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힘이 권력입니다
사무엘상 15:17-23 2016/7/17(주일오후)
15: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5: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5: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15: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잊을 만하면 터지는 비슷한 유형의 반복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소위 힘 있는 자들이 행하는 ‘갑질’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약자에게 모욕이나 피해를 주는 행위를 ‘갑질’이라고 하는데 이일이 좀처럼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교육 행정관의 ‘갑질’이 연일 기삿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힘을 가진 자의 ‘갑질’은 그 끝이 없습니다.
권력.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힘을 우리가 권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권력이라는 말 앞에 ‘공변될 공’을 붙여 ‘공권력’이라고도 부릅니다.
권력.
우리에게는 아주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 단어이지만 공인된 힘으로서의 권력은 참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 공인된 힘을 실어 주는 이유는 그 공인된 힘으로 자신과 이웃 그리고 자신과 공동체를 유익하게 사용하라는 뜻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주는 이유는 그 힘으로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사장에게 힘을 몰아주는 이유는 그 힘으로 회사를 발전시켜서 모든 직원과 그 가족이 행복하게 살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에게 힘을 실어 주는 이유 역시 식구들을 잘 돌보아 행복하고 즐거운 가정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공인된 힘, 권력의 존재 이유입니다.
권력의 역사, 의외로 오래되었습니다.
권력의 역사,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리고 누가 사람에게 공인된 힘, 권력을 처음 부여했을까요?
창세기 1장을 보시기바랍니다.
여기에 보시면 하나님이 창조의 마지막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난 후 인간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권력의 역사, 언제부터 시작됩니까?
인간을 지으신 이후부터입니다.
그리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그 공인된 힘, 권력을 사람에게 처음으로 부여한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1장 28절 ‘하나님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권력과 관련된 두 단어의 바른 이해와 바른 사용입니다.
권력과 관련된 두 단어, 무엇과 무엇이 있습니까?
‘정복하라’ 그리고 ‘다스려라’입니다.
‘정복하라, 다스리라’
자칫 잘못 이해하면 마치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마구잡이로 훼손해도 되는 것처럼
보여 질 수도 있는 말들입니다.
실제로 잘 못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착취해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창조 질서에 따라 ‘잘 돌보고 잘 가꾸라’는 말입니다.
‘CARE’, 돌봄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처음 사람 아담에게 준 공적인 힘, 권력입니다.
문제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 곧 죄인들이겠지요.
그들이 이 힘을 오용하고 그리고 남용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그 첫 번째 사례가 비극적인 이야기만 아담의 큰 아들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이야기입니다.
큰 자라는 공적인 권력의 지위를 이용해서 작은 자를 죽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 사무엘상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세 명의 주인공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 사무엘, 그리고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 그리고 다윗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럿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사무엘을 키운 제사장 엘리,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사무엘의 두 아들 그리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 등이 있습니다.
좀 생소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사무엘상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권력의 이동’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 등장하는 권력자는 사무엘입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책의 이름을 기록할 만큼 하나님이 부여한 사무엘의 공적인 힘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400년 동안 이어 온 사사 시대를 마감하고 왕정 시대를 열어가는 가교 역할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마치 오늘날의 비상대책 위원장처럼 그 힘이 막강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부여 한 공인된 힘, 권력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권력자는 사울입니다.
본격적인 왕정시대가 열리자 권력의 중심이 사무엘에게서 사울에게로 이동하게 됩니다.
실제로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서 40년간 통치하게 됩니다.
40년, 사실 대단한 통치 기간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사울의 왕조가 다른 나라처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왕위를 이어갈 만한 재목이 요나단에게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권력자는 다윗입니다.
삼십 세에 왕 위에 오른 다윗은 이스라엘의 첫 수도였던 헤브론에서 칠년 육 개월 그리고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삼심삼년 그렇게 해서 사울처럼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됩니다.
권력.
참 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전의 양면처럼 권력만큼 명암이 확실한 것도 없습니다.
좋은 권력 아니면 나쁜 권력, 그 중간이 없습니다.
영국의 사상가 액튼 경(Lord Acton)이 한 말입니다.
‘권력은 타락하는 속성이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한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말입니다.
‘한 사람의 성품 그 사람의 인격을 알아보려면 그에게 권력을 주어 보라’
그러면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인인지 아니면 악인인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그에게 공적인 힘, 권력을 주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그 실제적인 사례가 여러 곳에서 등장합니다.
첫 번째 사례를 꼽으라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누하스입니다.
‘제사장 홉니와 비누하스’
그들은 하나님이 공적으로 부여한 제사장의 권력을 사사로이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합니다.
2: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2: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2:14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2:15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2:16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방금 읽은 것처럼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그들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의 못된 행실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그리고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7장 31절 이하에 따르면 제물로 잡은 고기를 나눌 때 제사장에게 돌아갈 몫이 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의 두 아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인데, 회막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강제로 범하는 일까지 서슴없이 저지르게 됩니다.
2: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이러한 일들이 그 시대에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제사장들이 지닌 막강한 권력 때문이었습니다.
시 이스라엘은 왕정국가가 아닌 신정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신정국가의 중심에 서 있는 제사장들이 지닌 권력은 아주 막강했습니다.
그런데 그 막강한 권력을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위엄에 걸 맞는 제사를 드리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특히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사로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라 ‘사사로이’ 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무시했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비참을 최후를 안겨주게 됩니다.
사무엘상 4장입니다.
17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①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②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③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④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비극이지요.
권력의 타락,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에게서도 역시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사무엘.
우리나라 역사로 비유하자면 조선을 기획하고 건국한 일등공신 정도전과 같은 인물입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에게 바쳐진 사람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애쓴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도 역시 나이가 들자 분별력을 잃고 ‘이스라엘의 사사’라는 하나님의 권력을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가문을 지키는데 사사로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8장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늙은 사무엘에게 찾아와서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백성들이 그렇게 요청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숨어 있었습니다.
8: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8: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까?
그렇습니다.
8: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사사’는 세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잘 가르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시대가 닥치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때마다 하나님이 친히 세워 힘을 실어 준 직책이 사사였기 때문에 세습할 수 있는 직책이 아닙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늙은 사무엘이 400년 역사 속에서 전례 없는 ‘사사직 세습’을 시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력의 오용과 남용이지요.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기를 든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왕을 가지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찾아가서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8장 3-6절입니다.
8: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8: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8: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8: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6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그들의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였다고 합니까?
‘기뻐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요청은 자신에 대한 불신임이었고, 사사직 세습역시 좌절되는 일이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인물은 사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력을 가장 심하게 타락시킨 왕입니다.
사실 그는 태생부터 그리고 성격 자체가 권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는 왕이 되기를 꺼려했습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나서도 한 동안 나서지 못할 만큼 권력의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암몬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자 떠밀리듯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 후 사울은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절대군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사울이 권력의 맛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신탁을 전합니다.
‘아무 것도 남기지 말도 모두 진멸 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 명령을 따르지 않고 양 떼와 소 떼 가운데서 기름지고 좋은 것들은 남겨 둡니다.
사사로운 욕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 사실을 알고 사울을 질책합니다.
하지만 사울은 뻔뻔하게 핑계를 됩니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물로 남겨 둔 것이니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아주 유명한 말을 남긴 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여기에 보시면 사무엘이 하나님이 부여한 공인된 힘, 그 권력으로 반드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사울 왕에게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맡긴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고 사랑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결코 전리품을 취해 사사로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그 길로 가지 않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라는 그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울은 스스로 노력해서 왕이 된 사람이 아닙니다.
왕으로서의 권력은 하나님이 친히 그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권력을 맡겨 주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뜻에 철저히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권력 맛에 취해 그 사실을 잊고 말았습니다.
결국 사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맛에 취해 하나님을 망각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게 된 것입니다.
권력의 맛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권력’
어쩌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힘도 우리에게는 주어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크든 작든 우리 모두는 힘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크든 작든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힘을 키우기 위해 끈임 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권력의 속성을 바로 이해하고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권력의 속성, 오늘 말씀을 통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모든 권력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따라서 위로부터 오는 모든 권세에 우리가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권력을 위탁받은 우리는 권력을 주신 분 곧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특히 공의로운 재판을 할 때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할 때는 더더욱 그 뜻에 맞게 온전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섬기는 힘이 권력이다.
따라서 모든 권력은 이웃 특히 낮은 자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모든 권력은 싸워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은총으로 받는 것인 만큼 때가 되면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권력에는 유통기한이 있으니 인위적으로 세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크던 작던 간에 지금 주어진 힘이 있다면, 그 힘으로 낮은 곳, 어두운 곳 그리고 냄새나는 곳을 향해 내려가 그 힘을 주신 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섬길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힘.
크던 작던 간에 그 힘으로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의 이웃 그리고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저희의 병든 마음을 고쳐 주셔서 변화를 받아
주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시며
순종하게 하셔서 저희에게 주신 모든 힘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에 사용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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