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에베소서 1:10-14 기도에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心貧者 2016. 7. 12. 11:06


기도에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1:10-142016/7/10(주일오후)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사람이 지닌 인격의 깊이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 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기 자기만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이라면 남들에게 자랑할 만 한 부를 가졌다 할지라도 칭찬과 존경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반면 남을 위해 적은 돈이라도 기쁨으로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비록 가난하고 못 배웠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돈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격의 깊이와 인격의 품격을 잠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성의 깊이,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의 영성.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깊이를 알아보려면 무엇을 보면 엿볼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기도생활이라고 여겨집니다.

얼마나 충분하게 기도하는지그리고 그 기도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살펴보면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영성의 깊이, 신앙의 품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얼마나 기도하시는지요?

그리고 그 기도의 시간이 충분하다고 여겨지시는지요?

기도의 시간에 대한 예수님의 부탁을 한 번 살펴봅시다.

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시험에 들지 않을 만큼의 충분한 기도의 시간입니다.

어떻습니까?

시험에 들지 않을 만큼’, 충분한 기도의 시간을 지금 갖고 계시는지요?

아니면 이미 시험에 들어 기도의 시간이 잠들어 있는지요?

어떻습니까?

 

성서에서 말하는 기도의 시간이란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시험에 들어 깊이 잠들어 있습니까?

아니면 깨어 있습니까?

스스로 점검해 보시지요?

 

같은 맥락에서 바울 사도도 교회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간곡하게 부탁한 말씀이 있습니다.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늘, 항상, 끊임없이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시험에 들지 않을 만큼충분한 기도의 시간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충분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유효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특히, 시간을 초 단위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충분한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고 했을 때, 그 기준을 정하는 것도 매우 모호합니다.

어떤 분은 10분도 충분하다고 여길 것이고 또 어떤 분은 10시간은 기도해야 충분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하지만 충분한 기도의 시간을 스스로 서원하고 그 기도의 시간을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으로 삼는 것은 매우 노력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는 충분한 기도의 시간을 서원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기도의 생활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험에 들지 않을 만큼 충분한 기도의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시고 또 노력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두 번째로 기도의 시간을 충분하게 할애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의 내용입니다.

기도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 입니다.

기도를 오래 그리고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도 안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기도 속에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기도제목입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주님께서 충분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산상설교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인데 마태복음 6장입니다.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여기에 보시면 우리의 기도 속에 담지 말아야할 것과 반대로 반드시 담아야할 것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의 기도 속에 담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31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세상의 염려입니다.

 

세상의 염려, 이것을 우리의 기도 속에 담지 말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 안에 들어 온 하나님의 말씀, 그 생명의 말씀이 결실을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18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4: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세상의 염려, 그 염려가 지나치면 그 염려가 가시떨기가 되어서 말씀의 결실을 맺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누가복음 21장입니다.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구원하시는 주님의 때, 주님의 날, 은혜의 때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세상의 염려 때문에 주님과의 약속인 예배 생활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의 염려는 무서운 것입니다.

예배를 막는 가시떨기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의 기도 속에 반드시 담겨져 있어야할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입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주님이 가르친 기도, 주기도문입니다.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래야 우리 안에 들어 온 하나님의 말씀, 그 생명의 말씀이 3060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날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때, 그 은혜의 날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기도 속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세상의 염려를 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만 담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까?

우리가 믿는 복음 안에 그리고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 공동체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 입니다.

복음의 실체요 교회의 몸이신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개인의 행복과 개인 욕망 곧 자기 자신인가? 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믿는 복음 안에 그리고 우리가 속한 교회 안에 정말 그리스도만 담겨져 있는지요?

아니면 옛 사람의 모습들 곧 개인의 감정, 개인의 뜻, 개인의 욕망이 담겨져 있는지요?

 

에베소교회는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고린도교회처럼 초대교회를 대표하는 교회 중에 하나로 성장하게 됩니다.

에베소교회가 세워진 배경은 이렇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나바와 갈라진 후 단독으로 떠난 제 2차 선교여행에서 목적지로 삼은 곳이 아시아주의 수도 에베소였습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선교 벨트에 있어서 에베소는 빼 놓을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이 그 길을 막습니다.(16:6)

그리고 드로아(오늘날 트로이)에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이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에덴 그리고 고린도에 이르기까지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됩니다.

2차 전도여행이 끝날 무렵 돌아오는 길에 잠깐 에베소에 머물기는 하지만 곧 바로 안디옥교회로 돌아오게 됩니다.

안디옥으로 돌아온 바울의 일생은 얼마 있다가 다시 3차 전도여행을 계획하고 떠나게 됩니다.

그 때 바울이 아시아 주의 수도인 에베소를 전격적으로 방문하게 됩니다.(19)

그리고 그곳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약 2년 동안 머물면서 에베소교회를 성령 안에서 든든하게 세우게 됩니다.(19:1-20:1)

그만큼 사도 바울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전략적으로 공을 들인 교회가 아시아 주에 있는 에베소교회입니다.

 

문제는 이 교회를 구성하는 이방인 성도들과 유대인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일치된 신앙 그리고 공동체의 통일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옛날처럼 개인주의적인 삶과 육체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에베소출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조상대대로 섬겼던 아데미 여신에 대한 풍습이 몸에 베여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복음에 대한, 믿음의 대한, 성령의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당시 에베소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공동체성의 회복입니다.

에베소출신 이방인 성도들과 디아스포라 유대인 성도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특히 성서를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이방인 성도들을 위해서 구원에 대한 올바른 설명과 이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문제를 안고 쓴 편지가 사도 바울의 에베소서입니다.

먼저 에베소출신 이방인성도이나 디아스포라 유대인성도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조직, 새로운 모임,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입니다.

 

바울이 내린 교회의 정의입니다.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이해가 되지요?

문제는 그 다음이지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읽기는 읽었지만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요?

그 이유는 우리가 만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만물이란?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로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는 모든 것(all things, everything)을 말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자신의 형상으로 지은 사람이 만물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23절 말씀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 첫째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이다.

둘째,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사람과 사람의 사귐뿐만 아니라 사람과 피조세계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과의 사귐 곧 교제가 충만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만물 곧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맺게 하는 곳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이해가 되시는 지요?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관계의 맺음 곧 사귐과 친교에 있어야합니다.

교회라는 그릇 안에 성도와 성도 사이의 사귐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 더 나아가 자연과의 사귐이 담겨져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사람들은 사귐 즉 코이노니아공동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코이노니아공동체로서의 교회, 그 교회 안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상속자입니다.

우리 성경은 기업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풀어 설명하면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구습을 쫒는 옛 사람의 상속자가 아닌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관심사를 품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입니다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여기서 사용된 기업이라는 말은 회사(컴퍼니)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받을 유업이 있는 상속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새 번역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11절 앞부분만 다시 읽어드립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우리가 얻게 될 상속자의 유업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새 하늘과 새 땅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의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이 부분을 사도 바울이 에베소 출신 이방인 성도들에게 특히 강조하는데 하나님과 직접 사귈 수 있는 자녀의 권세를 유업(기업)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비록 유대인처럼 할례의 증표가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상속권을 직접 넘겨받았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천사보다 귀한 그리고 천사보다 가까운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개신교는 천주교회와 달리 천사숭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서 117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따라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관심사인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유업으로 받은 새 사람이 있을 때 그곳이 바로 참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 거듭남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12절입니다.

1: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

사람의 손으로 세워지고 그리고 사람에 의한 모임으로 보이지만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있는 곳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믿어지십니까?

그러니 혈통, 이방인이냐 유대인이냐 이런 것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교회 안에 있는가? 입니다.

누구에 뜻대로 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대로 곧 하나님의 뜻, 섭리(에짜)입니다.

11절 표현을 빌린다면 뜻의 결정으로’ ‘계획을 따라그리고 예정을 입어빈틈없이 충만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바울은 구원에 이르는 길을 3단계로 설명합니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3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설명한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이 특히 에베소 교인들에게 강조한 것이 성령의 인치심입니다.

계속해서 14절입니다.

1: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번역이 좀 어려워서 새 번역의 도움을 받으면 이렇습니다.

1:14 이 성령은,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역사를 사변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다시 말해 이해가 된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논쟁거리로 삼지 말고,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성령의 인치심 곧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어려운 말씀 잘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권면에 따르면 두 가지가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두 번째는 13, ‘약속하신 성령의 인치심곧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기도가 충분한 기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 속에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원하심을 담고 그리고 성령의 강림, 성령의 충만함이 여러분의 기도 속에 가득 담겨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