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길
열왕기상 2:1-4절 2016/6/26(주일오후)
2: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2: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오늘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살피고자 하는 본문은 열왕기상입니다.
열왕기상과 열왕기하, 우리 성경은 이렇게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한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로 번역 될 때 70여명의 유대인들이 상권과 하권으로 나누었습니다.
그 전통을 우리가 그대로 이어 받아 지금처럼 상권과 하권으로 나누어진 성경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열왕기’, 여기서 사용된 한자 ‘列’은 ‘열거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풀어 설명하면 ‘열왕’ 곧 여러 왕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열왕기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조에 해당하는 왕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열왕기 상하 전체, 몇 장으로 되어 있습니까?
47장입니다.
상권이 22장 하권이 25장 그래서 47장입니다.
이 중에서 열왕기서의 저자는 솔로몬 왕에게 무려 11장을 할애하고, 나머지 36장은 39명의 왕에 대해 할애하고 있습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솔로몬을 제외하고 약 4백년 정도의 역사를 36장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유다 왕 역대지략’(the Book of the Annals of the Kings of Judah)과 그리고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the Book of the Annals of the Kings of Israel)이라는 방대한 역사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기초로 해서 열왕기서의 저자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치적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평가를 내린 책이 열왕기상하입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평가서가 되는 셈입니다.
왕들의 평가 기준, 무엇으로 잡아야할까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우선 남 왕국 유다의 왕들을 평가할 때는 언제나 다윗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솔로몬의 손자 아비얌(아비야) 왕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15:3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반면, 아비얌(야)의 아들 아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15: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이해가 되십니까?
이처럼 열왕기서의 저자는 남 왕국 유다의 왕들의 이름을 차례로 거론 하면서 평가를 하는데, 항상 그 평가의 기준은 늘 다윗입니다.
후대의 왕들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면 그 이유는 다윗 왕에게서 이어져온 마음을 계승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교만으로 치달을 수 있는 왕권을 사용하지 않고 늘 하나님만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에게 맡겨진 강력한 절대 권력을 사사로이 사용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이루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위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애민 정신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남 유다 왕들 모두가 다윗의 마음을 따르지 못합니다. 꾀 많은 왕들이 다윗의 마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탐욕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다윗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후대 왕들이 다윗의 길을 따라가지 않은 것으로 인해 남 유다는 역사 속에서 살아지게 됩니다.
반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을 평가할 때는 항상 이 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구입니까?
북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세 번째 임금이 바아사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입니다.
15:34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그 외에 다른 북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예를 또 찾아보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의 임금 18명 모두가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이처럼 북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달리 자기 조상 다윗처럼 의롭고 그리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던 왕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된 북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여로보암’, 원래는 솔로몬이 아끼는 신하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예언자 아히야로부터 신탁을 받게 됩니다.
11:30 아히야가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11:31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11:32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11:33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신전)과 모압의 신 그모스(신전)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신저)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
그러니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가만 둘리 없지요.
그래서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기까지 이집트에서 망명 생활을 하게 됩니다.
솔로몬 왕이 죽자 여로보암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그 때 통일왕국 이스라엘은 큰 숙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으로부터 정권을 이어 받은 왕이 그의 아들 르호보암인데 아버지 솔로몬 왕처럼 건축 공사를 계속 이어가서 백성들에게 고통의 짐을 안겨 줄 것인지 아니면 백성들의 고통, 그 어려움을 헤아려 건축 공사를 중단하거나 축소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숙제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자신의 왕권을 위해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백성을 버리고 공포정치를 선택하게 됩니다.
12: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2: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결국 북쪽의 열 지파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북쪽 열 지파가 따로 독립을 해서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 사람이 바로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함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가 남쪽과 북쪽으로 정권이 나뉜 것처럼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 사이의 분열 왕국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실 여기까지 따지면 여로보함이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열왕기서의 저자는 북 이스라엘의 시조인 여로보함을 악한 왕 곧 악인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 숭배 때문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된 여로보암은 자기 백성들이 남 왕국의 수도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자주 오가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절기 뿐 만 아니라 수시로 오고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인해 백성들의 마음이 빼앗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여로보암이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됩니다.
금송아지 상 두 개를 만들어 놓고 하나는 야곱이 단을 쌓았던 벧엘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북쪽 국경 근처에 있던 단에 두었습니다.
또한 자기 마음대로 절기를 만들어 놓았고,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해서 제사를 지내게 만든 것입니다.
정말 하지 말아야할 일을 여로보함이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함이 이렇게 한 이유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백성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에 대한 백성의 믿음을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이용한 것입니다.
문제는 무지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일로 인해 우상 숭배의 길을 양심의 가책 없이 걷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요?
편하니까?
비용을 들어가면서 시간을 들어가면서 힘을 들어가면서 예루살렘까지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한 지도자의 그릇된 욕심과 판단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우상의 백성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여로보함의 죄와 악이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 다윗의 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길', 어떤 것을 다윗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준 유언의 일부입니다.
먼저 다윗은 자신의 인생이 마지막에 이른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유언을 시작합니다.
2: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라는 이 다윗을 말을 좀 깊이 있게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그래야 자기 삶의 길을 늘 점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서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악인의 길인지 아니면 의인의 길인지, 이것을 늘 점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믿음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아들 솔로몬을 향한 권면 속에서 '다윗의 길'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2절 후반부입니다.
2: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첫째, 힘써 대장부가 되라. 하나님과의 의리(신의)를 저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3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모든 일에 있어서 형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다윗의 길'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라 공의를 위해 하나님과 그리고 백성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의 마음가짐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솔로몬에게 먼저 요구하는 것이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단단히 다잡으라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의한 세상 속에서 악인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과 그리고 백성을 위해 공의를 행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자신의 탐욕이겠지요.
왜 다윗이라고 탐욕이 없겠습니까?
사울의 핍박과 압제 속에서 어떻게 부여잡은 권력인데, 왜 자신이 탐욕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피해 보상이라도 받고 싶겠지요.
하지만 다윗은 죄의 그릇에 자신의 손을 담그지 않습니다.
또 하나 다윗의 길을 굽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압력 곧 세상의 비아냥입니다.
결코 흑암으로 가득한 세상은 빛 한줌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빛 한 줌으로 인해 어둠과 무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흑암의 권세를 잡은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기준삼아 바르게 살려는 사람에게 비아냥거리는 것입니다.
‘네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네가 선한 행실로 세상을 바꾼다고 한 번 해 볼 수 있으면 해 봐?’
하지만 다윗은 그러한 세상의 조롱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들 솔로몬에게 당부하는 것입니다.
다시 3절입니다.
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말씀을 마칩니다.
역사의 역설인가요 아니면 역사의 교훈인가요?
공교롭게도 아들 솔로몬이 이 다윗의 길에서 훗날 벗어나게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한 절로 이렇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11: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데일 카아네기(Dale Carnegie)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나 역경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오직 위대한 사람만이 번영을 견딘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은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겨 형통함 곧 번영을 얻었지만 안타까운 것은 솔로몬이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번영과 축복이 타락의 종자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경으로 인해 깊이 감추어졌던 욕망이 형통함 곧 번영과 함께 살아난 것입니다.
결국 이 일로 이스라엘은 남과 북이 갈라지는 분열왕국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비극이지요.
여러분, 옳은 길을 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더 어려운 것은 그 길에서 완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왕기서의 저자가 우리에게 계속 묻는 것입니다.
생명과 축복에 이르는 '다윗의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멸망과 재앙에 이르는 '여로보암의 길'을 걷고 있는 지를 오늘 우리에게 계속해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혹 여로보함의 길입니까?
그러면 돌이키십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꼭 돌이키십시오.
혹 다윗의 길입니까?
잘 하셨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마십시오.
힘써 믿음의 대장부가 되십시오.
솔로몬처럼 중간의 멈추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 나라까지 완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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