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

心貧者 2016. 12. 7. 13:18


베들레헴 에브라다

미가 5:22016/12/4(주일오후)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다림의 절기인 강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해마다 강림절이 다가오면 교회는 전통적으로 보라색 기다림 초 4개를 준비해 놓고 한 주가 지날 때마다 하나씩 촛불을 밝히게 됩니다.

지난주에 한 개 그리고 오늘 두 개, 다음 주에 세 개 그리고 강림절 마지막 주일에는 마지막 하나 남은 네 번째 촛불을 밝힘으로 주님의 오심, 성탄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렇게 교회가 기다림의 초를 밝힐 때 한 번에 4개를 다 밝히지 않고 한 주에 하나씩 더하여 밝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결코 빛은 어둠과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강림절이 그냥 막연해서는 안 됩니다.

또 첫 눈이나 산타할아버지 기다리듯 감성적인 기다림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아주 구체적으로 나타나야합니다. 그냥 넋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가슴에 품고 힘쓰고 애써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의 기다림입니다.

1: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여기에 보면 누가는 우리에게 오실 그리스도를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가?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겠지만 누가는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백성들, 그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시는 그리스도(메시아)입니다.

둘째, 우리의 발을 막힘이 없는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메시아)입니다.

은총의 그리스도그리고 평강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오심, 여기서는 초림이 아닌 재림을 가리킵니다.

다시 오심이지요.

다시 오심, 곧 재림을 기다리면서 인사를 나눌 때 마다 은총의 그리스도그리고 평강의 그리스도를 꼭 상기시킵니다.

은총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

평강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

그러니 믿음의 역사소망의 인내그리고 사랑의 수고를 더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핵심이었습니다.

 

좀 번거롭지만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전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후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후 1: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딤전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딤후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후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요이 1: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이처럼 초대교회 공동체를 지탱하는 신앙의 밑바탕은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그리스도그리고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이 번 강림절 기간 동안 우리가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그리스도그리고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고 그리고 결코 빛은 어둠과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진실과 꼭 마주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강림절을 지키는 의미이고 기다림의 초를 밝히는 이유입니다.


오늘은 주전 8세기에 활동했던 예언자 미가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미가라는 이름은 '미가야'의 축약형으로 '누가 야훼(여호와)와 같은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지자 미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던진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 가고 있는가?’

특히, 백성의 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서 있는가?

 

이 질문의 의도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이스라엘이 처한 역사적 상항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가가 활동하던 주전 8세기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나 남 왕국 유다나 혼돈의 시대,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특히, 북쪽에서 일어난 신흥강국 앗 시리아 제국에 의해 북 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남 왕국 유다 역시 앗 시리아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살길이 있다면 단 하나, 앗 시리아제국에 나라와 함께 조공을 바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유다 왕 히스기야가 이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앗 시리아의 총사령관이자 사르곤 2세의 아들 산헤립(센나게리브)이 대군을 이끌고 남 왕국 유다를 침공해서 46개의 성읍을 완전히 초토화시킵니다.

아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립니다.

심리적 마지노선이 라기스(Lachish)’인데, 천혜의 요새였던 예루살렘 남부, 라기스 마저 함락당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유다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 성 뿐이었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 왕이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통곡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요즈음 말로 구국기도이지요.

 

통곡의 구국기도,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그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그 기도에 즉각 응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한 천사가 나타나더니 앗 시리아 진영에 있는 군사와 지휘관 그리고 장군들까지 싹 다 죽여 버립니다.

역대하32장입니다.

32:20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32:21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하나님의 도움으로 남 왕국 유다가 드디어 한숨을 돌리게 됩니다.

야 이제 살았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선지자 미가야가 나타나더니 남 왕국 유다를 향한 아주 부정적인 예언 두 가지를 하게 됩니다.

 

첫째, 위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둘째, 지금이야 한 숨 돌리고 있지만 머지않아 곧 예루살렘이 초토화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유다 지도층들의 삶이 변하지 않는 한 이러한 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미가 예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도움으로 한 번은 구원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지도층들의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정한 뜻 곧 예루살렘의 심판은 더 이상 미룰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것이 미가 선지자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도움마저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마저 무색하게 하는 유다 지도층의 죄는 무엇일까요?

미가 39절 이하에 보면 그 죄악상이 아주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3:9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3: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3: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3: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첫째 9, 지도자들의 죄악입니다.

족속의 우두머리들, 재판관들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정치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세워 놓은 정의를 미워하고 하나님이 부여한 정직을 굽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법부의 핵심은 법이고 행정부의 핵심은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솔선수범해야할 지도자들이 이 법과 원칙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고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바로 불의한 자의 뇌물입니다.

뇌물이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정직 그리고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더 이상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종교지도자의 죄악입니다.

제사장들과 궁중예언자들의 죄악입니다.

311절 다시 읽습니다.

3: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3:11 이 도성의 지도자들은 뇌물을 받고서야 다스리며, 제사장들은 삯을 받고서야 율법을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서야 계시를 밝힌다. 그러면서도, 이런 자들은 하나같이 주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고 큰소리를 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제사장들은 삯을 받고서야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고.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서야 하나님의 계시를 밝혔다고 성경은 고발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 결 같이 이런 주장을 펼칩니다.

첫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도 큰 소리 뻥뻥칩니다.

둘째, 그러니 걱정 말라. 결코 우리에게는 재앙도 하나님의 심판도 멸망도 닥치지 않을 것이다는 주장입니다.

미가의 예언과는 정 반대의 주장이지요.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등진 너희들, 결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미가의 예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우리나라, 우리나라 만만세입니까?

그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한 가지 더, 과연 이것의 일부만의 일일까요?

일부 몰지각한 재판관과 정치인만의 일일까요?

일부 일탈한 제사장과 선지자만의 일일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일부가 아닌 전부라고, 총체적 타락입니다.

그 증거가 310절에 나옵니다.

3: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3:10 너희는 백성을 죽이고서, 그 위에 시온을 세우고, 죄악으로 터를 닦고서, 그 위에 예루살렘을 세웠다.

 

총체적 타락, 총체적 죄악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유다 왕국을 가만 둘 수가 없습니다.

다시 312절입니다.

3: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여기서 저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니 염려 붙들어 매라이렇게 호언장담하는 이들을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바로 너희로 말미암아( 때문에)’ 시온이 밭 갈듯 뒤엎어질 것이며, 예루살렘이 폐허더미가 되고, 성전이 서 있는 이 산은 수풀만이 무성한 언덕이 되고 말 것이라는

무서운 파멸의 예고입니다.

 

그런데요.

참으로 흥미롭고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빛을 하나님이 거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심판의 역설인데, 사랑에 맥 못 추시는 하나님의 속성이지요.

그래서 이 전과 전혀 다른 비전을 미가에게 보여 줍니다.

물론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예고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심판으로부터 돌이킬 길수 있는 구원의 길을 우리 하나님이 마련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말씀의 회복, 성전의 회복입니다.

말씀의 회복, 성전의 회복을 통해 다시 이스라엘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시겠다는 것입니다.

4:1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4: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또 하나는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내용인데, 메시아의 탄생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 그 메시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다시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새롭게 마련하시겠다는 것입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시야의 탄생지로 기록된 베들레헴입니다.

왜냐하면, 유대 성읍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성읍이 베들레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이 이곳 출신이지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동네가 베들레헴입니다.

그런데 그 베들레헴이 새 역사의 중심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곧 그리스도가 그곳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윗보다 큰 자가 그곳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탄절만 되면 단골로 인용되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에브라다’, 베들레헴에 사는 에브랏 사람을 가리키는 말합니다.

삼상 17:12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으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에브라다''에브랏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으로 야곱의 아내인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보잘 것 없는 성읍에서 누가 나옵니까?

그렇습니다.

다윗보다 큰 메시야,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공의가 무너진 세상에서 공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빛 하나 들고 어둠과 싸우는 것은 매우 무모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그런 무모함을 무릅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베들레헴을 주목하는 사람들입니다.

보잘 것 없는 곳에서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그리스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지요. 바보 같은 짓이지요.

하지만 믿음이란 기꺼이 그런 어리석음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오심을 진정으로 기다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일속에 뛰어드는 것을 말합니다. 바라기는 이 거룩한 소명에 기쁨으로 응답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