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의 기도
요한삼서 1:11-12절 2017/03/03(금)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웨슬리 목사님이 회심을 경험한 이후 그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말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지저스 마이 로드, 예수, 나의 주’
이것이 웨슬리가 드렸던 증거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그의 삶과 신앙의 패턴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고린도후서 12장 9절입니다.(사탄이 준 육체의 가시를 위해 세 번 기도한 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바탕으로 두 가지의 변화를 가지게 됩니다.
첫째는 ‘나의 여러 약한 것들’
특히 내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그 육체의 연약함을 깊이 자각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나의 여러 연약함’
나의 그 여러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우리 주님이 받아주셨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능력은 그 약한 데서 완전하여 지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웨슬리 목사님은 주저앉았던 ‘낙심의 자리’를 박차고 다시 일어나 복음 증거의 날개 짓을 피게 되지요.
여기서부터 감리교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또 하나 변화된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이후 웨슬리 목사님은 성령의 내주 역사하심과 교제하심을 실제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입만 열면 나오는 증거의 기도가 ‘지저스 마이 로드, 예수, 나의 구주’ 입니다.
우리 한국감리교회에는 없지만 영국 감리교회에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동예식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가 나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마음을 거처로 삼아주시고,
종일토록 우리 안에 머무시어 잘못과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오늘 하루 우리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해주시고, 선한 일을 행하게 해주십시오.
우리를 도우시어 주님과 더불어 그리고 이웃들과 더불어 깊은 사랑의 친교 속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오늘 우리가 다른 이들이 주님께 바치는 기도의 응답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이 세상에 희망의 징표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저는 개인적으로 이 기도문이 참 좋습니다.
특히 ‘우리를 주님의 거처로 삼아 달라’는 기도와
‘오늘 우리가 다른 이들이 주님께 바치는 기도의 응답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이 세상에 희망의 징표로 살아가게 해 달라’는 이 기도의 내용이 참 좋습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하루 우리를 주님의 거처로 내 주셨는지요?
오늘 우리가 다른 이가 드린 기도의 응답이 되었는지요?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이 세상에 오늘 우리가 희망의 징표로 살아가고 있는지요?
어쩌면 무감각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감리교회 공동예식서에 나오는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를 밑바탕으로 해서 오늘 우리가 실천 할 수 있는 증거의 기도 세 가지를 제 나름대로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우리 주님처럼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해달라는 증거의 기도입니다.
둘째, 우리 주님처럼 선한 일을 행하게 해달라는 증거의 기도입니다.
세 번째, 주님과 깊은 사귐 속에 거하는 증거의 기도입니다.
좀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 주님처럼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해달라는 증거의 기도를 매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이 하신 첫 마디가 있습니다.
‘가상칠언’ 중에서 첫 번째 말씀이지요?
혹 기억하십니까?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그런데 그 십자가의 은혜 속에 살아간다고 하는 우리의 행실은 어떻습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요.
특히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고 살아가지요.
아마 내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입니다.
이 문제 어떻게 해결할까요?
찬송가 212장 1-3절에서 그 해답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1절 가사입니다.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 주사 잘 감당하게 하소서
둘째는 인자한 말
2절 가사입니다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하시키며
갈 길을 잃은 무리를 잘 인도하게 하소서
셋째는 인내입니다.
3절가사입니다.
구주의 귀한 인내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굳건한 믿음 주셔서 늘 승리하게 하소서
이처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겸손입니다.
둘째 인자한 말 그리고 셋째 인내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증거 기도는 ‘날마다 선을 행하게 해 달라고 기도’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칙에서 웨슬리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선한 일을 하라.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할 수 있는 한 모든 곳에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때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모든 선한 일을 하라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여기에 보면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와 이름만 같고 다른 사람이지요.
사도행전 19장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는 아데미 신전이 있는 에베소에서 아데미 신상모형을 만들어서 팔았던 장사꾼이었지만 요한삼서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는 바울처럼 이방인 전도자로 이방인 선교사로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요한삼서를 장로 가이오에게 전달한 인물이지요.
그 사람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1: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1:12 데메드리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고, 또 바로 그 진실한 삶으로 그러한 평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데메드리오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그의 진실한 삶이 이런 평을 얻게 하였을까요?
바로 그 앞 절 11절을 보시기바랍니다.
‘악한 것을 본받지 않고 선한 것을 본 받아 선을 행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의 ‘데메드리오’가 되십시오.
할 수 있는 한 모든 선한 일을 다 하십시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할 수 있는 한 모든 곳에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때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선을 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할 증거의 기도는 ‘주님과의 깊은 사귐’입니다.
야고보서 2장 32절을 보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2: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여러분들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함을 얻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벗’입니다.
가장 큰 축복이지요.
'친구'라는 단어를 한자로 풀어 보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붕우유신 할 '벗 붕朋'입니다.
벗 붕朋은 새의 날개를 뜻하는 '깃 우羽'자를 본 딴 글자입니다.
두 날개로 새가 높이 나는 것처럼 친구이신 하나님과 나는 분리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반면 벗 우友는 '손 手'에 '또 又'가 결합된 한자입니다.
손에 손이 마주하는 형상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친구란 두 손을 마주잡고 있는 이가 친구라는 것입니다.
낙담한 이의 손을 잡아주고, 힘겨워하는 이의 힘이 되어주는 이가 진짜 친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런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과의 사귐, 주님과의 친교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마칩니다.
첫째,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일을 멈추십시오.
둘째, 할 수 있는 한 모든 선한 일을 다 하십시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할 수 있는 한 모든 곳에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때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선을 행하여 악에서 이기십시오.
셋째, 주님과 깊이 사귀십시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벗’이라 칭호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질 것입니다.
'말씀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12:1-2 빛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0) | 2017.03.14 |
---|---|
이사야 5:1-7 왜 들포도 열매일까? (0) | 2017.03.07 |
마태복음 6:1-15 웨슬리의 산상설교 6 (0) | 2017.03.07 |
사사기 3:1-7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0) | 2017.02.22 |
마태복음 5:21-48 웨슬리의 산상설교 6-2 (0) | 2017.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