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믿음
마태복음 15:21-28절 2017/10/13(금)
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이 고향 갈릴리를 떠나 갈릴리 북서쪽 해안가에 위치한 두로와 시돈 지방에 들어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두로와 시돈은 상업과 무역이 번창한 도시로 돈이 넘쳐나는 곳이었습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가보고 싶은 기회의 땅이지만 경건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두로와 시돈은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죄악의 도시이지요.
그런데 자신의 고향이자 사역의 중심지였던 갈릴리를 떠나 하나님 나라와 거리가 먼 두로와 시돈으로 우리 예수님이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다분히 의도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지요?
자, 두로와 시돈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22절, 귀신 들린 딸을 가진 가나안 여자가 찾아옵니다.
부유한 상인이 찾아 온 것이 아닙니다.
두로와 시돈의 저명한 인사가 찾아 온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두로와 시돈 사람마저 무시하고 멸시 하는 한 여인이 찾아오는데 바로 귀신 들린 딸을 가진 가나안 여인 다시 말해서 남편 없는 이방인 과부를 만나게 됩니다.
아주 최악이지요.
가나안 이방사람, 여자, 귀신들린 딸을 가진 과부.
아주 최악입니다.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절대로 가서도 안 되고 만나서도 안 되는 사람을 예수님은 일부러 찾아가서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의도적인 만남이지요.
왜 그러셨을까요?
왜 이렇게 부담스러운 사람을 만나려 하신 것일까?
이것을 통해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고 그리고 무엇을 말씀하려 하신 것일까?
그 이유와 답을 밝히는 것이 오늘 말씀에 핵심입니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의도적으로 두로와 시돈을 찾은 예수님께 처음으로 응답한 사람은 귀신들린 딸을 가진 가나안 과부였습니다.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여기에 보면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에게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하나는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고
또 하나는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으니 고쳐달라’는 간청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귀신들림 다시 말해 육체의 질병을 고쳐달라는 간구보다 불쌍히 여겨 달라는 영혼구원의 간구가 먼저 앞섰다는 사실입니다.
보통은 어떻습니까?
‘나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영혼 구원의 문제는 제쳐두고 지금 당면한 문제 곧 눈 앞에 문제만을 구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입니다.
‘하나님 우리 자식 시험 잘 보게 해 주세요’
‘좋은 직장 가게 도와 주세요‘
‘병 고쳐 주세요.’
‘돈 주세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가나안 출신의 이방 여인은 마태복음 6장 32절의 예수님 말씀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데 이 이방 여인이 무엇을 먼저 구합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육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합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렇게 해서 나온 간청이 오늘 본문 마태복음 15장 22절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 분이 어떤 능력을 가지신 분인지,
그리고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그 어떤 유대인들보다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결론에서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표현하지 않았던 ‘큰 믿음의 사람’이라고 아낌없이 칭찬을 했던 것입니다.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교회 안이나 교회 밖이나 염려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세속화’입니다.
첫째는 ‘교회의 세속화’, 둘째는 ‘신앙의 세속화’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가장 큰 질병이라는 사실에 모두 동의합니다.
문제는 교회의 세속화 신앙의 세속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교회 안이나 교회 밖이나 고민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치려 하지도 않고 고쳐보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와 세상 사이의 불신의 벽은 점점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할까?
우선 교회의 세속화, 신앙의 세속화가 무엇인지를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충분한 설명은 안 되겠지만 오늘 본문 중심으로 그 맛만 보겠습니다.
성경, 특히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세속화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이 가지고 있는 우선순위
신앙가 가지고 있는 우선순위
그 가치를 상실 했을 때 의도치 않는 세속화는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우선순위, 신앙의 우선순위, 그것이 무엇입니까?
가나안 여인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신 신앙의 우선순위는 마태복음 15장 22절입니다.
‘주 다윗의 자손’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이것이 모든 것의 우선순위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걱정과 근심과 불신이 아니라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셨던 그 은총의 역사, 그 사랑의 역사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딸도 중요하지만 이 이방 여인 가나안 여인이 먼저 구한 것이 마태복음 15장 22절 ‘나를(나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영혼구원의 청원’입니다.
‘나의 영혼 구원입니다.’
이 우선수위를 빼앗기는 순간 교회는, 신앙은 세속화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늘 본문이 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큰 믿음의 사람이라고 칭찬을 들었던 이 이방 여인의 간청을 보십시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그래서 나온 간청이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아주 보석과 같은 귀한 신앙고백이지요.
문제는 예수님의 고향 갈릴리, 예수님의 중심 사역지 갈릴리가 아니라 갈릴리 사람들이 혐오하는, ‘돈 만 밝히는 놈들’이라고 혐오하는 두로와 시돈 땅에서 이 고백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시원치 않습니다.
두 가지의 이유로 이 이방 여인의 청원을 거절합니다.
하나는 15장 24절입니다.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또 하나는 15장 26절입니다.
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그런데도 이 여인이 물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간청합니다.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에 대해서는)
→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에 대해서는)
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비록 부스러기이지만 개들도 자기 주인의 상에서 은총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말씀을 마치면 기도의 시간을 곧 가지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실 때,
오늘은 다른 것 다 떠나 이렇게 기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오직 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스러기 은총, 그 이상의 큰 믿음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주님에게 칭찬받을 만한 큰 믿음을 달라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6:13-23 악을 이길 수 있을까? (0) | 2017.10.24 |
---|---|
마태복음 6:9 주기도문 강해⑦ (0) | 2017.10.18 |
요한복음 5:31-38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그 일들 (0) | 2017.10.18 |
마태복음 5:13-16절 청년 그리스도교 (0) | 2017.10.10 |
마가복음1:1-4 길 (0) | 2017.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