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헛되지 않습니다
전도서 5:18-20 2017/10/23(주일오후)
5:18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5: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5:20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이 10월 넷째주일입니다.
절기상 가을의 끝을 알리는 상강霜降입니다.
서리 상霜자를 써서 첫 서리가 내린다는 뜻입니다.
이제 10월도 한 주간 남겨두고 있습니다.
10월 끝자락에 있을 가을 여행을 춘천으로 다녀오면 찬바람이 제법 익숙한 계절이 곧 다가 올 것입니다.
지난 한주 점점 짙게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나뭇잎이 붉고 노랗게 물드는 것처럼 나는 언제쯤 하나님의 성품으로 물들까?’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그러다가 베드로후서를 집어 들었습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새,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1: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여기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얻기 위해 ‘7단계에 이르는 신앙의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고 베드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에 덕을 세우는 단계입니다.
자기만 고집하고 자기만 인정하는 이기적인 믿음이 아니라 어느 누가 봐도 아름다운, 덕이 되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에 덕을 세우는 이타적이면서 아름다운 믿음이지요.
둘째, 그 아름다운 믿음에 지식을 더하는 단계입니다.
지식, 무엇에 대한 지식일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겠지요.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야 합니다.
셋째, 지식에 절제입니다.
절제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 공부를 소홀히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만큼 그리고 깨달아 아는 만큼 그대로 실천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식에 절제를 더하는 것입니다.
넷째, 절제에 인내를 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실천 할수록 느끼는 감정이 있습니다.
어떤 감정인지 아십니까?
기쁨과 감사가 아니라 손해입니다.
늘 손해 보는 것 같고 나만 어리석은 짓 하는 것 같지요.
그래서 절제에 인내를 더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가지 소망을 품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단계가 가장 어려운 신앙의 고비이지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여기서 신앙의 성장을 멈추기도 합니다.
‘나만 손해 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과 타협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지요.
그래서 중요한 것이 다섯 번째 단계입니다.
인내에 경건의 행실을 더하는 것입니다.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①생명과 ②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여기에 보면 구원 받은 우리에게 증표로 하나님이 두 가지의 선물을 주십니다.
①생명과 ②경건에 속한 모든 것, 거룩한 행실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증거 된 이 두 가지의 능력을 소멸하지 않고 좋은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인내에 기도생활을 더하고 말씀생활을 더하고 구제생활을 더하고 금식생활을 더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건의 행실들을 더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 하나님의 성품으로 짙게 물들어 가는 것입니다.
현재 제가 가장 깊이 그리고 가장 많이 묵상하는 단계입니다.
여섯 번째, 경건의 행실에 형제 우애를 더하는 단계입니다.
형제사랑이지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높이고 먼저 대접할 수 있는 신앙의 단계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 주님이 주신 실험실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신앙의 단계가 바로 여섯 번제 형제 사랑입니다.
왜냐?
원수는 교회 밖이 아니라 항상 교회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가 형제 우애에 원수 사랑을 더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웨슬리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라고 말했는데 사랑의 완성인 십자가의 사랑, ‘아가페’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완전히 변화된 단계이지요.
사실 여기까지 나아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래서 종종 신앙의 회의를 느끼기도 합니다.
‘왜 알면서도 변화되지 않을까?’
‘왜 갈망하면서도 성숙하려 하지 않을까?’
‘왜 참과 거짓을 분별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할까?’
그러는 중에 다시 잡은 책이 전도서입니다.
전도서
솔로몬 왕이 쓴 지혜서로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음먹고 작정해서 읽으면 30-40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특히, 이맘때 읽으면 더 깊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인데 오늘 밤 잠들기 전에 꼭 묵상해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이왕이면 새 번역 성경이나 공동번역 성경으로 찾아 읽으시면 더 큰 공감과 더 깊은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전도서 1장 1-2절입니다.
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것은 인생에 실패를 경험한 사람의 넋두리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을 다 이루고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누려 본 사람이 하는 고백입니다.
계속해서 2장입니다.
새 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2:4 나는 여러 가지 큰 일을 성취하였다. 궁전도 지어 보고, 여러 곳에 포도원도 만들어 보았다.
2:5 나는 정원과 과수원을 만들고, 거기에 온갖 과일나무도 심어 보았다.
2:6 나무들이 자라나는 숲에 물을 대려고 여러 곳에 저수지도 만들어 보았다.
2:7 남녀 종들을 사들이기도 하고, 집에서 씨종들을 태어나게도 하였다. 나는 또한, 지금까지 예루살렘에 살던 어느 누구도 일찍이 그렇게 가져 본 적이 없을 만큼 많은 소와 양 같은 가축 떼를 가져 보았다.
2:8 은과 금, 임금들이 가지고 있던 여러 나라의 보물도 모아 보았으며, 남녀 가수들도 거느려 보았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처첩도 많이 거느려 보았다.
2:9 드디어 나는 일찍이 예루살렘에 살던 어느 누구보다도 더 큰 세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지혜가 늘 내 곁에서 나를 깨우쳐 주었다.
2:10 원하던 것을 나는 다 얻었다. 누리고 싶은 낙은 무엇이든 삼가지 않았다. 나는 하는 일마다 다 자랑스러웠다. 이것은 내가 수고하여 얻은 나의 몫인 셈이었다.
이래서 솔로몬을 인류 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왕이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솔로몬 왕의 첫 마디가 잠언 1장 2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입니다.
그렇다면 솔로몬 왕은 과연 어떤 삶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일까요?
먼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살펴보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릇된 두 가지의 인생관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결국 헛되다는 것을 깨달으면 크게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하나는 허무주의입니다.
허무, 말 그대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아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여기에 속한 대표적인 사람인데 요점은 간단합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길이라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건강한 인생관으로 보이십니까?
아니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지만 상당수가 여기에 동의하고 살아갑니다.
또 하나의 그릇된 인생관은 쾌락주의(the epicurean)입니다.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며는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시구절시구 차차차(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
이 노래가 언제부터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백성들 사이에서 불려 졌는지 아십니까?
1954년입니다.
한국전쟁이후부터이지요.
형제가 형제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총과 칼을 겨누었으니 무슨 인생의 의미와 낙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니 마음껏 즐기자는 것입니다.
기왕에 한 번 살다 가는 것 신나게 놀아보자는 것입니다.
꿈을 잃은 백성의 그릇된 선택이며 역사의 비극이지요.
이처럼 ‘전도서’를 잘못 읽다 보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허무주의나 쾌락주의로 몰아 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전도서를 남긴 이유는 그런 뜻과 목적이 아닙니다.
허무주의도 아니고 쾌락주의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시작되는
전도서를 남긴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2장입니다.
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12: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인생.
그 인생의 끝은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창조주를 기억하는 사람은 결코 그 인생이 헛될 수 없습니다.
아니 헛되게 살아 갈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으신 이 곧 창조주의 목적과 비전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3에서 ‘생명의 능력’ 그리고 ‘경건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마지막에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그리고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그 앞에 겸손히 고개 숙이라는 것입니다.
헛됨이 없는 하나님 앞에 다시 돌아가라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는 삶입니다.
모든 것이 헛된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돌아 온 사람 혹은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모든 것이 헛된 것을 깨달은 사람의 공동적인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자족입니다.
주어진 제 몫에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5:18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5: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5:20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이 말씀의 뜻은 이런 것입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처럼 짧고 덧없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선물 하나를 주셨습니다.
크던 작든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매일 주어진 것에서 의미와 보람을 새기고 기쁨으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이 정한 때에 따라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저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이 말씀이 참 좋습니다.
왜냐하면 울 수밖에 없는 때에도 아름다움이 깃들 수 있고, 병에 시달릴 때에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고, 실패의 쓰라림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머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온전하게 내 안에서 밝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이 말씀이 저는 참 좋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하며 헛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성품으로 물들 수 있을까?
솔로몬은 해답입니다.
3장 12절입니다.
3: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착한 일을 하고서 마음이 불쾌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착한 일을 하면서 후회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배고파하는 사람에게 밥 한 끼를 나누어 먹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모금을 대접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인정에 굶주린 사람에게 따뜻한 정을 나누어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남이 좋은 일을 하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원래의 성품,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바라기는 모든 것이 물들어 가는 이 시절에 하나님의 성품으로 물들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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