 보았더니(실험해 보았더니) 하나님의 약속 그대로 되더라는 것입니다.

 

올해에는 잃어버렸던 말씀의 맛을 회복하셔서, 무디처럼 동일한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