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로마서5:12-21 아담입니까 그리스도입니까?

心貧者 2016. 11. 30. 11:21


아담입니까 그리스도입니까?

로마서 5:12-212016/11/27(강림절)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한국인 어머니가 범법 행위로 인해 체포되어 가는 아들을 붙들고 경찰관들에게 이렇게 애원했다고 합니다.

다 내 잘못입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잡아가 주세요.’

그러자 미국경찰관들이 아들뿐만 아니라 그 어머니도 체포하여 함께 조사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들 유죄, 어머니 무죄입니다.

자식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는 한국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미국사회에서 벌어졌던 웃지 못 할 에피소드였습니다.

 

영적인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감의 능력 곧 우리라는 연대의식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민족은 영적인 감수성이 아주 풍부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입니다.

어머니 역시 내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입니다.

우리 형, 우리 누나, 우리 동생, 우리 집, 우리 교회, 우리 마을, 우리 나라.

이처럼 어느 민족보다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강한 민족이 우리 민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혹시 혼밥, 혼술이라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혼자 밥 먹는 것을 혼밥이라고 하고,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혼술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좀 더 발전된 말이 혼행이지요?

혼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혼자 여행 가는 것을 혼행이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 시대의 슬픈 자아상, 개인주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감수성마저 점점 둔감해져 가고 있다는 아픈 현실입니다.

영적 빈곤함이지요.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 기록된 주기도문을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영적 빈곤함을 치유할 수 유일한 길이 우리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그러면 보통 개인의 소원을 아뢰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도 제목이 곧 기도가 됩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온 가정이 건강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자식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하나님, 십일조를 가장 많이 드리는 축복을 누리게 해 주세요

보통 이런 기도의 제목들이 우리의 기도가 됩니다.

또 그렇게 기도하구요.

하지만 우리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속에는 소위 기도제목이라는 개인을 위한기도가 없습니다.

 

주기도문의 구조를 보면 여섯 가지의 청원(petition)이 나옵니다.

처음 셋은 하나님에 관한 청원으로 우리가 이것을 영어로 Thou(다우) petition(페티션)이라고 부릅니다.

1)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2)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청원 기도 셋은 우리들에 관한 것입니다.

영어로 We petition이라고 부릅니다.

4)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곧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5)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6)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여기서 다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 We petition이 기록된 마태복음 611-13절입니다. 찾아봅시다.

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기도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라는 인칭대명사입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그러고 보니 주기도문의 첫 시작인 69절 역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일까요?

기도의 출발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 속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왜 우리 주님은 를 넘어 우리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한 분이신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우리라는 연대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연대의식, 바로 형제애입니다.

인종이 어떻든 국적이 어떻든 종교가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장애아든 정상인이든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대할 수 있는 공감의 능력, 형제애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한 사람의 범죄는 그 사람만의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이지요.

따라서 이스라엘 전체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집트에서 종살이로 바벨론 포로 생활로 그리고 예루살렘 멸망 후 나그네 생활로 나타난 것입니다.

연대의식, 연대 책임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남의 배고픔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 때 그 배고픔을 내 배고픔으로 여겨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기도가 나올까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가 자연스럽게 나올 것입니다.

 

또 남이 지은 죄로 인해 세상이 어두워지고 망가졌다고 합시다.

그 때 그 죄를 나의 죄로 여겨보는 것입니다.

죄의 연대이지요.

그러면 어떤 기도가 나올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이 악의 유혹을 받아 악인의 길을 걷는 것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 때 그 시험을 그들만의 시험이 아닌 나의 시험으로 여겨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기도가 나올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라는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마치 앞에서 언급했던 어머니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대할 수 있는 공감의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인 나라와 권세와 그리고 영광이 우리 안에 영원히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바울은 우리 안에 들어 온 죄 곧 죄의 연대인 원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 곧 아담의 죄는 그 개인의 죄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좀 억지 같지만 바울에 따르면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그와 함께 우리도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원죄라고 부르는데 그래서 원죄를 가진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동의하십니까?

사실 이해하기 쉽지 않지요.

 

그래서 12절에 대한 설명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바울은 아담의 죄를 아담이라는 특정 한 사람만의 죄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아담의 죄를 인류 전체 곧 우리 모두의 죄로 접근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이라는 말 자체가 어떤 특정 한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말로 아담이란 철수’ ‘영희처럼 특정이름 아닙니다.

그냥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창세기 2-4장을 보면 정관사 를 붙어 하 아담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그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53절에서 철수’ ‘영희처럼 고유명사로 쓰이게 됩니다.

이처럼 바울은 아담의 죄를 인류 전체 곧 아담의 후손인 우리 모두의 죄로 연결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 우리가 있었고, 우리 안에 아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담의 죄는 그 사람만의 죄가 아닌 오늘 우리 모두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계속된 바울의 설명합니다.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쉽게 말하면 이런 말입니다.

아담의 죄 안에서 모든 인류가 출발했기 때문이 설사 아담과 같은 범죄를 우리가 짓지 않았다 할지라도 죄의 열매인 사망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단 번에 해결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14, 장차 아담과 같은 모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4절 끝에 보시면 오실 자의 모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모형’, 헬라어로 '투포스'(tupos)라고 합니다.

이것을 다시 영어로 번역하면 '패턴'이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담과 예수님의 역할이 서로 닮았다는 뜻입니다.

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은 원죄처럼 예수 그리스도 역시 같은 패턴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은혜와 또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입니다.

5:15 그러나 이 은사(은혜의 선물)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 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인류의 조상 아담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죄입니다.

원죄, 곧 죄의 유산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에게 원죄가 미치게 되었고 이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은혜의 선물은 그것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임하게 되는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영생에 이르는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우리 안에서 왕 노릇하였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우리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의입니다.

의롭다 하심, 칭의를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 사람 곧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지만 이제는 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가 복음이 되는 것이고 그분의 오심 그 자체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긋지긋한 원죄, 그 죄의 뿌리(죄의 유산}이 비로써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생명의 능력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은 교회력의 시작인 강림절 첫 주입니다.

강림절,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인데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옛 사람 아담 안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새 사람 그리스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을 애타게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내 안에 주로 모셔야합니다.

영접이지요.

‘en Xristo’ 그리스도 안에(In Christ)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의 힘이요 무기입니다

 

부탁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en Xristo’ 그리스도 안에(In Christ) 머무르십시오.

강림절 기간 동안 아담에게서 예수에게로 여러분의 주소를 옮기십시오.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을 정리하기 위해 메시야가 태어난다는 베들레헴으로 그 주소를 옮긴 것처럼 여러분도 강림절 순례의 여정을 동해 아담에게서 예수에게로 여러분의 주소를 옮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