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마태복음 6:9절 주기도문 강해⑧

心貧者 2017. 10. 27. 15:43


주기도문 강해

마태복음 6:92017/10/25()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기도문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되는 기도의 머리말

6가지의 청원(하나님에 대한 청원 3가지 + 우리들에 대한 청원 3가지)

그리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송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되는 기도의 머리말 중에서 하늘에 계신이라는 어구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가장 신뢰 받는 언론인이 빌 모이어스였는데, 그가 백악관 대변인이 되어 있었던 일입니다.

대통령으로부터 식사기도를 부탁받은 빌 모이어스가 식사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 소리가 너무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다혈질인 존슨 대통령이 중간에 소리를 칩니다.

,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다 들릴 수 있도록 더 크게 기도하세요?’

그러자 빌 모이어스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존슨, 저는 대통령께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들려지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잊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기도 자는 지금 내가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알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그 대상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지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기도 자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대상은 한 분이지만 그 믿음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병자에게 있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치유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노예가 되었던 이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자유를 주시는 해방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역사의 질곡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대자대비하신 하나님입니다.

또 다윗처럼 늘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산성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며 피할 바위가 되시는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다 알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이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을 하나하나씩 넓고’ ‘길고’ ‘높고 그리고 깊게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바로 기도생활을 통해서입니다.

에베소서 314-19.

(에베소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중보기도문)

3: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3: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3:19 너비길이높이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처럼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믿음의 여정을 걷는 사람은 좁은 믿음, 짧은 믿음, 낮은 믿음 그리고 얕은 믿음의 언덕에서 벗어나 넓고, 길고, 높고 그리고 깊은 은혜의 바다, 믿음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3:11-12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하나님이 나를 아신 것 같이 나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는 믿음.

그 믿음의 푯대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기도 자는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알아 가려는 하나님에 대한 영적 탐구심과 자신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에 대한 영적 겸손을 함께 지니고 주기도문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다 알 수 없어도 나 알아 가리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으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은 아주 적절한 일입니다.

헬라어에서는 주기도문의 첫 문장이 파테르 헤몬입니다.

직역하면 우리 아버지이지요.

영어 주기도문 역시 ‘Our Father’로 시작합니다.

어떤 이는 주기도문의 원래 형태에 하늘에 계신이라는 어구가 없다가 초대교회에 첨가되었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훗날 삽인 된 하늘에 계신이라는 어구로 시작하는 주기도문의 머리말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도의 모든 의미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서 행한 일의 모든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우선 예수님이 언급한 하늘은 공간으로서의 하늘 즉 창세기 11절에서 말하고 있는 피조 된 하늘아니다라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1:1 태초에 하나님이 를 창조하시니라

 

예수님이 언급한 하늘은 첫째, 창조주의 영원성절대성을 상징합니다.

감히 설명할 수도, 감히 상상할 수도, 감히 다가 갈수도 없는 하늘이지요.

그래서 전도서 5장을 보면 기도할 때특히 조심해야할 것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말을 적게 하라는 것은 단순히 입 조심하라는 경구가 아닙니다.

핵심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을 깨달아 그분 앞에서 입을 열 때는 조심 또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를 속일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말 속에 감추어진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속사람과 다른 외식의 기도를 환하게 꿰뚫어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 자는 기도 전에 항상 자신의 삶을 살피고 되 돌아봐야 합니다.

전도서 51절입니다.

()5:1 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 발걸음(행실)을 조심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우상 숭배자요 교만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기도 자는 제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삶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절대성 앞에서 온전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두 번째,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 분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이지요.

따라서 기도 자는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일에 투영시키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어디까지나 비유는 비유일 뿐 신ㅊ지처럼 그 이상으로 해석하지 말라.

 

이사야 4012-26절입니다.

40:12 누가 바닷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헤아려 보았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보았느냐? 누가 온 땅의 티끌을 되로 되어 보고, 산들을 어깨 저울로 달아 보고, 언덕들을 손저울로 달아 보았느냐?

40:13 누가 주님의 영을 헤아릴 수 있겠으며, 주님의 조언자가 되어 그를 가르칠 수 있겠느냐?

40:14 그가 누구와 의논하시는가? 누가 그를 깨우쳐 드리며, 공평의 도리를 가르쳐 드리는가? 누가 그에게 지식을 가르쳐 드리며, 슬기로운 처세술을 가르쳐 드리는가?

40:15 그에게는 뭇 나라가, 고작해야,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물이나, 저울 위의 티끌과 같을 뿐이다. 섬들도 먼지를 들어 올리듯 가볍게 들어 올리신다.

...

40:17 그 앞에서는 모든 민족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에게는 사람이란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

40:26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 분인지를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합니다.

그리고 지금 누구 앞에 서 있는지를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말을 걸려는 상대가 누구인지 늘 환기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늘에 계신분 앞에 홀로 선 기도 자는 늘 두렵고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망칠 것 같은 두려움과 떨림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앞에 홀로 선 경외감 속에서 오는 두려움과 떨림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말합니다.

기도는 대단히 위험한 것이며, 제대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왜 그럴까요?

땅에 있는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자 말을 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기도를 시작하는 이유는 경외감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려 나오는 영예감사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앞에 서는 자격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누구나 전능자 앞에 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 앞에서 감히 입을 뗄 수 있는 담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죄 씻음을 받은 사람만이 두려움의 휘장을 찢고 담력 있게 말할 수 있는 영예감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영예감사를 얻게 된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를 때,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땅에 있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