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⑤
마태복음 6:9절 2017/09/13(수)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 주님이 남겨주신 가장 고귀한 유산 중에 하나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
이 기도는 우리 주님의 생명이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이 이 땅에서 흘린 땀과 피도 배어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주기도를 제대로 기도하고, 그 기도에 따라 사는 교회, 그리고 그 기도에 따라 책임 있게 살아내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주기도를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싶게 암송해서 그런지 그 뜻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의 도움을 바라며, 자신의 몸을 부지런히 놀리는 사람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보통은 예배 속의 기도, 입술의 기도로 멈춥니다.
과연 주기도는 그런 기도일까요?
옛날부터 한국교회는 안수 받은 목사가 없을 때 축도 대신 주기도로 예배를 마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전통은 살아 있어서 목회자가 없는 모든 모임의 끝은 예외 없이 주기도로 마칩니다. 이런 전통 때문이지 주기도가 마치 예배의 끝을 알리는 ‘알람alarm’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그 기도문마저도 교회마다 제 각각이며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한국인에 의해서 최초로 번역된 것으로 추론되는 한글판 주기도문이 미국성서공회에 의해 발간된 잡지 ‘바이블 소사이어티 레코드’(The Bible Society Record, 이하 BSR) 1885년 5월호에 실려 있는 것이 얼마 전 공개되었습니다. BSR에 게재된 이수정의 주기도문은 그가 직접 한글로 쓴 것을 미국성서공회에 보냈고, 미국성서공회가 이를 ‘The Lord's Prayer in Corea’(한국어 주기도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것으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 보면 4째 줄에 주기도문 마지막 부분에 ‘대저大抵’(대체로 보아서, 무릇)라는 부사가 등장합니다.
이것을 오늘날 많은 교회가 그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개역개정판에 없는 ‘대개大蓋’를 붙여 이렇게 기도합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헬라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Ὅτι σοῦ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καὶ ἡ δύναμις καὶ ἡ δόξα εις τους αιωνας. αμην
호티 수 에스틴 헤 바실레이아 카이 헤 두나미스 카이 헤 독사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아멘
접속부사 ‘호티’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호티’가 이유를 설명하는 접속사로 보통 ‘왜냐하면’이나 또는 ‘그 이유를 설명하면’ 정도로 번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의 경우 이것을 대부분 ‘For’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문제는 접속사 ‘호티’를 ‘왜냐하면’이나 또는 ‘그 이유를 설명하면’으로 번역하다보면 주기도문의 우리말 문맥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또 다른 문제를 만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래서 개역개정 한글판 성경은 접속부사 ‘호티’를 번역하는 것 보다는 번역하지 않는 것이 우리말 문맥에 더 자연스럽다고 여겨 ‘대개’를 생략하게 된 것입니다. 굳이 번역해 놓지 않아도 그 뜻과 의미를 전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점일획도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 ‘호티’라는 헬라어 단어를 꼭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찾아 낸 말이 우리 일상 속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 ‘대개大蓋’라는 한자식 접속사입니다.
그 뜻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일의 큰 원칙으로 말하건대’입니다.
우리가 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꾸면 ‘왜냐하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따라서 이유를 설명하는 접속사 ‘대개大蓋’를 붙여서 기도해도 좋고, 붙이지 않고 기도해도 좋습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헬라어 ‘호티’의 뜻을 이해하고 우리말 성경인 ‘개역개정 한글판’ 번역 원안 그대로 기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정리가 되셨습니까?
우리는 주기도문을 늘 암송하고 있기 때문에 다 알고 있다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기도문의 기도 하나 하나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정말 함부로 기도할 내용의 기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드리는 주기도 속에는 찬송가 288장 3절의 가사처럼 ① ‘세상과 나는 간데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이게 하는’ 변화의 역사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②나의 소원을 아뢰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③예수님의 보혈로 구속 받은 우리가 이 땅에서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할, 아니 우리 몸을 하나님에게 산 제물로 드리는 책임의 기도라는 점에서 이 기도는 어쩌면 연약한 우리에게는 가장 위험한 기도입니다.
가장 안전하고 완전하며 위대한 기도이지만 또한 가장 위험한 기도입니다.
좀 더 들어가서 설명하면,
주기도문이 가장 위험한 기도인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입으로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 몸 곧 전인격으로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할 이 땅의 책임이 담겨져 있는 몸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일 수 있는 외식의 기도가 아니라 기도의 입말과 함께 기도의 몸말이 함께 필요한 성실한 기도이자 구원의 은총에 답을 드리는 진실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의 분량을 보면 우리 주님이 가르쳐 준 기도의 무게감으로 볼 때 지나칠 정도로 짧고 간결합니다.
지나치리만큼 간결합니다.
병행절인 누가복음 11장을 보면 더 간결하고 짧습니다.
그 이유는 누가복음이 마태복음과 달리 이방인 독자를 대상으로서 쓰여 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모든 청원들이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자로서 결단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 내용을 보면,
크게 여섯 가지의 청원(petition)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섯 가지의 청원 중 처음 셋은 하나님에 관한 청원입니다.
1)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2)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청원 셋은 우리들에 관한 것들입니다.
4)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곧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5)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6)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반면 누가복음의 주기도문 속에는 다섯 가지의 청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섯 가지의 청원 중 처음 둘은 하나님에 관한 청원입니다.
1.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이다’가 없음)
그리고 나머지 셋은 마태복음과 동일하게 우리들에 관한 것들입니다.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5.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일부 생략)
*참고로 ‘누가복음의 주기도’는 마지막 시간에 따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마태복음의 여섯 개의 청원, 누가복음의 다섯 가지 청원으로 이루어진 주기도, 아주 간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따지고 보면 그 하나하나의 기도가 만만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는 이 땅에서 사는 우리의 소원이 아닌 하늘에 계신 우리 주님의 소원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기도이면서 가장 위험한 기도인 것입니다.
전설에 따르면(입증할 만한 ‘문서’는 없지만 권위 있는 ‘구전전승’이 존재한다는 뜻) 신약성경이 생기기 전에는 주기도문만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편지를 쓰고, 마가 ․ 마태 ․ 누가 ․ 요한이 복음서를 쓰기 전에는 공동식사(성찬식)와 주기도문이 초대 교회 예배의 초기 형태였다고 합니다.
특히 초대 교회 성도들은 율법에 등장하는 십계명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주기도문이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 ‘너는 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부정적 명령을 예수님은 자신이 가르쳐 준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로 뒤집어서 적극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나라가 임하시오며’ 그리고 두 번째 계명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로 뒤집어서 가르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기도문이나 십계명이 똑같은 말인데 십계명은 부정적으로 표시되어 있고, 주기도문은 긍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제 8 계명 도적질하지 말라.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제 9 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제7 계명 간음하지 말라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제 6 계명 살인하지 말라.
→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그러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는가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나 예수님이 온 인류를 향해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는가 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이나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도기문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being)이고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doing) 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소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being),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답게 되는 것(doing)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말로 할 수도 있지만 뜻으로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기 위해서는 뜻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뜻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몸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몸을 바쳐서, 내 몸으로 하나님 뜻과 그 분의 성품을 체득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몸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입니다.
입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뜻으로, 뜻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기도, 이것이 로마서 12장 1절에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이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음란이나 탐욕이나 살인이나 거짓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이 거룩하듯 그 거룩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거룩한 행실이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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