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로 물러가라
마가복음8:31-34절 2017/04/21(금)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8: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여기에 보면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 하나가 등장합니다.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입니다.
‘비로소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
그 말씀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씀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 하나님 나라의 임재입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주님이 이런 말씀으로 사역을 처음 시작합니다.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①때가 찼다.
②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③회개하여라.
④복음을 믿어라
서로 다른 네 가지의 명령 같지만 실은 한 가지의 당부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죄.
그 죄로 인해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님의 가르침들 우습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 사함의 제사도 드렸고 경건의 생활로 구제도 하고 기도도 하고 금식도 했습니다.
문제는 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삶의 태도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정하는 듯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가르침들, 즉
①때가 찼다. ②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③회개하여라. ④복음을 믿어라 이런 가르침들이 못마땅했습니다.
특히, ‘③회개하여라. ④복음을 믿어라’ 가 못마땅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의 씨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민의식이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지 않는 가난한 자들이나 고아나 과부가 나그네나 이방인의 몫이지 자신들의 몫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반면 주님의 제자들은 어떠합니까?
자신의 죄, 바로 인정합니다.
죄에 대한 태도가 다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베드로인데 누가복음 5장입니다.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죄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죄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죄인임을 주 앞에서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 무릎 아래에 엎드리는 주관화입니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서기관들처럼 남을 엎드리게 하는 객관화가 아니라 내가 엎드리는 주관화입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 옛날 갈릴리 출신의 어부 베드로가 죄를 지어야 얼마나 지었겠습니까?
하지만 그가 주님을 만나가 곧 바로 인정한 것이 ‘나는 죄인입니다’
객관화 곧 유체이탈이 아니라 주관화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죄의 소멸’이 쉽지 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안에 왕 노릇하는 죄를 소멸할 수 있을까요?
우선 장로들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장로의 유전들(미쉬나, 미드라쉬)을 통해서 할 수 있다 여겼습니다.
반면 대제사장은요?
죄 사함의 제사를 통해서 그들은 죄를 소멸할 수 있다 여겼습니다.
서기관 곧 바리새인들은?
오직 오리지널한 ‘율법’을 통해서입니다.
율법의 준수이지요.
그러니 예수님의 가르침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이런 가르침들이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욱 그들이 황당하게 여긴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들입니다.
다시 마가복음 8장 31절입니다.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그리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여기에 보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서기관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 3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인자(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뜻함) 가 많은 고난을 받는다.
둘째, 그 인자가 죽임을 당한다.
더 믿기 어려운 것은 세 번째인데 그 인자가 사흘 만에 살아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비로소 가르치신 이러한 말씀들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함께 3년 동안 공생애를 보냈던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①때가 찼다. ②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③회개하여라. ④복음을 믿어라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와 제자들이 기대했던 하나님의 나라가 달랐지만 어째든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신 말씀들’입니다.
3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할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는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할 그 인자가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그 인자가 사흘 만에 살아난다.
이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미 급한 제자 베드로가 앞서갑니다.
8: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싹 잡아당기며 항변합니다.
말이 항변이지 예수님을 꾸짖는 것입니다.
‘항변’으로 번역된 ‘에피티마오’(ἐπιτιμάω)는 33절 ‘꾸짖다’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런 꾸짖음에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 단호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베드로를 꾸짖어 줍니다.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여기에 보면 베드로의 호칭이 아주 파격적으로 변합니다.
무엇으로 변합니까?
‘사탄’입니다.
왜 사탄입니까?
그 이유가 그 다음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처럼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베드로는 왜 사탄이 되었을까요?
베드로의 실패, 무엇이 문제입니까?
가장 근원적인 문제이자 우리도 종종 하는 실수인데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자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앞을 보면 베드로가 아주 유명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여기에 보면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두 가지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첫째,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둘째,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머리로만 인식했지 그것을 몸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베드로가 보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망각하고 스승을 꾸짖는 자리에까지 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이 가만 둘리 없지요.
그래서 자기가 서야 할 자리 잃어버린 베드로에게 우리 주님이 질정으로 하신 말씀이 8장 33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꾸짖음이었습니다.
사랑으로 꾸짖어 있어야할 자리를 바로잡아 주는 것을 우리가 ‘질정叱正’이라고 하는데 질정, 참되게 꾸짖은 것입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 말로 예수님을 주로 그리고 그리스도로 모시고 살아가는 이들의 자리이자 죄인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뒤로 물러가라’로 질정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주는 그리스도’라는 멋진 신앙 고백 속에서 우리 종종 실수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 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앞서 생각하고 앞서 나가고 앞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주님을 위해서...
하지만 정작 우리의 주가 되시고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자신의 뒤로 물러서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한 일이자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의 결론인 34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참된 제자,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두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첫째,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런 후에 둘째, 주님 뒤로 한 걸은 물러나십시오.
‘내 뒤로 물러가라’ 사랑의 꾸짖음, 그 주님의 질정을 마음에 새기시고 한 걸음 주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그러면 우리 주님이 앞서가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것이고, 앞서가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안식처를 마련해 두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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