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고린도전서16:8-14절 오해와 조급함을 넘어

心貧者 2017. 11. 19. 15:57


오해와 조급함을 넘어

고린도전서16:8-142017/11/17()
16: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16: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6: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16: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사도 바울의 1,2,3차 전도여행 중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은 교회를 뽑으라면 단연 아테네 밑에 있는 항구도시 고린도 지역에 세워진 고린도 교회일 것입니다.

 

고린도.

사실 바울의 전도 여행에서 그리 기대하지 않았던 도시였지요.

왜냐하면 2차전도 사역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반환점으로 찾아간 곳이 항구도시 고린도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배를 타고 에베소를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울의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도 사역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반환점으로 찾아간 고린도에서 바울은 아주 큰 하나님의 역사를 만나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귀한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가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사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에서 심혈을 기울였던 도시는 그리스 곧 헬라문명의 중심지 아테네였습니다.

우선 그들은 종교심이 아주 풍성했습니다.

배움에 대한 학구적 열심도 대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리에 대한 그리고 참에 대한 탐구심이 대단했습니다.

언변도 좋았고 학식도 높았습니다.

거기다가 남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아는 신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복음 전도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특히,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논쟁에서 오히려 조롱을 당하고 공격을 당합니다.

결국 아테네에서는 아레오바고 관리자였던 디오누시오라는 사람과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그리고 무명의 한 사람 외에는 전도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도 여행의 종착지로 찾아간 고린도에서 바울은 아주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14-7절입니다.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1: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이것이 바울의 기억 속에 있는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에 있어서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풍족한 교회.

둘째, 어떠한 은사에도(사랑, 봉사, 가르침, 예언, 방언, 통변 등) 부족한 것이 없는 아주 알차고 튼튼한 교회였습니다.

물론 교회 재정도 아주 넉넉했지요.

 

지금도 이런 교회가 있을까? 할 만큼 정말 대단히 좋은 교회였습니다.

모든 전도자들과 모든 목회자들이 꿈꾸는 교회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좋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큰 상처와 염려를 안겨주게 됩니다.

그래서 칭찬의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책망의 말로 이어집니다.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어떤 분열도 그 어떤 분쟁도 용납하지 말고 같은 말, 같은 마음 그리고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런 책망을 하게 된 것일까요?

 

당시 고린도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을 따르는 분파주의였습니다.

파당을 짓는 것이지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베드로)파 그리고 그리스도파 이렇게 넷으로 나뉘어서 서로 갈등하고 반목한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열매로 주어진 온갖 언변과 지식의 풍족함이 오히려 공동체의 독이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은총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모든 은사도 역시 독이 됩니다.

남의 은사를 깔보고 자기 은사만이 최고라고 자랑하는 독선이 교회 공동체를 더욱 갈라지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개척하고 그들과 함께했던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래서 고린도교회가 않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편지를 쓴 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문제, 갈등의 문제가 어찌 편지 한통으로 해결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심 끝에 편지와 함께 누구를 보내는가 하면 2차 전도여행에서 얻은 제자 디모데를 보내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8-10절입니다.
16: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16: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여기에 보면 우선 자신이 당장 달려갈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합니다.

현재 몸담고 있는 에베소 교회의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16: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16: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동행했던 제자 디모데를 우선 보내니 나대신 도착한 디모데를 무시하지 말고 잘 영접해서 그의 가르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6: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그러면 바울이 왜 자신의 편지 말미에서 이런 부탁을 하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고린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우월의식 때문입니다.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라는 우월의식이지요
바로 남을 낮잡아보는 오만함과 우월의식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니 고린도 교회의 현재 상황을 살펴 볼 때,

자신의 제자 디모데를 영접하지 하고 무시할 일이 뻔했습니다.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라는 우월의식에 빠진 이들이 디모데를 무시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면서 한 가지 설명을 덧붙입니다.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의 오해를 풀기 위한 설명으로 12절입니다.

16: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이 기대하는 아볼로

그 아볼로에게 가서 이 문제를 풀 것을 권면할 만큼 권면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볼로가 거절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차선책으로 자신의 동료이자 제자인 디모데를 보내게 되었으니 그를 어리다 무시지 말고 이 기회를 최선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 13절입니다.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둘째, 14절입니다.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이것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마지막 권면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신앙의 성장과 교회의 하나 됨을 방해하는 두 가지의 요소입니다.

하나는 오해와 편견이고 또 하나는 조급함입니다.

첫째, 오해와 편견에 대한 문제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분파주의 우월주의에 빠졌던 이유는 다양한 은사 다양한 신앙체험을 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신앙의 체험을 서로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난 2000년 동안 교회를 괴롭힌 가장 큰 고질병입니다.

그래서 요구되는 것이 사도나 교회가 검증한 보편적 신앙 에큐메니칼입니다.

에큐메니칼이란?

개인적인 체험 중심의 신앙보다는 사도나 교회가 검증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신앙 중심으로 하나가 되자는 운동입니다.

교파가 다르고 교단이 다르고 교리가 다르다 할지라도 그 오해와 편견을 넘어 사도나 교회가 검증한 보편적 신앙 중심으로 돌아가 하나가 되자는 운동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사도와 교회가 성경에 뿌리를 둔다는 것이 전제 조건입니다.
이 전제 조건만 무시당하지 않는다면 오해와 편견을 넘어 보편적 신앙인 에큐메니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의 방향입니다.

또 하나는 조급함의 문제입니다.
사울 왕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승리에 대한 조급함 때문에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게 되지요.

그 결과 결국 사이비 제사장 노릇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 사랑이 충만한 교회공동체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첫째 바울의 권면대로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십시오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에큐메니칼 신앙으로 나아가십시오.

 

둘째 조급한 마음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주어진 자리, 주어진 직분에 충성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어떤 분열도 그 어떤 분쟁도 용납하지 않는 같은 말, 같은 마음 그리고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한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