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 다시보기
역대상 4:9-10절 2017/11/05 추수감사절
4: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00년에 출판되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책 한권이 있습니다.
바로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입니다.
서너 시간만 투자 하면 문안이 읽을 수 있는 짧고 쉬운 책입니다.
이 책으로 인해 저자 ‘브루스 윌킨슨’은 한국교회 안에서 아주 유명한 인사가 되었습니다.
이 책이 출판된 이후 ‘야베스의 기도’는 한국 그리스도인의 대표 기도문이 되었습니다.
액자마다 예배상마다 온통 ‘야베스의 기도문’이었습니다.
특히 입주예배나 사업체를 방문할 때, ‘야베스의 기도 액자’는 필수였습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그 유행이 지속되고 있을 만큼 아주 인기 있는 기도문이 ‘야베스의 기도’입니다.
‘야베스의 기도’
그 기도문이 오늘 우리가 읽은 역대상 4장 10절에 나옵니다.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참 매력적인 기도문입니다.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쉬우면서도 귀에 속 들어오는 참 매력적인 기도문입니다.
그런데 이전에 우리가 사용했던 ‘개역한글판’ 성경을 보면, 이 ‘야베스의 기도’가 더 멋있고 더 매력적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빨간 밑줄을 안 그을 수 없을 만큼 아주 매력적인 요절입니다.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①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②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③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④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냥 밑줄 쫙 이지요.
그런데 이 기도문보다 더 멋진 말씀이 바로 그 다음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아멘 아멘’ 이지요.
‘브루스 윌킨슨’이 자신의 책 ‘야베스의 기도’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문’을 우리 마음속에 새기고 그리고 그 기도가 곧 이루어질 것을 상상하며 매일같이 믿고 기도하면.
야베스처럼,
첫째, 복에 복을 더해 받고
둘째, 지경, 재물이나 재산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셋째, 환란이나 불행도 피해가고 아무걱정 근심 없는 형통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만사형통의 축복’이지요.
어떻습니까?
너무 좋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브루스 윌킨슨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도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야베스의 기도’를 너무 오용하고 남용하고 있다는 우려와 반성입니다.
특히 ‘야베스의 기도’를 ‘주문’처럼 사용하라는 윌킨슨의 주장에 의문을 달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려와 반성은 이런 것입니다.
브루스 윌킨슨의 주장 속에는 우리 주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의 뜻과 정신이 담겨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핵심 청원은 6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것 3 가지 그리고 우리에 대한 것 3 가지.
그런데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에 대한 것 3 가지가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둘째,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 나라’의 간구가 없습니다.
셋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습니다.
‘야베스의 기도’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일인칭대명사들뿐입니다.
①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②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③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기도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반성도 점점 더 커졌습니다.
너무 현세적이고 너무 물질적이고 너무 이기적이며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우려와 반성이지요.
과연 그럴까?
그래서 ‘야베스의 기도’를 다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려의 목소리처럼 정말 천박하고 유치한 기도일까?
반성의 목소리처럼 오직 제 것만 구하고 물질만 추구하는 세속적이고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기도일까?
그래서 브루스 윌킨슨의 주장이 담긴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을 덮고, 오직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야베스의 기도’는 역대상 1장부터 시작해서 9장까지 나오는 이스라엘 족보 속에 등장합니다.
‘족보 속에 등장하는 기도문’이지요.
사실 이 자체가 부자연스럽고 어울리지 않는 대목입니다.
‘어, 이게 뭐지?’
‘왜 족보 한 가운데 이런 기도문이 등장하지?’
‘이유가 뭘까?’
이 질문들을 붙들고 씨름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기도문의 주인공인 ‘야베스’가 어떤 사람인지 우선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더 난감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족보 속에서 ‘야베스’를 소개하는 대목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또는 ‘누구의 아버지는 누구이고’ 식으로 족보가 이어집니다.
하지만 야베스의 소개는 이전 것과 아주 다릅니다.
이름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4장 9절입니다.
4: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귀중한 자’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족보의 핵심은 이름인데 아버지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의 자손이 누구인지인데 그 이름이 등장하기 않고 야베스에 대한 ‘평가’가 나옵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러면 왜 야베스가 그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귀중한 자로 세움을 받았다고 성경은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단서가 그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바로 야베스라는 이름이 그 단서입니다.
4: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
그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수고롭다, 고통스럽다’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야베스’를 낳을 때 그의 어머니가 난산을 겪었거나 아버지 없이 낳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아버지가 이름은 지어주는데 여기서는 그의 어머니가 이름을 지어줍니다.
다시 말해 어머니가 이름을 지어줄 수밖에 없었던 그 어떤 절박한 상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통’ ‘수고’
이것이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결코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이 아니지요.
여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평생토록 너는 고통이나 겪어라’는 저주의 뜻이고,
또 하나는 ‘네가 나에게 고통을 불러 들였구나!’ 라는 안타까움과 탄식입니다.
아마도 어머니는 후자의 뜻으로 ‘야베스’라는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너도 참 안됐다. 너도 참 불쌍하다.’
‘어쩌다 이런 인생이 되었니’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헤쳐 나갈까?’ 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야베스’가 청원한 기도의 내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선 첫 번째 기도를 봅시다.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불행’하고 ‘박복’했으면 다짜고짜 이런 기도로 시작했겠습니까?
인생자체가 불행이지요.
한 마디로 재수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제발 나를 축복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불행’과 ‘박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야베스의 간절함이 느껴지시는지요?
두 번째 기도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도 야베스의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바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함입니다.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함이지요.
‘내 집에 대한 내 땅’에 대한 간절함이지요.
그래서 내 자식 먹여 살린 만한 땅이라도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하는 것마다 손대는 것마다 ‘쫄딱’ 망했을 것입니다.
불행도 이런 불행이 없지요.
늘 이용만 당하는 불행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제발 이 지긋지긋한 불행에서 벗어나 남들처럼 두 다리 쭉 펴고 살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야베스의 기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야베스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이보다 더 솔직하고 이 보다 더 진실한 기도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식 없는 기도이지요.
물론 주기도문처럼 모든 신앙인들이 배우고 따를 만한 아주 모범적인 기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남의 형편도 모르고 ‘천박하고 유치하다.’ ‘세속적이고 기복적이고 이기적이다’고 몰아세울만한 기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역대기 역사가가 이 기도문을 이곳에 삽입한 이유입니다.
‘천박하고 유치하지만 세속적이고 기복적이고 지극히 이기적인 기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늘 우리의 보족하고 연약하고 허울만은 기도도 들어주시고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대상을 기록한 역대시 역사가가 이 기도문을 이곳에 삽입한 이유입니다.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러니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모든 것이 폐허가 되었다고 너무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접고 약속에 땅에 다시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비록 현실은 ‘야베스’이지만 그래서 고통과 수고가 지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요?
배운 것이 없어 우리의 기도가 세련되지 못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우리의 기도가 천박하고 유치하지만
그래서 나만 생각하고 내 자식만 생각하는 세속적이고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기도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그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다 허락하시고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1970, 1980년대에 드렸던 우리 부모 세대의 기도이고 역사이고 응답이고 허락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런 천박하고 유치한 기도도 드리는 않는 ‘완고함’에 사로잡히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살고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 교회가 처한 가장 큰 위기입니다.
어떻습니까?
기도하십니까?
어떤 기도를 하고 사십니까?
혹시 입니다.
혹, 기도 없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말씀을 마칩니다.
기도에 있어서 꼭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참 좋은 기도이지만 기도의 여정 중에서 ‘초보 단계’에 해당하는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주기도문’처럼 아주 모범적이거나 완전한 기도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1970, 1980년대에 드렸던 우리 부모 세대의 기도처럼 영적인 것은 고사하고 끼니마저 위협 받았을 때 드렸던 ‘야베스의 기도’는 지금도 분명하게 유효합니다. 지금도 그 기도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
하지만 야베스의 기도, 그 기도의 단계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삶의 조건이 변화되면 우리의 기도도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주님이 가르쳐 준 기도인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완전한 기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선 야베스의 기도보다 한 걸은 더 나아갈 수 있는 기도를 소개할까합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기도인 ‘아굴의 기도’입니다.
잠언 30:7-9절입니다.
30: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30: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좋은 기도가 있습니다.
가장 완전하고 가장 위대한 기도.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오늘은 설교 후에 행하는 목회기도 없이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주기도로 오후예배의 모든 순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 같이 눈을 감으시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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