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안에 있습니까?
누가복음 17:20-25 2017/11/26/왕국주일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17: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17: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17: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지막 말씀에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17: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17: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순식간에)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17: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지니라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많은 고난을 받아 보셨는지요?
그리고 우리 주님처럼 이 세대 사람들로부터 버림과 조롱을 받아보셨는지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 안에서 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설교의 나오는 팔복 중에서 마지막 여덟 번째 복을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입니다.
5:10 의(하나님의 존재 자체이자, 하나님의 존재방식 그대로를 가리키는 말)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오늘은 그리스도를 통해 개시된 하나님 나라를 기념하는 주일이자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인 왕국 주일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인 12월 3일은 ‘메시야’ 곧 구주 강림을 기다리는 대림절의 첫 주가 됩니다.
대림절, 2018년도 교회력의 시작이지요.
그래서 이 날 당회를 통해 모든 교회들이 2018년도 목회계획과 임원선출 그리고 속장 임명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왕국 주일’ 하면 꼭 생각나는 복음 성가가 있습니다.
한 번 다 같이 불러 볼까요?
저는 이 복음 성가를 부를 때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두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마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총독 빌라도입니다.
총독 빌라도는 자기 앞에 끌려온 예수님께 힐문하듯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요?’
그러자 우리 주님이 아주 간결하게 답합니다.
‘네 말이 옳도다.’(막15:2).
사실 엄청난 말입니다.
로마를 향한 반역이자 결정적인 증거이지요.
그런데 결정적인 이 증거를 총독 빌라도가 완전히 무시해 버립니다.
기소조차 하지 않고 다른 고발거리를 찾지요.
그러자 우리 주님도 입을 굳게 다무시는 장면이 나오는 데 바로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또 하나는 역시 마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로마의 병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장면입니다.
총독 공관으로 끌려 온 예수님께 왕을 상징하는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로 엮은 왕관을 머리에 씌운 뒤 이렇게 조롱하지요.
‘유대인의 왕 만세!’
‘유대인의 왕 만세!’
그런 후 갈대로 머리를 툭툭 치면서 침을 뱉고 무릎을 꿇어 경배하는 시늉을 합니다.
‘무시당하는 왕’ 그리고 ‘조롱받는 왕’
저는 마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두 장면을 읽을 때마다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찾아옵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이 들지요.
‘인간의 무지와 오만 그리고 증오와 차별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라는 질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예수 우리 왕이여’라는 찬양으로 지금 고백하셨는데,
우리 삶 속에서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을 정말 왕 대접하고 사시는지요?
아니면 입으로만 왕이라고 해 놓고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지니’처럼 내가 필요 할 때마다 꺼내서 부려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우리의 신앙을 바르고 솔직하게 점검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본문을 보면 어느 날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자신들이 그동안 품고 있었던 진지한 고민 하나를 털어 놓습니다.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이 질문의 의도를 밝히기는 쉽지 않습니다.
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이 전처럼 말꼬투리를 잡기 위한 것인지
사실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하나님 나라 못지않게 아주 중요하게 여겼던 신앙의 주제이자 신앙의 본질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그리고 바리새인의 공통 주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바리새인의 이 질문은 뜬금없이 던져진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그냥 한 번 해 본 질문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러면 보통 이런 질문들이 나옵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가, 없는가?
존재 유무에 관한 질문이 나옵니다.
또 하나는 있다면, 어디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는가? 이지요.
그런 후 이 질문과 함께 꼭 나오는 마지막 질문이 시기의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 바리새인의 질문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옵니까?’이지요.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서 시종일관 우리 주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서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눅 10: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눅 10: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천국,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모든 이들이 동의합니다.
제자들도 백성들도 심지어 늘 율법으로 인해 적대관계에 있었던 바리새인들도 모두 여기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로마제국의 가혹한 수탈과 억압 그리고 착취를 더 이상 견뎌낼 힘이 없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강도의 굴혈로 변해 버린 제 2성전을 더 이상 지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권력과 돈에 취한 제사장 가문과 사두개파의 만행을 더 이상 지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속히 오게 하셔서 그들의 만행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만행을 멈추게 하셔서 하나님의 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에 사는 모든 이들의 소원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한번 뒤집혔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님의 선포는 하늘의 복음 그 자체이자 모든 예언의 정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아와 묻는 것입니다.
다시 누가복음 17장입니다.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그러자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는 위로부터 돌입하는 나라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고, 우리는 그 은총아래 동참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찬송가 438장 1절의 상태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변)화하도다.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덧입는 나라, 변화된 나라이지요.
셋째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임할 수 있는 나라이지만 아무에게나 임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육신의 눈이 아닌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나라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를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에게만 임하는 나라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의미는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하나님처럼 귀히 여길 줄 알고, 하나님처럼 존귀하게 대할 때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볼 수 있게 어느 한 장소, 어느 한 시간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뜻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 나라를 맞이할 수 없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계시록22장입니다.
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하나님의 은총.
다시 말해 ‘내 주께 회개한 양심’을 입고도 그렇게 행하지 않는 이들
예를 들자면, 신앙의 양심을 저버린 개들과 길흉화복을 점치는 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거짓을 사랑하고 거짓을 지어내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서로 사랑하라고 보내주신 이웃들을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섬기고 헌신하라고 허락한 주의 몸 된 교회공동체를 밥벌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욕망의 도구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의와 불화 그리고 혼돈과 어둠을 조장하는 그들을 하나님이 자신의 나라에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부연설명하십니다.
눅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반면 새 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너희 안에’나 ‘너희 가운데’ 어느 것으로 이해해도 다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나라가 다른 곳이 아닌 내 맘 속에도 있는가? 입니다.
다시 찬송가 438장입니다.
이번에는 2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 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어떻습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체험으로 그리고 증거로 여러분 마음속에 남아 있는지요?
잘 모르겠지요?
그래서 찬송가 438장를 기록한 작사자가 그 체험과 증거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3절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이지요.
이 변화된 체험과 증거를 가진 이가 곧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영광으로 임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이지요.
말씀을 마칩니다.
찬송가 438장의 가사와 가장 부합하는 성경의 인물을 뽑으라면 저는 단언컨대 바울 사도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
그가 믿고 바라며 살았던 하나님 나라는 이런 나라였습니다.
로마서 14장 16-17절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그것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이지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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