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에서 희망 찾기
미가5:2-5 2017/12/17 구주강림 3주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5: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오심.
대림절과 관련 된 시 한 편을 먼저 소개한 후 계시된 본문의 말씀을 함께 나눌까합니다.
우리가 살펴볼 시 한 편은 함석헌 선생님의 ‘님이 오신다.’입니다.
이 시를 살피기 전에 먼저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짤막한 기도이지요.
에베소서 3장 17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바울의 소망이 담긴 아주 짤막한 기도가 나옵니다.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이 부분을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믿음(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믿음이겠지요?)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이것이 바울이 사도로서 그 어떤 어려움과 환란 속에서도 이방인을 향한 전도 여행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였고 바울이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였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을 머물러 계시게 하는 것이지요.
더러운 욕망에 짓밟히는 삶이 아니라
불순종의 영 곧 사탄의 종노릇하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것이 모든 이들을 향한 바울의 소망이지요.
여기서 질문 하나가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평안히 머물러 계시게 할 수 있을까?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믿음이지요.
이것이 사도 바울의 결론이었고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를 남긴 함석헌 선생님의 결론이었습니다.
한 번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님이 오신단다, / 길 닦아 예비하자
내 집에 오시는 님을 / 날 보러 오시는 님을, / 그저 어찌 맞느냐?
높은 것 낮추고 / 우므러진 것 돋우고
굽은 길을 곧게 하고 / 지저분한 것을 다 치워 / 님이 바로 오시도록 하자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시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 마음속에 있는 여러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세 가지입니다.
가장 으뜸가는 것이 욕망이지요. 욕심,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를 거부하는 불순종입니다.
다른 말로는 교만이라고도 하는데 하나님 없이 살아보겠다는 아집, 똥고집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순간순간 다가오는 사탄의 유혹입니다.
이 세 가지의 방해물들을 우리 마음속에서 제거하는 청소를 해야겠지요.
계속해서 읽겠습니다.
님을 기다린다면서 / 그저 잤고나,
이것저것을 온 방안 / 허투루 늘어놓아 / 그저 앉으실 곳도 없이 했구나.
두 번째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게으름이지요.
무정함의 게으름 무자비함의 게으름 그리고 우리의 삶을 허투루 놓는 무지함의 게으름이지요.
여기서부터 벗어나야겠지요.
마지 막 세 번째는 더러워진 우리의 속마음입니다.
어서어서 모셔야 할 님 / 더러운 길에 왜 더듬게 하며,
맑고도 거룩하신 그의 몸을 / 헤뜨린 이 속에 어찌 맞을꼬? /오, 내 맘이 급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제거되고, 어떻게 해야 다듬어지고, 어떻게 해야 고쳐질까요?
마음이 급하지요.
계속해서 시인의 말을 들어봅시다.
쓸자, 닦자, 고치자, / 물을 뿌리자,
묵고묵고 앉고앉고 / 이 먼지를 다 어찌하노? / 언제 이것을 아름다이 하노?
자리 위엔 무슨 때가 / 이리도 꼈느냐? / 천정의 거미줄은 / 누가 치느냐?
이리도 더러운 줄을 나도 몰랐지.
뜰에는 무엇이 저리도 많아 / 발도 옮겨놀 곳이 없고
앞길에는 돌이 드러나고 / 다리가 무너졌으니, / 저거는 누가 놓아주느냐?
아이구 님이 오시네! / 저기 벌써 오시네!
이를 이를 어찌노, / 어딜 들어오시랄꼬 / 이 얼굴, 이 꼴, 이 손은, 아이!
어떻습니까?
쓸자, 닦자, 고치자.
정작 맘 뿐 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 아닙니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우리에게 친히 찾아 오셔서 같이 쓸고, 같이 닦아주고, 같이 고쳐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시의 하이라이트이자 결론인데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 애 이 애(아이야) 걱정 마라, / 나도 같이 쓸어주마, / 나 위해 쓸자는 그 방
내가 쓸어 너를 주고, / 닦다가 닳아질 네 맘 내 닦아주마.
쓸자 닦자 하던 마음 / 그것조차 맘뿐이고 / 님이 손수 쓰시고
나까지도 앉으라시니, /내 자랑이라곤 없소이다, 참 없소이다.
밝히자면서 못 밝힌 방 / 저절로 밝아지고,
맑히자면서 못 맑힌 맘 / 나중엔 맑아졌으니
내라곤 없소이다, 님 곁에만 사오리.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에 있어서 우리가 할 일은 딱 한 가지입니다.
쓸고 닦고 고치자 하면서 그저 맘뿐인 우리 마음
그리고 밝히자면서 못 밝힌 우리 마음
그리고 맑히자면서 못 맑힌 우리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지저분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 살림살이이지만 오신 주님의 몸을 누 일 수 있도록 말구유 같은 마음의 방이라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평안히 머물러 계시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함석헌 선생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성탄이 가까울 때 늘 인용되는 말씀 중에 한 부분입니다.
미가 5장 2절입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꼭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관련된 지명입니다.
유다 족속 중에서 가장 작은 고을, 어디입니까?
‘베들레헴 에브라다’입니다.
‘베들레헴’.
사실 이 지명만 등장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은
다윗 왕의 고향이 바로 베들레헴이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
이 지명만 썼더라면 사람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유다 가문의 위대한 왕, 다윗과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 지었을 것입니다.
또 폼도 나고 의미도 있겠지요.
그래서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장자 오실 메시야를 다윗과 그리고 그의 고향인 베들레헴과 연결을 지었습니다.
요한복음 7장 42절입니다.
요 7:42 성경(삼하 7장12, 미가 5장2절)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던 선지자 미가는 '베들레헴'만 기록해 놓고 있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또 다른 지명인 '에브라다'를 겹쳐서 쓰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오늘 설교의 핵심이겠지요.
'에브라다’
'에브랏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으로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음입니다. 베들레헴과 다른 마을이지요.
‘에브랏 마을’이 역사 속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그곳이 바로 이스라엘 즉 야곱의 아내인 라헬이 묻힌 곳이기 때문입니다.
유다 족속과 베냐민 족속을 낳은 라헬의 무덤이지요.(창35장)
둘째 아들 베냐민(오른손의 아들, 베노니: 슬픔의 아들)을 낳자마자 라헬이 죽어 묻힌 땅이 바로 '에브랏 사람들의 땅' '에브라다’입니다.
그러니까 야곱, 이스라엘이지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에브랏 사람들의 땅' ‘에브라다’는 기쁨과 절망 그리고 위대한 비전과 아픔이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베들레헴과 에브라다’라는 지명 이후에 그 동네를 일컫는 다른 표현이 많은 의미를 시사합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가장 작은 족속이지만 그 마을에서 그 족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까?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늘 변방이었던 베들레헴.
그리고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변방 '에브랏 사람들의 땅' ‘에브라다’가 새로운 역사의 중심지, 새로운 시작의 중심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자신에게 제기된 거대한 스캔들을 가리기 위해 폭탄 발언을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미국의 현직 대통령 트럼프지요.
그 분이 얼마 전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유일한 수도로 인정한다고 선언함으로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주인공 선지자 미가는 말합니다.
예루살렘.
그 큰 도시에 관심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와 이슬람의 성지로 여기는 그 큰 도시 그 가증스러운 위선의 도시에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
예루살렘이라는 거대한 도시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두 동네 바로 ‘베들레헴’과 ‘에브라다’에 관심을 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는 예루살렘과 같이 외식으로 가득한 허영의 도시가 아니라 온갖 제물 타는 냄새로 넘쳐나는 소비의 도시가 아니라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래서 나그네에게 내어줄 여관 방 하나 없는 후진 동네이지만 바로 그런 곳인 ‘베들레헴’과 ‘에브라다’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역사는 늘 변방, 변두리로부터입니다.
500년 전에 일어났던 종교 개혁.
교황청이 있는 로마가 아닙니다.
독일의 작은 마을 비텐베르크입니다.
1903년부터 시작해서 1910년까지 일어났던 이 땅의 대부흥운동은 대한 제국의 중심지 서울이 아닙니다.
변두리 원산이었고 변두리 평양이었고 그리고 변두리 함흥이었고 변두리 개성이었습니다. 이것이 1903년부터 시작해서 1910년까지 우리나라 조국강산에 일어났던 대부흥운동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서울에서, 큰 도시에서, 거대한 것에서 희망을 찾지 마십시오.
희망은 항상 변두리로 부터입니다.
거기에 우리 교회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는 첫 번째 의미이지요.
두 번째는 이름 없는 한 사람, 무명으로부터입니다.
룻기 1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보면 아주 보잘 것 없는 한 가문이 나옵니다.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입니다.
훗날 ‘에브라다’라는 지명을 얻게 된 에브랏 가문이지요.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1: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그 가문의 대가 끊어집니다.
그런데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에브랏 가문에 시집 온 모압 여자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룻’의 의해 다시 에브랏 가문이 이어질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에서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이 그리고 그의 후손에서 누가?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모압 여인 한 사람의 믿음이 이름 없는 한 사람의 믿음이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반전 중에 반전이지요.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는 두 번째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선지자 미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면한 현실은 항상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해산을 앞둔 여인의 처지였지요.
‘모호함’과 ‘불확실성’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여인의 해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가5: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5:3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신의 백성을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실 것이다. 그 뒤에 그의 동포, 사로잡혀 가 있던 남은 백성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5:4 그가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이 지닌 그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의 떼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므로, 그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5:5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해산을 앞둔 여인처럼 바벨론에게 끌려간 이들에게 내일은 어쩌면 ‘모호함’과 ‘불확실성’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호함’과 ‘불확실성’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분명한 약속 하나를 남기십니다.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다시 말해 평화의 왕으로 메시아가 올 때까지 하나님이 친히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먹고 사는 것 하나님이 친히 책임지겠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먹고 사는 것 비록 포로의 처지이지만 바벨론에서도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안전입니다.
비록 나그네로 살아가는 바벨론 살이 이지만 그 곳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언제 쯤 남들처럼 ‘기쁘다 구주 오셨네’가 될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오실 때 까지 첫째 먹여주실 것이고 둘째 평화의 왕을 맞이할 때까지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다만 우리가 놓지 말아야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인자를 기다리는 자가 갖추어야할 3가지 요구사항인데 미가 6장 8절입니다.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①오직 정의를 행하며 ②인자를 사랑하며 ③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다시 정리합니다.
공의를 실천하는 것.
인자를 사랑하는 것.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태복음 6:9-11절 주기도문 강해⑬ (0) | 2017.12.28 |
---|---|
요한복음 1:29-34절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0) | 2017.12.28 |
고린도전서16:15-18절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영성 (0) | 2017.12.19 |
마태복음 6:9-10절 주기도문 강해⑫ (0) | 2017.12.19 |
시편101:1-8절 어떤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는가? (0) | 2017.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