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마태복음 21:23-32절 2018/07/22 성령강림 후 9주 21: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1: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1: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1: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1: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21: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1: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21: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법대로 하자’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법대로 됩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것이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죄 아래 있는 모든 세상의 특징입니다.
법대로 할 수 있는 능력
즉 공의로운 재판과 정의로운 판결의 능력이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출애굽을 통하여 새 세상을 열어가고자 했던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이런 원칙 하나를 세워주십니다.
레19: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19:16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19:35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19:36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이스라엘도 그리고 오늘의 우리도 이 법에 지배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7일이 제헌절이었습니다.
제헌, 대한민국의 헌법 즉 글(문자)로 기록된 성문법(불문법 포함하지 않음)이 만들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올해로 70주년이 되었습니다.
70년이 지나면서 9번에 걸쳐 헌법이 개정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져오는 불변의 헌법조항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인데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민주’와 ‘공화’라는 두 단어로 명시한 것입니다.
‘민주’,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반면 ‘공화’란 백성들에게 언론의 자유를 주어 자기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다음에 나오는 2항에서 이렇게 법으로 못을 박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안타깝게도 그리고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또 모든 권력 역시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국민에게 주어진 주권과 권력을 가로채고 있는가?
바로 기득권 세력입니다.
이미 권력을 얻은 자들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으로 무장한 교회는 기득권 세력의 방패막이가 되거나 한걸음 더 나아가 그들의 손을 잡고 들어 주는 행위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 사회를 지배했던 권력, 기득권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권력을 쥔 자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유대사회의 핵심인 종교에 있어서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을 기반으로 힘과 권력과 재물을 구축했던 제사장
그리고 모세의 율법과 장로의 유전으로 힘과 권력과 재물을 구축했던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위협할 만한 새로운 권력자, 새로운 권세 자가 갈릴리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누구입니까?
나사렛 출신의 예수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입니다.
최소 5,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갈릴리 사람들이지요.
문제는 갈릴리에서 형성된 그들의 세력이 예루살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건에 발달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마21: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짧은 기록이지만 여기에는 당시 사회, 특히 기득권세력인 제사장과 바리새인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두 가지의 행위가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는 ‘성전에 들어가’
또 하나는 ‘가르치실새’ 입니다.
그간 성전의 영역은 제사장들에게만 권위를 부였습니다.
반면 모세의 율법과 장로의 유전(미쉬나)을 가르치는 몫은 바리새인에게 그 원위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권위, 그 기득권을 무시하고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니 기득권 세력인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가만둘 리가 없지요.
그래서 작정하고 따지고 묻는 것입니다.
다시 21장 23절입니다.
21: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성전에 들어갈 권위, 그리고 율법을 가르칠 수 있는 권위는 오직 우리들뿐인데 네가 뭔데?
도대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고,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냐?’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대답도 예수님이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이렇게 질문을 되돌립니다.
21: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1: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요한의 세례, 죄 사함의 물세례를 말합니다.
그 세례의 능력, 권세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하늘로부터인가? 아니면 사람으로부터인가?’
‘좋다 대제사장, 너희들
너희들이 하늘처럼 여기는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오는가?
아니면 장로들, 당신들이 하늘처럼 여기는 모세의 율법으로부터 오는가?‘
쉽게 답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세례자 요한의 존재를 애써 무시했고 그가 행한 물세례의 능력을 애써 낮잡아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을 따르는 백성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돈에 취한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보다 명예에 취한 바리새인의 장로보다 더 권위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하늘로부터 온 권세이자 동시에 하늘의 권위를 부여 받은 선지자로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궁색한 처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마태복음 21장 25절부터 읽겠습니다.
21: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1: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무슨 말입니까?
요한의 세례 그것은 당시 백성들이 믿는 것처럼 하늘의 권세이자 동시에 하늘의 권위를 부여 받은 선지자의 권위였다는 것쯤은 이미 그들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다음의 공식 또한 성립되기 때문에 그들이 알고도 답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 하늘로부터 오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는가?
그렇습니다.
선지자 요한처럼 예수님 역시 백성들로부터 선지자로 여김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권세가 하늘로부터 동시에 예수님 자신으로부터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전을 기반으로 기득권을 가졌던 대제사장들이나 모세의 율법을 기반으로 기득권을 가졌던 백성의 장로들이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알고도 일부러 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면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다시 21:23절 앞부분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여기에 시비를 걸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참된 제사장으로 그리고 참된 선지자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백성의 믿음이 예수님 권위의 뿌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백성의 믿음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이 제천에 있는 모 천주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했을 때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되었다는 창세기 1장을 가르치는데, 맨 앞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것이지요. ‘손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말로 세상을 창조할 수 있어?’ 이것이 할머니가 못 믿는 이유였습니다.
‘사람의 말에도 능력이 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할 만큼 큰 능력이 있다.’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도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현주 목사님이 할머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할머니, 말에도 손처럼 능력이 있고 힘이 있다는 것을 제가 이 자리에서 보여 주면 믿겠어요?’ ‘그럼 믿지’ ‘그러면 할머니가 좀 도와 주셔야합니다. 할머니 일어나 보세요.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세요.’ 할머니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다 했지요.
그러자 이현주 목사가 말합니다.
‘자 보세요? 제 손이 아니라 제가 말한 대로 할머니가 움직였으니 말의 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머니 왈 ‘시키니까 했지?’ 그렇게 성경공부를 마치고 청주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버스 안에서 깜빡 졸다가 느닷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현주야. 아까 참 아슬아슬했다.’ ‘왜요?’ ‘네가 말한 대로 할머니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너 어쩔 뻔 했니. 참 아슬아슬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다시 이렇게 묻더라는 것입니다. ‘현주야? 할머니를 일으킨 능력이 네 입에서 나온 말이냐 아니면 할머니냐?’ ‘그거야 시킨 대로 한 할머니의 순종이지요.’
무슨 말입니까?
권위는 누가 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라이센스(license)’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참된 권위는 누가 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권위를 권위답게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의 답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의 믿음과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27절 이후에 나오는 비유입니다.
21: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21: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1: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21: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누가 아버지의 말씀을 권세 있는 말씀, 권위 있는 말씀이 되게 합니까? 뉘우치고 간 둘째 아들의 순종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간 아들이지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전지전능하고 천하를 호령하는 권세가 있으면 뭐합니까?
오늘본문의 대제사장처럼 성전의 권위에만 갇혀 있고, 백성의 장로들처럼 율법의 권위에만 갇혀 있으면 아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처럼 그리고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순종의 삶이 없으면 전지전능하고 천하를 호령하는 권세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늘의 권세,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로 부름 받은 요한이 선지자의 길을 걸을 때
그리스도로 부름 받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길을 걸을 때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을 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부름 받은 우리교회가 그리스도의 팔 다리가 될 때
그 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갈 때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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