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을 받은 일
에베소서 4:1-6절 2018/01/28 주현 후 제4주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알라 푸카초바’라는 분이 계십니다.
가난한 화가의 사랑이야기를 노래해서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대중가수입니다.
북한에서는 러시아 원어 그대로 ‘김광숙’이라 가수가 불려서 인기를 얻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거북이라는 친구가 이 곡을 리메이크해서 한 때 에어로빅 댄스곡으로 유명 새를 타기도 했습니다.
추가열, 박화요비, 임주리, 백미현, 하현우, JK김동욱 등 정말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부른 노래인데, 우선 원곡인 러시아어 버전으로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들으신 곡의 한국어 버전 이름이 무엇입니까?
‘백만 송이 장미’
누가 불렀습니까?
심수봉씨입니다.
러시아 원곡에 심수봉 권사님이 직접 가사를 써서 부른 소위 번안곡입니다.
제가 이 노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번안한 가사에 매력을 같은 이유는 심수봉 권사님의 진실한 신앙고백이 그의 노랫말 속에 오롯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나 많은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소개가 되었지만 현대사의 질고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분이 심수봉 권사님입니다.
기구한 운명이지요.
그는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정말 여러 종교를 전전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윤항기 목사님이 시무하는 예음교회였고 거기서 주님을 만난 심수봉 권사님은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때부터 심수봉 권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물음 앞에서 늘 고민하며 살아 왔다고 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내가 너에게 준 사명을 다하고 왔느냐?’라는 물음이고, 또 하나는 첫 번째 물음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 물음인데 ‘너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왔느냐’였습니다.
‘내가 너에게 준 사명을 다하고 왔느냐?’
‘너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왔느냐?’
이것을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그 물음에 대한 자신의 다짐을 노랫말로 쓴 것이 ‘백만 송이 장미’라는 곡입니다.
노래 말은 이렇습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완전한 사랑.
그 십자가의 사랑을 거저 주고 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이의 소명과 사명을 심수봉 권사님은 ‘백만 송이 장미 꽃’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처럼 부르심 곧 소명과 그리고 부르신 분의 뜻 곧 사명에 따라 합당한 삶을 살다가는 것만큼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없을 것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아니라 사명의 사람이지요.
그렇다면 누가 하늘이 준 하나님의 소명과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산상설교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에 주목했습니다.
바로 마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입니다.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만이 하늘이 준 소명 그리고 하늘이 준 사명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리새인처럼 외식으로 가득한 상태에서는 결코 하늘이 준 소명 그리고 하늘이 준 사명을 발견할 수 없지요.
다행이도 오늘 본문에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청결해 하나님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그 분의 마음과 뜻까지 헤아려 이방인의 사도, 이방인의 전도자라는 사명에 이끌려 살아간 분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일, 소명이지요.
그리고 그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한 삶, 사명일 것입니다.
이 소명과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몇 가지 추구해야할 영적인 목표가 있다고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첫째 겸손, 둘째 온유, 셋째 오래 참음, 넷째 관용, 그리고 다섯째 하나 됨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의 합당한 삶 5가지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겸손이 있어야겠지요.
보통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를 우리가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교만 혹은 오만에 대립되는 개념의 겸손이지요.
하지만 성경 속으로 들어가 보면 겸손의 의미가 좀 더 학대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기를 바라시는 일, 그 일에 자신을 투신하는 것을 우리가 겸손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기를 바라시는 일
그 일에 우리 자신을 투신하는 것입니다.
미가 6장 8절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기를 바라시는 일,
그래서 자신을 투신하고 헌신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의 일이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는 오직 정의를 행하며
또 하나는 인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히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겸손한 자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마지막 심판 날에 있을 일을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시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입니다.
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기를 바라시는 일
그 일에 자신을 투신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겸손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도덕적 겸손, 그 이상의 능력입니다.
둘째, 부르심을 받은 자는 온유함이 있어야겠지요.
온유함(meekness)이란 본래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과 행동을 일컫는 단어로 온화함과 유순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온유함이 좀 다르게 사용됩니다.
‘길들어진 상태’ 입니다.
누구에게 길들어진 상태입니까?
하나님에 의해 길들어진 상태가 바로 온유함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주님이 주신 멍에를 멘 상태가 바로 온유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심이 주신 멍에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1장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여기서 말하는 ‘내 멍에’는 바로 우리 주신이 주신 새 계명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처럼 주님의 멍에를 진 제자의 삶이 바로 온유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멍에를 기쁨으로 메는 사람이지요.
찬송가 150장 후렴의 고백처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십자가 붙드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이런 분들은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 무엇인가를 늘 판단하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지요.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온유함입니다.
셋째, 오래 참음(longsuffering)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는 가치입니다.
헬라어로는 마크로티미아(makrothymia)인데, 이 단어 속에 들어 있는 티미아(thymos의 변형)는 ‘분노‘ 혹은 ‘화‘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있는 분노나 화를 당장 터뜨리지 않고 지연할 줄 아는 지혜가 바로 오래 참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지혜 자가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은 그의 영광”(잠19:11)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루는 베드로가 우리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그러자 우리 주님이 주저 없이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마18:21-22)
이처럼 사랑의 끈질김, 희망의 끈질김, 기대의 끈질김이 바로 오래 참음입니다.
넷째, 용납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받아드리는 것이지요.
누군가 나를 째려본다는 느낌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나 환대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용납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경계선을 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이나 표정 혹은 행동으로 누군가를 밀쳐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시시오.
또 나와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도 대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다섯째 하나 됨입니다.
세상의 특징은 모든 것을 가르고 나누는 것에 있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고용주 노동자, 남자 여자, 가난한 자 부자, 큰 회 작은 교회, 좋은 사람 싫은 사람
하지만 교회는 교회만큼은 모든 것을 가르고 나누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갈라진 서로의 손을 잡게 해고 갈라진 것들을 꿰매야 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이 준 소명과 사명을 망각했을 때 일어나는 증상이 있습니다.
바로 시기와 분열과 책임회피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에 준 소명과 사명 그리고 이방 그리스도인에게 준 소명과 사명을 그들이 등한시 하고 서로 잘났다고 서로 무엇인가 해 보겠다고 다투고 있을 때 에베소 교회는 성장을 멈추었고 더 이상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아주 간곡하게 당부한 말씀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이처럼 부름 받은 이들의 아름다운 일치.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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