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요18:33-40 진리에 속한 사람(091129)

心貧者 2009. 11. 30. 14:41

진리에 속한 사람

요18:33-40절                                                         2009/11/29(주일)

18: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1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18: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18: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18:38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18: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8:40 저희가 또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2010년 새 해가 되려면 앞으로 약 한 달 정도가 남아 있습니다.

아직 달력 한 장이 남아 있지만 교회력으로는 지난주가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주일, 교회력으로 무슨 절기였지요?

왕국주일입니다.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는 나라 그 하나님 나라, 그 왕국을 기념하는 주일로 한 해를 끝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 땅에 구세주(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대강절의 시작이 새해의 첫 주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력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오늘이 바로 새해의 첫 주일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설, 그리스도인의 정월인 셈입니다.

태양력(양력)으로는 11월 마지막 주일 예배이지만 교회력으로는 오늘이 새 해의 첫 주일 예배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교회력은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해 동안 지내왔던 교회 살림을 정리하는 총회와 당회 그리고 새로운 한 해의 교회 살림을 정하는 구역회를 이쯤에 여는 것도 이러한 교회력 전통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연말정산을 돕기 위해서 11월 마지막 주로 교회제정을 마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강절(待降節), 다른 말로는 대림절 또는 강림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영어로는 초래하다, 도래하다는 뜻의 ‘advent’라는 단어를 씁니다.

한자로는 기다릴 대 영접할 대(待), 그리고 내릴 강(降)자를 써서 대강절이라고 합니다.

대강절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초림인 성탄절을 기다리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성탄절 전 4주를 대강절 기간으로 지킵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인 예수님의 강림을 기다리고 그분은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재림 곧 다시 옴으로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영접하는 것이 대강절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기다리고 영접하는 날이 대강절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에 핵심이 대강절 이 절기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교회력이 중요한 줄 아십니까?

모든 시간의 중심이 예수님의 일생 즉 예수님 중심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회력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 그리고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공증(公證)받은 것을 기념하는 주현절, 예수님의 수난을 기리는 사순절,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성령강림절 그리고 다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기다리는 대강절 이렇게 반복됩니다.

여러분 이런 교회력들이 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십니까?

내 인생 내 삶의 중심을 예수님 중심으로 맞추겠다는 자기 신앙고백이 그 안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느 때나 예수님 중심으로 살겠다는 우리의 충심, 우리의 의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정말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의 시간이 예수님 중심으로 교회력 중심으로 주일 중심으로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한 번 심각하게 이것을 고민 해 보셔야 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달력은 양력입니다.

양력은 말 그대로 태양이 중심입니다.

음력은 달이 중심이구요

학생들의 달력은 언제가 중심입니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그 중심입니다.

수험생은요?

수능 일이 중심입니다.

요즈음 우리 어머니들의 시간은요?

김장하는 날이 중심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중심은요?

교회력이고 주일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주일을 자꾸 세상에 양보하니까 예수님도 여러분을 사단에게 양보하는 일이 자꾸 벌어지는 것입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적어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로 주님의 날이라고 정한 주일을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선덕여왕 한 편 안 봐도 안타깝게 여기고 화내는 분들이 왜 주일 예배를 빠지고도 분 내지 않고 안타까워하지 않는 지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주일 예배 못 드리는 일이 생기면 분이 나고 화가 나고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주일 예배 안 드리게 되었다고 ‘앗싸! 가오리’하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중에서도 수도 예루살렘이 속한 유대 땅을 총괄하는 로마총독 빌라도와 갈릴리 출신 유대인 예수님 사이의 짧은 문답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라는 낯선 이름이 아주 부정적으로 들어오게 된 배경이 되는 본문이기도 한데‘본디오 빌라도’ 원래 이름은 ‘폰티우스 필라투스’입니다.

‘폰티우스 필라투스’와 예수님의 짧은 이 대화.

이것이 왜 중요한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사실적이고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유일한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33절 마지막에 나오는‘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본디오 빌라도’의 실존적인 이 질문이 사복음서 모두에 예외 없이 기록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사실적이고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유일한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레바논 출신의 신비주의 시인인 칼릴 지브란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이 쓴 책 중에 ‘사람의 아들’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 예수님과 처음 대면했을 때 빌라도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예수는) 두 팔을 뒷짐 지워 노끈으로 꽁꽁 묶인 채 재판정으로 끌려왔었습니다. 나는(빌라도) 단 위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나를 향해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곧추 버티고 서서 고개를 높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내게 무엇이 일어났던지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나는 일어나 단에서 내려가서 그 앞에 엎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바로 가이사라, 바로 로마의 황제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 재판정 안에 들어온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심문을 했지만 그는 대답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 속에는 불쌍히 여기는 빛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가 내 통치자요 재판장이기나 한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지금 거룩한 분 앞에 서 있구나!’ 하는 느낌.

이것이 ‘본디오 빌라도’가 느낀 예수님의 첫 인상입니다.

그래서 다짜고짜 묻는 것입니다.

33절입니다.

18: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빌라도가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내서 물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동족 유대인과 다른 어떠한 편견도 없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탐문하는 질문입니다.

유대인이 아닌 제 3자로서 어떠한 편견도 없이 그저 단순 사실 확인 차 묻는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출신의 이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사람인지 또 무슨 일을 했는지 그 어떤 정보도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 사실 확인 차 묻는 것입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이런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이 뭐라고 대꾸합니까?

34절입니다.

1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그 말이, 그 진실이 빌라도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인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을 듣고 하는 말인지?

먼저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역정을 냅니다.

18: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내가 유대 인이냐? 나는 제 삼자다.

다만 당신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현행법으로 심판권자인 나에게 넘겨주었으니.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그 사실만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 ‘본디오 빌라도’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나라(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예수님으로부터 듣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이 친히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본디오 빌라도에게 있어서 유일한 나라는 오직 로마제국입니다.

황제(가이사라)의 나라 로마 제국입니다.

당시 지중에 주변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을 때 지상의 유일한 나라는 오직 로마제국입니다.

그런데 로마 제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로마의 황제가 지배할 수 없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본디오 빌라도’가 유일하게 인정한 나라 ‘로마제국’과 예수님이 새롭게 제시한  이 세상 곧 로마제국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선 로마 제국입니다.

‘이 세상’속한 로마 제국, 언제나 그렇듯이 이 세상에 속한 나라들의 기준은 힘(파워)입니다. ‘이 세상’은 힘 있는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이것이 세상 나라의 실체입니다.

힘이 기준이 되고 곧 정의가 되는 세상. 이것이 로마제국이고 세상 나라입니다.

그래서 세계사는 언제나 전쟁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승자는 역사의 의인으로 패자는 역사의 불의한 자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승자만이(1등만이) 기억되고 기록되는 나라. 이것이 세상 나라이고 로마 제국입니다.


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어떻습니까?

우선 그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분명하게 주의해야합니다.

그러면 한 번 묻지요?

세주 미실과 선덕여왕이 꿈꾸는 神國, 가능한 일이니까?

절대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합니다.

그래서 36절 후반부에서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이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셨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사람의 힘으로 사람의 의지로 세울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총과 칼로 세울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국,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누가 세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 그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 오신분이 독생하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만이 세울 수 있는 곳이 신국,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그 곳이 곧 하늘나라, 신국이 되는 것입니다.


신국의 실체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국의 실체는 내 안에서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는 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신국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심령과 육체는 보잘 것 없고 가난한지만 하나님이 내 안에서 왕으로 통치하시면 그곳이 곧 신국 하나님 나라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 안에서 왕으로 통치하면 그곳이 곧 신국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세상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 안에서 왕으로 통치하면 그곳이 곧 신국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런 새로운 나라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그분은 세상의 왕처럼 지배하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왕입니다.

백성들을 희생시켜 제국을 건설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왕이십니다. 도덕이나 율법의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그런 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들 속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생의 가능성을 이끌어내신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신국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본디오 빌라도를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빌라도에게 당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37절 중반부입니다.

18: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나는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하여 태어났고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리에 속한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진리에 속한 자만이 진리를 증거하고 증언하기 위해오신 분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 그 자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진리에 속한 자가 누구일까요?


그래서 빌라도가 두 번째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빌라도의 첫 번째 본질적인 질문과 달리 두 번째 본질적인 질문에서는 어떤 답도 하지 않습니다.

18:38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왜 예수님은 이 중요한 질문에 답을 주지 않았을까요?

아쉽게도 총독 빌라도와 예수님 사이의 이 짧은 대화는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라는 일방적인 총독 빌라도의 선언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


여러분 빌라도에게 있어서 진리는 무엇일까요?

힘이고 돈입니다.

이 땅의 권세 곧 로마 황제 그 자체입니다.

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그에게는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냐가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평안과 안위. 그 힘만 보장된다면 그것이 곧 진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는 그 진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참된 진리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누가 그 진리 안에 속한자일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구체적으로 그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마지막 부분에 나옵니다.

18: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8:40 저희가 또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38절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이 진리에 대해서 뭐라고 언급하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의 소리 곧 천국 복음에 귀 기울이는 자가 곧 진리에 속한 자입니다.

그런데 40절에서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합니까?

‘바라바 예수’곧 강도 바라바를 택합니다.

진리가 아닌 오직 자신만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 살아가는 강도를 택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진리에 대한 답이 나왔습니다.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해 도전적으로 묻은 질문 ‘진리가 무엇인가’의 답이 무엇입니까?

진리는 예수님 그 자신입니다.

이 땅이 아닌 하나님나라에 속한 예수님 자신이 진리 그 자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눈앞에 진리를 보고도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그 어리석은 질문에 예수님이 그 어떤 답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또 하나, 진리에 속한 자는 누구일까요?

제 힘만 의지하는 강도 바나바의 가치관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식 곧 천국 복음을 듣고 그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 그 주님의 가치관에 따라 사는 자가 바로 진리에 속한 자입니다.

주님이 전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듣고 그 분을 내 주군으로 내 주님으로 내 신랑으로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로 진리에 속한 자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되셔야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매주일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통해 우리가 고백하는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왜 매 주일 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는 이 치욕을 고백해야만할까요?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상기하자, 원수 빌라도.”

이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속에 있는 빌라도가, 우리 사회 시스템을 지배하는 빌라도가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진리에 속한 자 입니까?

아니면 세상 힘에 속아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주는 강도 곧 사단의 권세에 속해 있습니까?

강도 바나바 예수 입니까 아니면 선한 목자이신 나사렛 예수입니까?

선택의 몫은 여러분 자유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지막 날에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이 반드시 묻는 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했던 거짓 왕들을 쫓아내십시오.

그들은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삽니다.

말씀에 귀 기울인다는 말은 그 말씀에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교회력으로 한해살이를 시작하는 오늘이 바로 우리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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