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셨습니까?
요한복음 3:1-8절 2015/9/20(주일)
3: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거듭나셨습니까?’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아주 당연한 질문이지만 또 이 질문만큼 서로 피하고 싶은 질문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누군가가 아주 집요하게 찾아와서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언제 거듭나셨습니까?’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라고 따져 물었을 때 "그렇습니다. 저는 확실하게 거듭났습니다."라고 거침없이 대답할 분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대답은 이럴 것입니다.
‘글쎄요?’ 또는 ‘어찌되어든 거듭났다고 대답하는 게 맞겠죠?’일 것입니다.
이처럼 의외로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인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이단이 ㄱㅇ파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거듭남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가장 중요한 말씀 중의 한 부분입니다.
거듭남,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점이자 핵심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제가 기대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거듭남 곧 새 생명에 대해 좀 명확하게 정리가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생명의 삶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둘째, 제가 기대하는 것은 거듭남에 대한 확신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끝난 후에는 "당신은 거듭났습니까?"라는 질문에 그 어떠한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없이 분명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아멘’으로 대답을 할 수 있기 바랍니다.
저는 비교적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만나 신앙에 대해 그리고 교회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좀 다른 분들보다 많은 편입니다.
그 대화 속에서 종종 당황스러운 일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의외로 많은 분들이 구원에 대한, 거듭남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참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거침없이 "예!"라고 말하는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대화를 좀 더 깊이 이어가다 보면 거듭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떠한 능력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학습과 반복에 의한 구원의 확신이었지 성령의 의한 구원의 확신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 안에 거듭남에 대한 근거 없는 맹신이 한 편에 서 있었고, 거듭남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이 또 다른 한 편에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준비한 것입니다.
우선 거듭남이 무엇인지, 이것을 먼저 제대로 이해해 보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니고데모입니다.
1절입니다.
3: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성경은 니고데모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바리새파 사람'(a Pharisee)이다 그리고 ‘유대인의 지도자’다.
10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선생'(a teacher of Israel)이라고도 설명합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니고데모는 아마도 이런 신분에 속한 사람일 것입니다.
첫째,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바리새파 율법학자(서기관)'(a Pharisaic scribe)였습니다.
둘째, 로마 정부가 허락한 유대인 자치 정부가 산헤드린(Sanhedrin) 공회인데 공회원 70명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니고데모,
예수님 당시 그는 보통 사람들이 꿈꾸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권력도 있었고, 재산도 있었고,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믿음도 독실했습니다.
예루살렘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존경과 신망을 받은 지도자였습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은 사람이 니고데모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 니고데모가 어느 날 밤 떠돌이 전도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2절입니다.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밤에 찾아왔다’
왜 밤일까요?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의미합니다.
우선 첫째, 체면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의 이름 없는 떠돌이 전도자입니다.
갈릴리, 이방은 아니지만 당시 갈릴리는 이방인 지역 취급받은 변방이었습니다.
반면 니고데모는 유대인들 중에 Top class 1%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 변방 출신 무명의 떠돌이 전도자 예수님을 찾는다는 것은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습니다.
둘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절박함’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그 밤에 꼭 해결해야만 하는 절박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요 바리새파 율법학자로서 자신의 체면을 접고 그 밤에 예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이 그 동안 해결 할 수 없었던 본질적인 고민,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엽니다.
다시 2절입니다.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요 율법학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른 것은 엄청난 칭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칭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그의 의중을 꿰뚫어 보시듯 본질로 들어갑니다.
3절입니다.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의 고민을 아신 것이지요.
왜 밤중에 자신을 찾아왔는지를 예수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지금 니고데모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이 땅에 이루어지는가? 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영적 갈증이지요.
육신과 이성의 한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세계와 닿고 싶었던 것입니다.
권력으로도, 지식으로도, 명성으로도, 재산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영혼의 허기를 해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갈망을 채우기 위해 율법을 연구하고 실천해 보았습니다.
또한 그 열망을 해결하기 위해 율법에 따라 성실하게 제사도 드렸고, 온갖 선행도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분은 뭔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가르침도 달랐고 행동도 남달랐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보낸 예언자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찾아가 도움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학자 체면에 무명의 전도자를 찾아가 그것도 하나님 말씀의 도움을 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남의 눈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알아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마음에도 없는 인사말로 대화를 시작했지만 예수님은 다짜고짜로 핵심을 찌릅니다.
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니고데모에게 준 예수님의 대답을 이해하려면, 여기서 사용된 두 가지의 표현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이 거듭난다’라는 표현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라는 표현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순서를 바꿔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본다’
이것은 바리새파 율법학자에게는 아주 익숙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니고데모를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의 궁극적인 관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거듭난다’라는 표현은 처음 듣는 말입니다.
모세의 율법서에서도 그리고 예언서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거듭난다’ 과연 어떤 뜻을 품고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의미하고, ‘본다’는 말은 ‘깨닫다’는 뜻입니다. 우리 중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
이 사실에 대해 비로써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소통하게 되고 그리고 그분에게서 흘러나오는 사랑과 평화와 기쁨을 맛보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은 곧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육체는 썩을 몸이 되어서 이 땅으로 돌아가지만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하는 나, 하나님의 임재 아래 있는 나, 하나님님의 통치 속에 있는 나,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나는 마침내 영원하신 하나님 품에 이르게 된다는 구원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말이나,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얻는다’는 말이나,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나 ‘천국에 간다’는 말은 결국 모두 같은 뜻입니다.
첫째, 하나님에게 눈 뜨고
둘째, 하나님과 연합되고
셋째, 하나님의 생명 안에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말의 참 의미입니다.
둘째, ‘거듭난다’ 표현입니다.
‘사람이 거듭난다’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
이 말은 율법학자인 니고데모에게도 아주 낯선 표현입니다.
생전 처음 듣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엉뚱하지만 이렇게 반문합니다.
4절입니다.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니고데모가 어리석어서 이런 질문을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거듭난다’,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
난생 처음 듣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거듭난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는 전치사 '아노텐'(anothen)입니다.
‘아노텐’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다시' 혹은 '새로'라는 뜻이 있고 둘째, '위로부터'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사용된 ‘아노텐’은 이 두 가지 뜻을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거듭난다’는 말은 ‘위로부터’ 즉 ‘하나님에 의해’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 말씀이 5-7절입니다.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거듭난다’라는 말은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라는 말인데 이 말의 참뜻은 ‘위로부터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라는 말입니다.
육체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과 성령’은 물 따로 성령 따로 가 아닙니다.
이것은 ‘물 즉 성령’이라는 말로 ‘물 즉 성령’이 마치 어머니의 양수가 되어서 우리를 영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7장 38절의 말씀처럼 생수의 강 곧 성령이 양수를 품고 있는 그 배에서 터져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 7절의 말씀처럼 흙덩어리로 빚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생기 곧 성령이 들어가자 '생령'(living soul)으로 변화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겉모양은 동일하지만 보는 것과 듣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 그리고 사는 것과 행하는 것이 육신의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288장 1절의 상태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보이로다
거듭나기 전 과거에는 우리가 죄의 몸 육신의 연약함이 있어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상실되었지만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난, 거듭난 우리는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늘에 영광,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진실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에도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듭남, 절대명제이지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조심스럽게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입니다.
거듭남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증거가 있습니다.
내적증거와 외적증거입니다.
첫째, 거듭남의 내적 증거(internal evidence)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아주 분명하게 정리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절입니다.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거듭남의 내적 증거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 그리고 둘째는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낳으신 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151장입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누구를? 예수는 주님이시다) 내는 밝았네 참 내 기쁨영원하도다
두 번째 거듭남의 외적 증거입니다.
이것 역시 사도 요한이 아주 분명하게 밝혀 둡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 거듭난 사람은 죄와 벗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외적 증거입니다.
요한일서 3장 9절입니다.
3: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죄를 짓지 않는다.’ 과연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요한일서 1장 8절입니다.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이처럼 우리가 죄 없다고 그리고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 자체가 거짓말입니다.
그러면 왜 사도 요한은 3장 9절에서 거듭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 말뜻의 단서를 우리는 헬라어 원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3장 9절 이 문장에서 사용되는 모든 동사는 모두 현재형(presence tense)입니다.
헬라어의 현재형은 영어의 현재형과 달리 '지속적인 행동'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3:9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죄 짓는 상태에 머물러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은 ‘죄가 없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죄 짓는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죄와 계속해서 벗하여 살아 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외적증거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죄가 무섭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죄가 두렵다고 생각이 드십니까?
죄가 불편하다고 느껴지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거듭남을 통한 하나님 나라가 멀리 않습니다.
하지만 죄에 대해 그 어떤 감정도 없이 무감각하게 하나님이 주신 양심마저 저버리고 살아간다면, 여러분이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하셔야 합니다.
나는 거듭났는가?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났는가?
심각하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로 다시 나가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꼭 그렇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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