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부요한 자
누가복음12:16-21절 2017/09/15(금)
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화여자대학교 교목을 지낸 분 중에 조찬석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자기반성 차원에서 쓴 글이 ‘기독교 죄악사’인데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한국 인구의 50.7%가 종교인으로 나타났는데, 그 종교의 절대 수는 기독교·불교·천주교가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사찰·성당의 수는 한국의 모든 학교 총수의 3배나 된다고 한다.
사랑과 자비, 희생과 봉사를 주장하는 위의 세 종교인이 민족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민족의 도덕성이 점점 더 타락하고 더 심한 부정부패가 민족의 진로를 방해한다면, 그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할 것인가? 그 책임이 세 종교에는 없는가?
성당의 우렁찬 종소리와 미사도, 교회에서 새벽마다 울부짖는 통곡의 기도도, 절간의 목탁 소리도 민족을 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증거인가?
혹은 한국의 종교들은 각 개인의 축복과 구원만을 추구하는 이기 집단인가?
그렇다면 그런 종교는 우리 사회에 있으나마나 한 존재이다. 그런 종교는 도리어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으뜸가는 가르침'을 우리가 ‘종교’라고 말합니다.
종교, 으뜸가는 여러 가르침이 있겠지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공자님의 가르침도 있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유심론’ 부처님의 가르침도 있고 그리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마호메트의 가르침도 있고 여러 가르침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가르침 있는 곳이 어디 있가요?
바로 여러분이 몸 다고 있는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한 때 이 땅에 속했던 사람의 말이나 지혜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곧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교회 안에서 보여 지는 신앙의 행태를 보면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나 진지하지가 못합니다.
다시 말해 '으뜸 중에 으뜸가는 가르침이 그리스도의 복음‘인데 그 복음을 가르치는 자나 그리고 그 복음을 가르침을 받는 자나 진지한 자세나 진지한 태도,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긴장감도 없고 열정도 없지요.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의 복음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면 그 으뜸가는 가르침을 가장 공들여 가르치고 가장 공들여 배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럴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관심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이 땅에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만 모든 관심을 두고 있지요.
아마도 오늘 본문의 핵심은 19절과 20절에 있을 것입니다.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부자’입니다.
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부자’
어떻습니까?
좋은가요? 좋아 보입니까?
좋기도 하고 좋아 보일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부자’ 아마도 좋기도 하고 좋아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지요.
없는 죄도 만들고 있는 죄도 덮을 만큼 돈은 아주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도 화려한 변호인단의 비호를 받은 재벌총수가 자전거를 훔친 잡범보다도 못한 형량을 부여받은 것을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맞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돈돈 하는가 봅니다.
‘부자’
좋지요, 좋아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비유지만, 우리 주님이 이 ‘부자’를 이렇게 부르십니다.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도대체 예수님을 왜 이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했을까요?
오늘날 몰지각하고 부도덕한 졸부처럼 남에게 피해를 입혀 부자가 된 것도 아닌데 그저 열심히 노력해서 제 땅에 얻은 소출로 부자가 된 것인데 왜 예수님은 이런 성실한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했을 까요?
그 이유가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나옵니다.
다시 20절부터 읽겠습니다.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에 대한 부요함이 없다’는 것이 그 부자가 어리석은 이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부요함이지요.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부유한 자’, ‘하나님의 부자’이지요.
없어질 ‘세상의 부자’가 아니라 없어지지 아니할 ‘하나님 부자, 하나님나라의 부자’이지요
자, 그러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세상 부자란 어떤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늘로부터 받은 복을 나눈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여러분, 재물의 복 재화의 복 누가 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라고 여기십니까?
잘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쓰고 나누셔야지요.
그런데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물질의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 여깁니다.
그래서 재벌처럼 수입이 풍성하도록 하든지 아니면 김생민씨처럼 아끼고 저축하는 데만 관심을 주지요.
그런데 이 어리석은 부자는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벌처럼 수입, 소출도 풍성했고 김생민씨처럼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는 아낌과 저축도 있었습니다.
오롯이 자기의 것이지요.
베푸는 것이 없고 나누는 것이 없지요.
창고에서 썩는 한 그저 움켜지기만 하지요.
그 때, 우리 주님이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누구의 것이 될까요?
그 말은 곧 재물의 주인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한때 관리하는 관리자이자 청지기이자 집사일 뿐이지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돈 가지고 ‘갑질’을 일삼는 것을 보면 참 딱하지요.
두 번째,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세상 부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 동안 고생도 했고, 재물이 창고에 그득하니 이제부터 마음 놓고 쉬고'(relax), '먹고'(eat), '마시고'(drink), '즐거워'(be merry)하자는 것입니다.
도둑질 한 것도 아니고 남 등친 것도 아니고 누릴 만하지요.
문제는 온통 관심이 쉬고'(relax), '먹고'(eat), ‘마시고'(drink), '즐거워'(be merry)하는데 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직 자기 자신 뿐이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자기에만 성실한 이 부자를 하나님은 어리석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교회의 분란을 딛고 새롭게 교회를 시작하는 예배의 자리에서 어느 원로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안식년 맞아 미국에 있는 여러 교회를 탐방하면서 예배를 드릴 때 있었던 일이랍니다. 그 교회는 해 마다 예산의 1%씩 올려서 섬기고 나누는 일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 크지 않은 교회인데 창립 이후 그 고집을 계속해서 이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 목사님 머리에 퍼뜩 스친 생각이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저러다 월급도 못 받고 교회 망하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또 하나의 생각이 지나가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과 나누는 일에 재정을 다 쓰다가 교회가 망하면 그것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자, 어떤 것이 하나님께 부요한 자의 생각이라고 여러분은 여기십니까?
그리고 이렇게 설교를 마무리 지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왕 시작한 것 아름답게 제대로 망하는 교회가 되십시오.’
그러자 그 곳에 참여 했던 모든 교인이 ‘아멘’ 했지요.
그 교회 망했을 까요?
아닙니다.
지금 그 지역에서 가장 축복 받은 교회 중에 하나가 되었지요.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어떤 것’인지 좀 생각 좀 해 봅시다.
그리고 세상의 부유함을 쫒지 말고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기 위해 노력 좀 해 봅시다. 설사 그 길이 망하는 길이라 세상 사람이 손가락질해도 한 번 해 봅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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