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로마서 12:1-2 빛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心貧者 2017. 3. 14. 11:26


빛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로마서 12:1-22017/03/12 사순절 2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17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16:21-23)와 두 번째 예고(17:22-27) 사이에 아주 중요한 사건 하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건입니까?

예수님의 모습이 빛으로 변형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명 변화산 사건이지요.

 

변화산

문학산’ ‘청량산처럼 산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된 산이라고 해서 우리가 편하게 변화산이라고 부르는 것뿐이지 문학산’ ‘청량산처럼 변화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혹 이스라엘에 여러분들이 가신다면 변화산이 어디냐고 따지듯이 묻지 마세요?

이스라엘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산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산의 이름이 아니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시고 우리 주님이 높은 산에 일부러 올라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떠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시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는 것입니다.

 

높은 산

아마도 갈릴리 호수 북쪽 만연설이 뒤 덮인 헐몬산일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꼭 집어 헐몬산어느 부분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헐몬산또는 헤르몬 산(Mount Hermon)이라고도 부릅니다.

어느 것으로 발음해도 다 좋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 백두산(2744)인데 그 보다 딱 ‘70미터’(2814)가 더 높습니다.

희한하지요.

 

지금은 이스라엘과 레바논과 시리아의 국경지대로 이스라엘의 유일한 스키장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시작된 남쪽 물줄기가 요단강이 되고 그 요단 강물이 모여 갈릴리 호수가 되고 사해가 되지요.

이스라엘의 젖줄이자 생명줄입니다.

그래서 헐몬산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대부터 거룩한 산으로 여겼습니다.

헐먼이라는 말 자체가 거룩이라는 뜻을 품고 있지요.

 

높은 산에서 예수님의 몸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변형되십니다.

, 어떻게 변형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72절입니다.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무엇을 의미하고 증거 하는 것일까요?

바로 우리 주님의 부활, 부활의 몸이지요.

이것을 우리가 영체라고도 부르는데 변형된 부활의 몸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부활의 두 번째 열매가 되는 성도들의 변형 될 모습을 미리 예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 사건이 증거 하는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본체가 하나님 자신인 속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

독생자이자 독생하신 하나님이지요.

그 하나님의 본체와 속성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겉모습 속에 감춰져 있었던 하나님의 속성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통해서 이런 것들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해같이 빛나는 을 통해서입니다.

빛과의 만남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빛, 그 빛과의 만남을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해보다 빛나는 영광그 자체이신 하나님 자리 안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마태가 자신의 복음서인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와 두 번째 예고 사이에 이 이야기를 일부러 끼어 넣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영광바로 세상을 구원하는 참된 빛과의 만남입니다.

 

그런데 이런 빛의 역사는 신약성경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약성경 특히 출애굽기에서도 이와 같은 사건이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누가 그 주인공입니까?

모세입니다.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입니다.

 

모세가 시내산곧 시나이 반도에 있는 한 높은 산에 올라갔다가 율법을 받고 내려왔을 때입니다.

그 때 모세와 그리고 그의 형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은 아주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3429-30절입니다.

34: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34: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29절과 30절을 보면 모세의 변형을 각각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29, ‘얼굴 피부에 광채가

30,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 까요?

두려움입니다.

신기하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광경이라 엄청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궁여지책으로 자기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게 되지요.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신앙의 세계는 하늘로부터 오는 빛과 대면할 때 비로써 시작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빛과 함께 창조의 첫 날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하늘로부터 오는 빛과 대면할 때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신앙도 우리 구원도 비로써 시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대표적인 주인공이지요.

바울의 회심을 보면 아주 드라마틱합니다.

사도행전 92226장 이렇게 세 번에 걸쳐서 바울의 회심이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빛과 관련된 대표적인 말씀 하나씩만 살펴보겠습니다.

 

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22: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정오, 12)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22: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22: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26:13 왕이여 정오(12)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빛에 대한 설명이 점차 명확해짐)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26: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처럼 신앙의 출발, 새로운 변화의 출발은 하늘로부터 오는 빛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어야하는 것은 이 빛과 진실하게 만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곧 우리 주님과의 진실한 만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그냥 예수 안에서라는 말만 등장하지 않습니다.(살전4:14 육체의 죽음을 설명하는 곳을 제외하고)

놀랍지 않나요?

예수 안에서라는 말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예수 안에서라는 그 말 앞에 부활의 영광 곧 생명의 빛과 만난자의 신앙 고백이 붙습니다.

 

예를 들자면 가장 대표적인 표현인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나의 왕이라는 신앙고백이 반드시 덧붙습니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예수 안에서입니다.

키리오스’, 주님이라는 신앙고백이 덧붙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 과감하게 겉 사람의 이름 예수를 빼고 신앙의 고백으로만 부르기도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이 중에서 바울이 가장 사랑한 표현이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실제로 그의 편지를 보면 죽음을 앞두고 가장 늦게 쓴 편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표현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바울처럼 이런 신앙의 성숙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이런 고백을 드린 것일까요?

육신의 예수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진심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부활의 영광 바로 홀연히 하늘로부터 내려온 큰 빛, 해보다 더 밝은 빛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곧 하늘의 영광 그 영광의 빛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첫째,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죄의 제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가 우리 몸에 자리 잡을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다윗이 사용한 방법을 따라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방법일까요?

시편 11절입니다.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 세 가지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의 몸을 죄와 멀리하십시오.

만일입니다.

만일 죄의 자리에 거한 것을 알고도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못한다면 죄에 대해서 죽음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은혜의 빛이 비추어질 때 그 빛 가운데로 속히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또 하나는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마십시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본받지 말라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따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둠의 권세 앞에 미혹의 영 앞에 굴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대교리문답>에서 세례의 의미를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옛 아담이 죽고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아직도 아담의 옛 습관, 아담의 옛 방식 그리고 아담의 옛 존재와 작별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어둠의 권세, 미혹의 영 앞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무엇을 분별해야 할까요?

첫째는 참과 거짓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빛과 어두움이지요.

 

이 중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참과 거짓 중에서?

참입니다.

빛과 어두움 중에서?

빛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분별력을 상실하고 제 멋대로 살아간다면 결국에는 악의 노리갯감, 세상의 조롱거리 밖에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빛의 사람답게 제대로 분별하십시오.

 

말씀을 마칩니다.

돌 판이 아닌 우리 마음 판에 부활의 영광 곧 생명의 빛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찬송가 186장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어둠을 몰아내는 밝은 힘, 곧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1절 영화로신 주 성령 나의 마음 비추사

어둠몰아 내시고 밝게하여 주소서

 

두 번째는 죄를 멸하게 하는 성결의 힘 곧 성령의 권능입니다.

2절 전능하신 주 성령 성결하게 하시고

나의 맘을 살피사 죄를 멸해 주소서

 

성령의 내주하심(Incarnation)과 성령의 권능((Dynamis)입니다.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영원히 거할 뿐 만 아니라 날마다 빛 가운데 걸어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